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트노벨
죽어있던 흑염룡을 깨울 시간이 왔다...!
2000년대 이모(Emo)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이하 MCR)가 2026년 드디어 한국을 찾는다. 한국이 포함된 아시아 투어에 앞서 3집 [The Black Parade]을 기념하는 <Long Live The Black Parade Tour>를 예고한 MCR. 그렇기에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그들의 대표작 3집 [The Black Parade] 을 중심으로 셋리스트가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이 앨범 모르고 간다면…? 그건 앙꼬 없는 찐빵, 기타 없는 밴드, 맥주 없는 락페나 다름없다…!
[The Black Parade]는 단순한 노래 모음이 아닌, 하나의 서사로 짜인 록 오페라다. 그래서 이번 공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앨범의 스토리라인과 그 흐름을 이끄는 핵심 트랙들을 알아보자.
✦ 3집 [The Black Parade]

©My Chemical Romance
MCR의 대표작 [The Black Parade]는 삶과 죽음, 기억과 후회, 사랑과 상실이 뒤섞인 웅장한 서사를 담고 있는 콘셉트 앨범이자, 한 편의 록 오페라다. 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주인공 '페이션트(The Patient)'는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생생했던 기억(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본 퍼레이드)으로 되돌아간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각 트랙은 유년의 기억(Welcome to the Black Parade), 분노와 허무함(Dead!, Mama), 슬픔과 체념(Cancer),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삶에 대한 의지(Famous Last Words)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감정선을 따라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렇기에 퍼레이드는 삶의 조각들이 다시 등장하는 거대한 연극의 틀이다. 그 안에서 한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에게도 묻게 된다.
“내 삶의 끝에 펼쳐질 퍼레이드는 어떤 모습일까?”

©My Chemical Romance
한편, "The Black Parade"는 MCR이 만들어낸 또 다른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2006년 8월, 런던 해머스미스 팔레 공연 무대에 오르기 직전, 이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 밤,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공연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좋은 친구 'The Black Parade'가 무대에 오릅니다."
객석엔 당황과 야유가 흘렀지만, 곧 검은 제복을 입은 멤버들이 등장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이건 단순한 콘셉트가 아니었다. 정규 앨범 발매(2006년 10월)보다 앞서, 앨범 속 이야기를 예고한 장치였다. 주인공이 죽음을 맞으며 자신을 내려놓듯, 밴드도 본래의 정체성을 벗고 이야기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이후 앨범 투어 동안 MCR은 "The Black Parade"라는 자아로 무대에 올라, 실제로 퍼레이드의 세계를 구현해냈다. 그들의 거대한 연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 Phase 1. 죽음을 마주하다
🎵 The End. + Dead!

©My Chemical Romance, The Black Parade Is Dead!
"삐- 삐- 삐-"
병실을 울리는 심장 모니터 소리가 [The Black Parade]의 서막을 연다. 앨범의 첫 트랙 'The End.'는 단출한 기계음을 배경으로, 주인공 '페이션트'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순간을 그려낸다. 느린 심장 박동음은 생명이 꺼져감을 알리는 동시에, 지금부터 펼쳐질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그리고 이어지는 'Dead!'의 도입부. 삐- 소리와 함께 심장 소리가 뚝 끊기는 찰나, 기타가 몰아치며 죽음을 선언한다. 이 순간 주인공은 더 이상 병상에 누운 '환자'가 아니다. 아픈 육체에서 벗어나, 사후 세계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두 곡은 마치 하나의 호흡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삶의 마지막 순간과 죽음의 첫 순간을 잇는다.
이 극적인 전환은 음원이 아닌 라이브 공연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음원에서는 두 곡 사이에 짧은 공백이 있지만, 라이브에선 한 곡처럼 끊김 없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덕분에 두 곡 사이의 감정과 이야기 흐름이 더 명확하게 전달된다.
그중에서도 2007년 로스앤젤레스 공연은 이 연결성이 극대화된 무대다.보컬 제라드 웨이(Gerard Way)는 병상에 누운 채 무대에 등장하고, 모니터음이 끊긴 순간 환자복을 찢는다. 이후 'Dead!'가 터지면서 그는 이미 퍼레이드 복장을 갖춘 채 무대 앞에 서 있다. 관 속에 있던 사람이 부활한 듯한 장면. 이 라이브 무대를 보면 왜 이 두 곡이 연결돼 있어야 하는지 납득하게 된다.
✦ Phase 2. 죽음에 행진하다
🎵 Welcome to the Black Parade
락덕후는 이 노래를 들으며 딱 세 번 운다…
피아노 첫 음(G 노트)이 울릴 때,
가사 첫 소절 "When I was a young boy"가 나올 때,
후렴구 "We’ll carry on!"이 시작될 때.🤣
감정을 휘몰아치는 전개로 수많은 중2들의 가슴을 울렸던 이 곡은, MCR과 2000년대 이모 록을 대표한다. 'Welcome to the Black Parade'는 피아노로 조용히 시작해, 행진곡을 연상케 하는 드럼과 점점 커지는 밴드 사운드로 감정을 끌어올린다. 슬픔에서 체념, 그리고 고양감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람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하다.
곡의 핵심은 '죽음' 자체보다, 그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에 있다. 제라드 웨이는 죽음을 퍼레이드에 비유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죽음은 각자에게 가장 익숙하고, 또 가장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찾아온다고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죽음은 퍼레이드의 모습으로 다가오죠.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본 퍼레이드의 기억이, 그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맞닿은 형상이었던 거예요."
(Kerrang! Magazine, 2006)
이렇듯 기억은 떠나는 이에게는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고, 남은 이에게는 계속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마지막 순간, 낯선 공포 대신 익숙한 장면이 자리를 채우고, 그 이후에는 기억이 남아 다음 걸음을 밀어준다. "비록 네가 떠났더라도, 기억은 계속될 거야."라는 가사에서 드러나듯, 존재는 사라져도, 기억 속에는 영원하기 때문. 그래서 이 퍼레이드는 작별보다는 이어짐에 가깝고, "Carry on"이라는 외침은 삶을 이어가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함께 나아가자는 메시지 때문에, 공연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를 때 이 곡은 더욱 빛을 발한다. 높은 음역대로 제라드 웨이와 관객 모두 부르는 데 꽤 힘이 들지만… 이 역시 'Carry on' 해야 이 곡이 완성된다. 하하.
클린한 라이브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제라드 웨이 특유의 감정 과몰입과 무대 위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영상의 배경인 멕시코 공연에서 G 노트가 울리는 순간, 그리고 수천 명이 "When I was a young boy!"를 외치며 시작되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이 곡은 단지 들려주는 노래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완성하는 퍼레이드다.
✦ Phase 3. 죽음 이후 남겨진 이에게 고하는 인사
🎵 Cancer
'Cancer'는 [The Black Parade]에서 가장 슬픈 곡이다. 대부분이 고조된 록 넘버로 채워진 이 앨범 속에서, 이 곡은 피아노와 현악기만으로 최소한의 사운드를 구성하며 정적인 밀도를 만든다. 제라드 웨이는 이 곡을 "역대 가장 어두운 곡"으로 만들겠다고 했고, 실제로 시적인 표현을 배제한 살실적인 가사로 질병의 현실을 기록했다.
"머리카락은 다 빠졌고, 결혼도 못 할 거야.
난 축축히 젖은 채 하루하루를 세고 있어."
암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빌려,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이별과 상실의 감정을 노래한다. 병상 위의 절망, 다가오는 이별 앞에서의 상실감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Cancer'는 인생의 시점마다 감상이 달라지는 곡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그저 슬픈 소설처럼 느껴졌다. 죽음은 아직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성인이 되어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슬픔을 겪어본 이후엔 이 노래가 더 깊숙이 와닿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낀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걸, 이 곡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거기엔 사별, 이별, 놓아보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있다. 이제 이 노래는 한 사람의 고백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겪어낸 상실의 기록이 되었다.
이 곡의 베스트 라이브는 단연 'Live in Mexico'.
화려한 무대 연출의 직전 무대들과 달리, 이 무대에는 조명 하나와 피아노, 그리고 제라드 웨이의 목소리만이 남았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모든 연출물들을 제거하는 대신, 여백을 남겨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었다. 2만여 명이 넘는 관객이 핸드폰 불빛을 흔드는 장면은 장관이니 이 영상을 꼭 보자.
✦ Phase 4. 죽음에서 삶으로
🎵 Famous Last Words
'Famous Last Words'는 [The Black Parade]의 본편을 마무리하는 이 곡은, 죽음으로 향하던 서사를 삶으로 전환시킨다. 앞선 트랙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분노, 체념, 상실을 그렸다면, 이 마지막 트랙은 삶에 대한 의지를 이야기한다.
곡은 여전히 불안한 감정에서 출발한다.
"많은 불빛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나는 아직 완전하지 않아."
하지만 후렴으로 갈수록 전개는 선명해진다.
"난 살아가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이 세상을 혼자 걸어가도 괜찮아."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 없음’은 희망을 되찾았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삶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의 변화에 가깝다. 무언가가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비극을 지나온 끝에 더는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상태다. 죽음에서 삶으로, 절망에서 의지로. 이 곡은 [The Black Parade] 전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고통에 머무르던 서사를 앞으로 나아가는 서사로 바꾸는 지점이다.
이 트랙은 MCR이 해체 직전 마지막으로 공개한 공식 라이브 영상의 곡이기도 하다. 선택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곡이 밴드의 태도와 메시지를 가장 명료하게 담고 있기 때문.
제라드 웨이는 이후 인터뷰에서 [The Black Parade]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결국 메시지는 하나다. 살아남아라. 너의 삶을 살아라. 친절해져라.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The Black Parade]는 죽음을 노래하는 콘셉트 앨범이지만, 그 끝에서 남는 말은 죽음이 아닌 삶이다.
l Photo. Barry Brecheisen / Pinterest / Kim Erland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