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언이 사랑한 포티스헤드의 [Dummy]](https://resource.ualive.com/contents/post/2026/02/24/28cd0509-fd6e-4be9-89e8-5458e31e65d7.jpg)
아티스트가 사랑한 아티스트의 앨범을 만나보는 시간
아티세이, 다섯 번째 뮤지션 이이언.
예전 인터뷰나 다른 지면에서 이미 포티스헤드(Portishead)를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영향을 받은 앨범, 심지어는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하나의 음반으로도 포티스헤드를 꼽았었다. 어느 음악 대담에서는 역사상 가장 저평가된 앨범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 이 지면에서 또 포티스헤드를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어디서 몇 번이라도 더 포티스헤드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팬심'과도 조금 다른, 음악가로서 경의의 표현이자 세상의 몰이해에 대한 탄원이다. '저평가'라던가 '몰이해' 같은 단어를 선택한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포티스헤드 정도면 충분히 호평받고 이해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평가는 상대적이니까. 나는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포티스헤드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Martyn Goodacre
포티스헤드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밴드로 1991년에 결성되어 1994년 데뷔 앨범 [Dummy]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으며, 힙합식 샘플링·턴테이블 기법과 과감하고 공격적인 로우파이 질감의 사운드, 그리고 베스 기븐스(Beth Gibbons)의 음울한 보컬을 결합해 이후 '트립합(trip-hop)'으로 불리게 된 사운드의 대표적 형식을 확립한 팀이다.
우울했던 학창시절(학창시절이 우울하지 않을 수 있나?) 나는 포티스헤드의 [Dummy] 앨범을 줄곧 반복해서 들었다. 등교길에, 하교길에, 쉬는 시간에, 점심시간에. 물론 그 시절 즐겨들었던 다른 앨범들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음악들이 내게 머물다 가는 동안 [Dummy] 앨범은 꾸준하게 자리를 지켰다. 난 기본적으로 우울한 음악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는 편인데, 왜냐하면 우울한 음악이야말로 내가 우울함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음악들은 내 슬픔의 대리인 같은 역할을 했다. 혹은 자율주행-우울이랄까.

©Portishead
내가 슬픔과 우울을 직접 힘겹게 이고 지고 다니는 대신, 이어폰을 꼽고 음악에 맡겨두면 그것들은 어느새 가볍게 부유하며 심지어 나를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가곤 했다. 그러면 나는 슬픔과 우울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그 섬세한 구조물을 얼마 동안이고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아마 [Dummy] 앨범은 그 중에서도 거의 가장 우울한 앨범이었을 거다. 1) 내가 우울한 음악들을 몹시 사랑했던 것은 분명하고, 2) [Dummy]는 최고로 우울한 앨범이었으며, 3) 그러므로 당연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앨범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내가 이 앨범을 사랑한 것은 우울한 정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 앨범이 주는 슬픔의 '영화적 거리감'에 특히 매료되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정확히 몰랐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레이어를 가진 메타적 체험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자연스러운 악기의 소리 대신 이미 녹음된 연주가 어떤 장치/매체에서 재생되는 듯한 특유의 로우파이 사운드를 듣게 된다. 라디오나 레코드 플레이어를 듣는, 혹은 영화관에서 오래된 영화를 보는 '내'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청자는 음악 뿐 아니라 음악이 들리는 장면(매체) 자체를 함께 듣는다. 열화된 음질과 노이즈 속에서 빛바랜 과거의 어느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그것은 내가 음악적 구조의 일부가 되는 경험이었고, 다른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자극을 내게 전해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자극은 '창작의 욕구'였던 것 같다. 기술적 결함·매체적 흔적을 감정의 언어로 번역해 멜랑콜리한 정서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청자가 음악의 내용뿐 아니라 '소리가 전달되는 방식'을 의식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이런 예술적 설계는 사실 대중들보다 창작자에게 더욱 매혹적이지 않았을까. 이 앨범에서 그들은 다른 음악에서 따온 샘플링 뿐 아니라, 직접 연주한 것을 녹음하여 바이닐로 깎아 만든 후 표면을 긁거나 휘는 등의 방법으로 손상시키고 다시 그것을 샘플링하여 마치 오래된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서 가져온 듯한 느낌을 만들어 냈다. 때로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것을 다시 소형 녹음기에 녹음해서 노이지하고 로우파이한 질감을 만들기도 하고, 컴프레서 같은 스튜디오 장비를 일부러 극단적이고 과도한 세팅으로 사용해서 펌핑하는(출렁이는) 그루브의 느낌을 빚어내기도 했다.

©Martyn Goodacre
그것은 사상 최초로 시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의 다른 음악들에서는 우연히/소극적으로/조심스럽게/부분적으로 사용되던 테크닉이었다. 실제로 당시의 많은 사운드 엔지니어들은 포티스헤드의 사운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과하다'고 여겼다. 당시 통용되던 '좋은 믹스'의 기준에서는 중고역대 주파수가 너무 자극적이었고 컴프레서 설정은 잘못되었으며 노이즈 플로어는 지나치게 높았다. 그렇게 과하게 열화되고 왜곡된 사운드는 보컬이나 드럼 루프 일부 구간 4마디 정도에 대비(contrast)를 위한 ‘이펙트’로 적당히 사용되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포티스헤드는 그런 '용인되는 범위'의 틀을 적극적으로 부수고, 그 틀 바깥으로 나아갔다.
나는 거기에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모멘트, 메타적 음악 미학의 중요한 어떤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에도 존재했던 로우파이 프로세싱과 킥 사이드체인에 의해 출렁이는 펌핑 사운드 같은 것들이, '그런 식'으로 (혹은 '그런 식으로까지!') 사용될 수 있다는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는 순간. 어떤 스타일을 대담하고 일관되게 밀어붙여 기어코 제4의 벽을 부수는 순간. '이래도 되나?'가 '이래도 되는구나'를 거쳐 '이런 아름다움도 있구나'로 이어지는 전환의 순간이. 그리고 그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어떤 음악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밴드 못(Mot)과 이이언 솔로를 포함해서.
사실 나의 모든 음악은 '음악이 어떤 식으로 음악일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일종의 메타-뮤직이다. 나는 그 방법론을 포티스헤드에게서 배웠다.
✒️ Writers. 이이언(eAeon)

이이언은 솔로 뮤지션 겸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밴드 못(Mot)과 나이트오프(Night Off), 컬렉티브 '박쥐단지'의 멤버이기도 하다. 정교하면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감각의 앨범들로 한국대중음악상, 한국대중음악100대 명반 등에 수차례 이름을 올리며 K-얼터너티브 신의 대체할 수 없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모던록과 재즈, 전자음악, 힙합 등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독창적이고 새로운 음악들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l Photo. Martyn Goodac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