반하지 않을 수 없는 '공기 반 소리 반' 감미로운 목소리에 가볍게 통통 튀면서도 묵직하고 몽환적인 사운드의 조화가 이렇게 귀를 감싸는데도 아는 사람만 알아서 속상한 버지니아 투 베가스(Virginia To Vegas)의 'Selfish'입니다🥺
'what are we', 'amnesia' 등 많은 명곡을 뽑아낸 버지니아 투 베가스의 곡 중에서도 2017년에 발매된 이 곡은 지금 들어도 아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명곡이에요. 제 인생곡을 뽑아보라고 한다면 아마 Top 20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아무래도 제 귀에만 명곡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아서 매우 안타까워요.
지금으로부터 오래전 한창 감성에 빠져살던 저는 오로지 감성만 믿고 있던 등골 브레이커였어요. 막연하게 그림 그리는 전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며 큰소리만 뻥뻥 치면서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주변 친구들이 패배라는 쓰디쓴 맛을 보면서 취업이라는 문을 수도 없이 두들기며 인생을 배울 때, 저는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얻어다 주신 서울 남쪽의 작고 단란한 자취방에서 등 따시게 지내고 있었어요.
부모님께서 뼈가 부서져라 일하며 번 돈으로 사주신 컴퓨터 속 온라인 공간에서 웃고 떠들거나, 아무 내용 없이 웃기기만 한 유튜브만 시청하면서 그저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었어요. 막상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고 했으면서 무슨 대단한 예술가라고, 그림은 한 달에 한 번 그릴까 말까, 그마저도 제대로 그리지도 않았어요. 가끔가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부모님 등골을 제대로 빼먹는 한심한 청년들의 만화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나오던데, 당시 제 모습이 아주 그 만화의 주인공 같았어요.
제 머릿속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희뿌연 안개 같았고, 그 속에서 편히 살다 보니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첫해에는 '1년만 이러고 2년 째에는 정말 돈을 벌 거야', 그 이듬해에는 '그래, 3년 째에는 정말 돈 벌 수 있을 거야'. 물론 백수 1년 차에도 2년 차에도 3년 차에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세월은 훌쩍 흘러 아버지가 먼저 퇴직하셨고, 어머니께서도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력이 부치신다는 걸 깨닫고 퇴직을 고민하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글로 써도 그렇고 그때 당시에도 별 감흥이 없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 봐요. 저도 아무것도 안 한 세월이 아주 많이 흘렀다는 걸 알고 있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는 극도의 불안감을 무감각으로 포장하고 짐짓 모른척하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어머니께서 퇴직을 하고 싶은데 누구 하나 독립시킨 자식이 없어 꼼짝없이 직장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저는 그때 현실 감각이 차츰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주변 친구들은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데, 저도 열심히 살아봐야겠더라고요. 이대로 감정만 추구하면서 살아가다간 굶어 죽겠다 싶어서 뭐라도 배우려고 서울 홍대 근처에서 학원을 다녔어요. 뭐라도 배우다 보면 의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돈만 낭비하며 막연하게 다니곤 했어요.
결국 찾고 싶던 내 적성은 찾지 못했어요. 그곳에서도 열심이던 다른 수강생들은 이미 하고 싶은 방향을 찾았는지, 매우 열정적이던 그들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의욕이 넘치지 못하지? 나는 잘못됐나 봐.' 하는 생각이 수업 도중에도 몇 번씩이고 생각났어요. 그렇게 마지막 수업이 끝나던 날, 혼자 남은 교실에서 저는 하얀 벽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배울 때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에 들떠서 즐거웠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어차피 지금 생긴 의욕도 다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렇게 멍하니만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침 자리를 비운 선생님의 맥북에서 제 심정과 아주 걸맞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많은 곡이 흘러나왔지만 이상하게 이 노래에 이끌려 흰 벽에 비치던 프로젝터 영상에 뜬 노래 제목을 기억하게 되었어요.
아주 세련된 멜로디와 귀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곡 진행에 귀가 이끌려서 듣게 되긴 했지만 유독 후렴에 반복적으로 울리는 'I know that I’m being selfish / Can’t help that I’m so selfish'라는 문장이 제 양심을 쿡쿡 찔러댔어요. '내가 이기적으로 구는 거 나도 알아'라는 문장이 제가 외면하던 저의 등골 브레이킹 행태를 낱낱이 파고드는 것만 같았거든요. 물론 노래 가사의 전체적인 내용은 저의 경험과는 거리가 먼 사랑 노래이지만 저는 아직도 이 노래를 들으면 우울했던 시절이 떠올라요. 부모님 돈으로 인스턴트 행복만을 사 먹다 결국 나중에는 힘든 시간을 보냈던 당시의 제가 떠올라서 마음 한구석이 아주 아련해지지만... 그런 기억도 있기 때문에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공감할 거리를 드리고 싶어서 우울했던 개인사를 꺼내봤어요. 사실 막상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는 내용인지라 조금 머쓱하기도 하네요. 이렇게 제 기억처럼 아주 소소한 감정이었을지라도, 뭔가가 방아쇠 역할을 해준다면 언젠가는 아주 크고 선명하게 기억될 때가 있어요. 음악이 저에게 그런 방아쇠 또는 증폭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요. 여러분에게는 어떤 것이 기억을 증폭해 주고, 또 그것에 관련된 기억은 무엇인가요? 여기 모이신 분들이니 역시 저처럼 노래겠지요?😉
여러분들께는 어떤 노래가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