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들어가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분야에서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는 역사상 가장 큰 서브컬처를 만든 청년들의 반항이었던 펑크는 문화 운동이자 어려웠던 당시의 시대상을 관철하는 목소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DIY(Do It Yourself)' 정신을 내세웠던 펑크 록은 뉴욕의 CBGB 클럽을 기점으로 부흥해 영국까지 이어지며 현대의 다양한 록의 장르와 인디라고도 불리는 아티스트의 활동적인 측면에까지, 짧았던 전성기에 비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됐죠.
하지만 이렇듯, 파격적이었던 펑크는 동시에 당시 청년들의 사조를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체계에 저항적인 태도를 가지고 시작했던 펑크였기에 음악, 패션, 심지어는 행동 양식에까지 획일화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DIY 정신과의 모순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어쩌면 가장 펑크스러운 인물들이었고, 펑크 록을 대표하는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 조니 로튼(본명 존 라이든)이 1979년 호주의 TV 프로그램 카운트다운(Countdown)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외부로만 가지고 있던 펑크에 대한 그의 진솔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아마도 그가 당대의 음악으로 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표현의 자유 와 그에 우선되는 사랑과 존중 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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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
" 히피는 애진작 끝났고, 이 시대에 더 이상의 펑크는 없어 "
1960년대 피어난 자유와 평화의 히피, 그리고 1970년대 뒤를 이은 청년들의 반항 펑크.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나타난 두 풍조는 너무 다른 기조를 보였으나 그 정신만큼은 서로를 닮아있기도 합니다. 더불어 당대의 음악, 패션 등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히피와 펑크는 이제 한때의 낭만으로 남아 현재는 그 기능이 아닌 이미지 혹은 컨셉으로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그리고 여기 이 사람, 거스 발드윈(Gus Baldwin)은 자기 스스로를 전직 히피(ex-hippie)이자 펑크 파트타이머(part-time punk)라 부릅니다. 어찌해서 이 청년은 부정적인 의미의 두 칭호를 나서서 자처하고 있는 것일까요?

©kylie bly
올해 1월 데뷔 앨범 [The Sketch]를 발매했지만, 거스 발드윈은 이미 오랜 기간 밴드에 발을 담그고 있던 몸이었습니다. 텍사스 댈러스에 나고 자란 거스 발드윈은 고등학생 시절, 댈러스 지역의 서프 록 밴드 씨라이언(Sealion)의 드러머로 시작해 사이키델릭 록 밴드 애시드 캐러셀(Acid Carousel)에서 2021년까지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서프 록과 사이키델릭 록, 모두 펑크 록에 영향을 준 장르는 맞지만 그가 어렸을 때부터 매료된 장르는 펑크 록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미국 펑크를 상징하는 록 밴드, 라몬즈(Ramones)의 곡 ‘Blitzkrieg Bop’을 들려준 것은 불과 4살 때. 하지만 그 곡은 그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았고, 그때 그는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죠.
이후 바로 뮤지션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라오면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관심사가 음악인 것을 깨닫고 그는 진심을 다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처음 영향을 주었던 펑크는 점점 더 그 영향이 커졌고, 이내 음악뿐만이 아니라 그의 태도, 정신 등 자연스럽게 그의 인생이 되어있었죠.

©Kenn Box
그런 점에서 거스 발드윈은 그가 속해 있던 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밴드의 음악과는 별개로 그가 뮤지션으로써 지금껏 해온 활동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죠. 그리고 결국 거스 발드윈은 할로윈 날 밤을 마지막으로 자신이 속해 있던 밴드, 그리고 댈러스를 떠나게 됩니다. 끝나지 않는 이 괴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밴드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작업해 온 수많은 작업물들을 가지고 말이죠.
밴드에서 나온 거스 발드윈이 향한 곳은 텍사스 오스틴. 그리고 그는 뮤지션으로써 그가 중시했던 라이브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원 맨 밴드로 작업물을 발매하며 이곳저곳 안 가리고 수많은 라이브 공연을 돌면서 텍사스 오스틴을 중심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죠.
그리고 거스 발드윈은 이 기회를 토대로 펑크의 저항 정신을 더 큰 무대에 담아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와 의견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쳐 만든 프로젝트 밴드가 지금의 밴드,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Gus Baldwin & The Sketch)입니다.

©kylie bly
To. 새로운 밴드를 꿈꾸는 신인들에게
“Get comfortable being poor. You’re going to be poor until you die. Just accept that now so it’s not as disappointing when you’re older.”
가난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죽을 때까지 가난할 거니까! 지금이라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그렇게 실망스럽지 않을 거야.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는 밴드의 주 활동 무대인 오스틴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밴드는 텍사스의 치솟는 물가와 더불어 경쟁이 심해진 음악 산업 내에서 아티스트에게 더 많은 금전을 요구하는 산업들을 비판기도 하고, 거스 발드윈이 자랐던 댈러스와 달리 출입 연령 제한이 없는 공연장 무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죠.
그렇게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는 올라가는 인지도와 함께 점점 발을 넓혀갔습니다. 펑크 밴드들이 그랬듯, 언더그라운드 공연을 중심으로 말이죠. 밴드는 망설임 없이 텍사스 오스틴으로부터 약 1,300km나 떨어진 LA까지 향했고, 그들의 꿈은 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먼 곳까지 밴드의 메시지를 퍼뜨리기 위해 앨범을 녹음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죠.

©Kylie Bly, Gus Baldwin, Inti Huaman
하지만,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는 밴드의 앨범이 현대의 녹음 방식과 같이 많은 녹음 시도와 하나씩 끊어서 녹음하고 이어 붙여 완성하는 방식이 아닌 그저 밴드의 라이브 사운드가 기록된 녹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밴드는 LA에서 바쁜 라이브 일정을 소화하는 도중 딱 하루, 유일하게 공연이 없던 날 휴식도 반납한 채 LA의 스튜디오로 향했습니다. 그리곤 공연 셋리스트 그대로 11개의 트랙을 하루 만에 모두 녹음 한 것이 바로 올해 발매 된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의 데뷔 앨범 [The Sketch]이죠.
사실상 밴드의 라이브 무대를 공연장에서 스튜디오로 옮긴 것뿐이었습니다. 녹음도 똑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졌고,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던 것은 밴드의 공연을 관객이 아니라 약 1980년대까지 이어졌던 전통적인 테이프 녹음 방식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과 당시에 편곡을 마치지도 않아서 가사도 존재하지 않던 곡을 그냥 녹음했다는 것뿐이죠. 이 곡은 후에 오스틴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사를 적고 보컬만 얹혀 앨범의 마지막 트랙 ‘Sympathy for Sunday’로 수록되기도 하였습니다. (앨범의 타임라인을 따라 듣다 보면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다.) 라이브성을 중시하는 녹음, 완벽하지 않은 녹음마저 그 시대의 펑크 밴드를 따라가고 있었죠.
거스 발드윈은 돈이 없어서 그랬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인터뷰에서 함께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웃음)

©Griffin Lotz
하지만, 아쉽게도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는 그 시대의 펑크 밴드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밴드의 멤버들이 펑크 문화에 빠져 살아온 것은 맞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것도 아닐뿐더러 현시대에는 당대 주류였던 펑크 문화 이외에 접해왔던 문화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음악에 관련해서도 밴드 멤버들이 모두 오랫동안 사이키델릭 록 혹은 개러지 록 밴드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보니 (이래서 합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닌지..) 밴드의 음악에는 자연스럽게 해당 색이 들어가 완전한 펑크 록이라고 분류하기도 어려웠고, 관객들도 이를 헷갈렸다고 합니다.
TMI. 펑크 밴드를 간절히 원했던 거스 발드윈은 밴드 초기 아무도 스터드가 박힌 손목 밴드를 차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고 한다.

©Kylie Bly
이렇듯,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는 펑크 문화의 태도와 정신을 계승하지만 결국은 현대의 요소를 차용하고 있기에, 전직 히피와 펑크 파트타이머라는 농담을 통해 스스로를 낮추고 선대의 펑크 문화에 존경을 표하게 됩니다. 밴드는 “결국 그냥 로큰롤일 뿐이에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이 그 누구보다 원했던 펑크를 현대의 모습으로 새롭게 표방하고 있다고 에디터 Meddlee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펑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당당하게 이 노래를 추천드립니다.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유명세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사랑하는 문화와 가치가 사라지는 것에 다수가 안일해지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나서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거스 발드윈 앤 더 스케치의 ‘What the Freaks Say’는 괴짜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밴드가 느꼈던 고립감과 결국에는 자신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이 밴드가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전직 히피와 펑크 타이머들이 어떻게 펑크를 되살리는지 톡톡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