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럽(SIRUP)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다가 곧장 깨달았다. 이 연말에 필요한 달콤함은 이 사람이 가지고 있구나! 하고. 입고 온 보송보송한 니트 스웨터가 잘 어울리는 그는 상냥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시럽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에디터는 그가 진솔하고 신념 있는 사람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타인에게 열린 사람은 흔치 않다. 더군다나 타인에게 열려있으며 신념 있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요새는 더욱 찾기 힘든 재능을 가진, 시럽은 그런 아티스트였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인터뷰를 통해 당신도 곧 알게 될 것.
2022년 1만석 규모의 무도관(Budokan) 공연장에서 열린 단독 공연을 매진시키고, 지금까지 발매한 정규와 EP 앨범 모두 일본 애플 뮤직 R&B 차트 1위를 올리며 일본 R&B씬을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한 시럽. 지난 7일, 한국에서 첫 단독 공연을 앞둔 시럽을 만나 그의 음악과 신념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 인터뷰는 12월 8일 내한 공연 전 진행되었습니다.
Q. 한국 팬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음악을 통해 기분 좋은 바이브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일본의 R&B 뮤지션 시럽입니다. 반갑습니다.
Q. 오는 8일 첫 단독 내한 공연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
한국에서의 첫 공연은 6년 전 홍대의 클럽에서 수민(SUMIN), 슬롬(Slom), 욘욘(YonYon)과 함께한 공연이에요. 그때 즐겁게 공연을 마치고 2년 안에 단독으로 오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 오래 걸리고 말았네요. 그만큼 더 기대되고 설렙니다. 그때의 초심으로 노래하겠다는 마음으로 내한했습니다. 내일 공연 많이 기대해 주세요.

ⓒSIRUP IG
Q. 이번에 싱글 ‘GAME OVER’ 뮤직비디오에서 본인의 댄스 실력을 보여줬다. 춤에도 원래 관심이 많은 편인지 궁금하다. 이와 같이 관객 모두가 따라 하기 쉬운 율동을 라이브 공연에서 진행해 볼 생각도 있는가.
원래 춤에 관심이 많아서 춤 영상도 자주 찾아보곤 해요. 무대 위에서도 가볍게 몸을 흔들며 노래 부르는 편이고요. 이번에 ‘GAME OVER’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퍼포먼스를 시도해보았는데요. 관객들과 함께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공연 당일, 시럽은 정말로 시도했다! 어깨춤을 들썩이던 시럽도 관객들도 영상으로 담지 못해 그저 아쉬울 뿐.
https://www.instagram.com/p/DC6hzeSTSBI/
Q. 단일 프로듀서와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아티스트들이 있는 반면, SIRUP은 다양한 프로듀서진과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이처럼 다양한 프로듀서와 작업하는 것에 어떠한 의도가 있는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롭게 와닿은 감정이나 의미가 있다면.
사실 저는 시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쿄타로(KYOtaro)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었어요. 시럽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시럽(syrup)처럼 여기저기 잘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음악을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단순히 예명만 바꾼 게 아니라 작업 방식과 스타일도 변화시키고자 했죠.
이전까지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실현해 줄 프로듀서와 작업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시럽의 모습, 저의 새로운 색깔을 찾아줄 수 있는 여러 프로듀서와 작업하고 있어요. 다양한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Naoto Usami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럽,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Q. 힙합, 소울, R&B와 같은 흑인 음악 장르 음악을 주로 하고 있다.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그리고 닮고 싶은 롤모델 아티스트를 단 한 명만 꼽자면.
제 음악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아티스트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예요. 16살 즈음, 친한 형을 통해서 스티비 원더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이게 바로 R&B라는 거구나, 하고. 롤모델은… 단 한 명이라니 너무 어려운데요!
아무래도 한 명으로 단정지을 순 없겠어요. 흑인 음악 자체가 언제나 제 롤모델이에요. 음악을 통해서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죠. 그런 면에서 한국 아티스트인 BTS에게도 크게 영감받았어요.
Q. 밝고 경쾌한 멜로디 대비, 밝지만은 않은 현실에 대한 가사를 많이 쓴다고 느꼈다. 시럽의 음악을 들을수록 신념 있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에 대한 본인만의 신념이 있는가.
自分は自分だけのもの
나는 오직 나만의 것
誰にも渡さないと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않아
-‘Change’의 가사 일부
그렇게 생각해 주셨다니 정말 감사한데요. 작사하는 데 있어 저의 신념은 절대 거짓은 가사에 담지 않는 것이에요. 진실만을 노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진실하지만은 않잖아요. 소음도 있고 시끌벅적하죠. 이런 세상 속에서 음악만이라도 모두의 쉼터가 될 수 있기를 바라요.
제 음악이 쉼터가 되는 동시에 중요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평소에 하던 생각이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나 메시지, 창작물을 접하는 건 그 자체로 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음악을 통해서 기분 좋은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한국 아티스트 수민(SUMIN)과 콜라보 곡 ‘Keep In Touch’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대만의 더 크레인(The Crane), 우쉬(whoosh)와 ‘UMAMI’ 곡을 작업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다양한 해외 아티스트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는 이유가 있는가.

‘Roller Coaster’ - SIRUP, SUMIN
하하, 의도적인 건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만나 인연을 맺고 협업을 하는 편입니다. 일본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는 것과 다른 점은 아무래도 서로 다른 문화권이다 보니 이해를 위한 소통 시간이 길다는 겁니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많이 성장한다고 느껴요.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그들의 에너지를 나눠 받아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해외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일본에 제이팝이나 애니메이션 OST 외에도 많은 씬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일본에도 R&B 아티스트가 있어! 하고 말이죠.
Q.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예를 들면 영어를 사용할 경우, 성격이 더 외향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영어 가사 이외에도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가 섞인 곡 작업 경험이 많은데 아티스트로서 각각의 언어를 가사로 다룰 때 느껴지는 차이가 있는가. 그 외에도 작업해보고 싶은 언어가 있는가.
각 언어의 성격을 생각해서 사용한다기보단 그 언어가 가진 리듬을 믿는 편이에요. 가사가 어떻게 들릴지 생각하면서 언어의 리듬감을 다루는 게 재밌는 포인트죠. 최근에 태국에서 공연을 진행했는데 태국어가 무척 어려운 한편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기회가 된다면 태국어로도 작업해 보고 싶네요.
Q. 작곡가 모리 젠타로(Mori Zentaro)를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 소울플렉스(Soulflex) 크루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이 느끼기에 크루 활동과 개인 활동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가장 기억에 남는 크루 활동이 있는가.

ⓒYuki Sakashita
사실 소울플렉스 멤버들은 간사이의 R&B/Hip-Hop 씬에 있었던 10년 이상 알고 지내온 오랜 친구들이에요. 뮤지션이기 이전에 믿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들이죠. 한 명이라도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면 같이 음악을 하지 말자는 신조 아래 결성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해산한 적이 없어요. 같이 활동하는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싸우고 울고 웃고 모든 감정을 공유했고 그 덕에 모두가 솔직해질 수 있는 그룹이에요.
크게 느껴지는 차이점은 든든함 같아요. 시럽으로서 혼자 설 때면 모든 일을 홀로 다 해내야 하죠. 즐겁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소울플렉스의 크루일 때는 한 명의 보컬리스트 멤버로서, 밴드 세팅이나 작업적인 면에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하나만 뽑기 어렵네요.
Q. 현재 제이팝 혹은 글로벌 음악 업계 내에서,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에 따라 설정한 앞으로 자신의 방향성이 궁금하다.
아티스트가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뮤지션들이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뮤지션이 꼭 메이저에 가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거죠.
메이저와 언더 외, 미들 아티스트 씬이 지금보다 커지면 음악도 더 풍부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미들 아티스트들이 본인의 음악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어요. 덧붙이면 저는 체력도 좋고 튼튼하지만은 모든 아티스트가 그런 건 아니니까, 아티스트의 건강은 물론 정신적인 부분까지 다양한 상황을 케어해 줄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었으면 해요.
저는 이런 생각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정치적 의견이나 음악이나 모든 면에서 말이죠.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때도 있고 의도적일 때도 있죠.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아티스트가 사회적 메시지를 표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시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려 한다. 결국 리스너들에게 더 좋은 음악을 주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Q. 조만간 한국 R&B 뮤지션 자이언티와의 콜라보레이션 트랙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알고 있다. 신곡에 관해 이야기해 준다면. 그리고 이번 콜라보레이션 아티스트 외에 협업하고 싶은 한국 아티스트가 있는지 궁금하다.

ⓒSIRUP IG
곧 발매될 싱글은 자이언티(Zion. T)와 함께 한 ‘CHEESE CAKE’라는 곡이에요.
미국에 잠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별생각 없이 들른 패스트 푸드 레스토랑의 치즈 케이크를 먹고는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었어요. 심지어 4달러밖에 하지 않았죠. 미국에서 여러 비싸고 좋은 음식들도 맛봤는데 여행 후 아무리 되새겨봐도 그 치즈 케이크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그때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에요.
어른이 되어 어릴 때 가졌던 꿈을 이루고 보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더라고요. 분명 성취감이 있었지만, 그 감정 사이로 상실감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꿈이 실현되었는데도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면서 돌아보니 엄마가 해주던 따뜻한 집밥, 어린 시절의 추억, 심지어 콤플렉스마저도 정말 소중했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이러한 생각들을 녹여낸 그루비하고 신나는 곡입니다.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협업하고 싶은 다른 한국 아티스트들도 많아요. 최근에 피에이치 원(PH-1)의 재지한 바이브와 그의 랩을 좋게 들어서 함께 작업해 보고 싶고, 올해 발매한 앨범이 인상적이었던 주영과도 작업해보고 싶어요. 오혁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혁오 밴드와도 함께하고 싶네요.
시럽과 자이언티의 ‘CHEESE CAKE’, 먼저 살짝 들어볼 수 있었다. 감미로운 목소리의 두 보컬의 그루비한 무드가 귀를 사로잡는다. 치즈 케이크처럼 적당한 무게감을 가진 곡으로, 연말 분위기와도 잘 어울려 자주 듣게 될 듯하다.
Q.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의 문화로부터 항상 좋은 자극과 에너지를 받고 있어요. 열심히 해서 자주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시럽, 곧 발매될 ‘CHEESE CAKE’를 들으며 그의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기다리고 있겠다.
| Courtesy of The Orch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