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illz
2026년 상반기, 가장 뜨겁게 주목받은 아티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배드 버니(Bad Bunny)일 것입니다. 나쁜 토끼라는 예명과 다르게 어딘가 사람 좋은 얼굴을 띄고 있는 이 푸에르토리코 아티스트는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올해의 앨범상(Album of the Year)과 슈퍼볼 하프타임 쇼(Superbowl Halftime Show) 헤드라이너의 주인공을 꿰찼는데요.
마트 판매원에서 라틴 팝의 황제가 되기까지. 그가 밟아온 여정을 함께 감상해보시죠!

©Tripadvisor, Bad Bunny
1994년 푸에르토리코 바야몬, 범상치 않은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트럭 운전사인 아버지와 교사 출신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탄생한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오카시오(Benito Antonio Martínez Ocasio, 이하 베니토 안토니오)의 곁에는 늘 음악이 함께했죠. 살사, 도마니카 공화국에서 유래한 라틴 장르 메렝게 음악을 자주 듣곤 했던 부모님 아래서 자란 베니토 안토니오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음악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살 무렵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푸에르토리코 출신 래퍼 비코 C(Vico C)의 음악은 그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죠.
🐰 : 교회에서 처음 노래를 시작했어요.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와 함께 합창단에 들어갔고, 전 매주 그곳에서 노래를 불렀죠. 13살이 될 때까지 말이예요. 어쩌면 교회 합창단이 ‘배드 버니’라는 아티스트의 초석이 되어준 걸지도 몰라요.

©MusicTech, Bad Bunny
교회 합창단을 떠난 베니토 안토니오는 14살부터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까지 컴퓨터로 비트를 만들던 학교 친구들 앞에서 랩을 하곤 했던 청년이었죠. 뼛속까지 흥겨운 라티노의 DNA로 비트가 떠오르지 않으면 살사 비트에 맞춰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이는 재간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 : 집 발코니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살사 가수 헥토르 라보에(Héctor Lavoe)의 부르곤 했어요. 이웃들이 제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게 좋았죠. 헥토르 라보에의 노래는 제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Supermercados Econo, Bad Bunny
201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베니토 안토니오는 라디오 진행자가 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대학교의 시청각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에 입학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을 개설했죠. 어릴 적부터 만들었던 음악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인데요. 생계를 위해 슈퍼마켓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아르바이트, 학업을 병행하며 작곡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 : 나의 길은 음악이구나

©Bad Bunny
그렇게 베니토 안토니오는 ‘배드 버니’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어릴 적 토끼 복장을 한 채 잔뜩 심통난 표정을 짓고있던 사진을 보고 떠올린 나쁜 토끼라는 독특한 예명. 배드 버니는 ‘토끼는 흔한 이름이지만 앞에 ‘Bad’를 붙히면 사람들에게 잘 각인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 전 원래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아티스트가 되려 했었어요. 토끼 마스크 같은 걸 쓰려고 했죠.
🎙️ : ‘배드 버니’라는 활동명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 : 토끼가 아무리 나빠봤자 여전히 귀여워 보이잖아요. 전 좋은 남자거든요 ૮꒰˶ ❛ ˕ ❛˶꒱ა
- <The Late Late Show with James Corden> 中
직감은 적중했습니다. 2016년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한 트랙 ‘Diles’은 업로드 일주일 만에 백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페라풍의 감성과 날카로운 가사 그리고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이 돋보이는 ‘Diles’는 배드 버니의 잠재력을 마음껏 보여줬고, 그의 잠재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음악 관계자들은 푸에르토르코에서 나타난 신예 스타를 주목했습니다. 레이블의 러브콜이 쏟아진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슈퍼마켓에서 근무를 하던 배드 버니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정체는 푸에르토리코 독립 음반사 리마스 엔터테인먼트(Rimas Entertainment)의 설립자이자 오랜 시간 배드 버니의 매니저로서 곁을 지키고 있는 노아 아사드(Noah Asaad)였죠. 노아 아사드는 배드 버니의 위대한 여정의 시작점이 될 제안을 걸었습니다.
💿 : 이제 슈퍼마켓 일은 그만 둬요. 우리 역사를 써봅시다.

©Devin Christopher
노아 아사드는 배드 버니의 매니저로서 아티스트의 길잡이가 되어줬습니다. 끈끈한 우애를 다진 두 사람은 라틴 음악계에 당찬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음반 제작자 DJ 루이안(Dj Luian)의 레이블 히어 디스 뮤직(Hear This Music)과의 계약을 체결한 배드 버니는 2016년 12월, 데뷔 싱글 ‘Soy Peor’를 발매했습니다.
빌보드 핫 라틴 송즈(Billboard Hot Latin Songs) 19위를 거머쥔 이 트랙은 히어 디스 뮤직의 공동 설립자 DJ 루이안(DJ Luian)이 참여한 트랙입니다. 배드 버니가 그동안 쌓아온 명성으로 빠르게 주목받은 ‘Soy Peor’는 배드 버니를 라틴 아메리카 트랩 씬의 선구자로 만들어주기도 했죠. 뜨거운 인기 덕에 6개월 후, 제이 발빈(J Balvin), 오즈나(Ozuna), 아르칸헬(Arcángel)이 함께한 리믹스 버전이 발매되었습니다.
이후, 카롤 지(Karol G)를 포함한 다양한 팝스타들과의 협업을 이어간 배드 버니는 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특별한 콜라보레이션을 성사시켰습니다. 바로 래퍼 카디 비(Cardi B)와 함께한 ‘I Like It’이었죠. 2018년 발매된 ‘I Like It’은 1967년 발매된 히트곡 ‘I Like It Like That’의 샘플링을 차용해 중독성있는 라틴 힙합 사운드를 탄생시켰는데요. 라틴 유산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곡은 발매와 동시에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빌보드 핫 100 차트(Billboard Hot 100) 1위, 제61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부문의 후보 지명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 : ‘I Like It’이 라틴 트랩 곡으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른 곡이 되었습니다. 이 곡은 차트에서 스페인어 및 스페인어가 가미된 노래들이 급격히 증가하는 흐름의 일부입니다. (…) 이는 동시에 시대와 그 순간, 그리고 국경이 더욱 굳건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보여주는 새로운 개방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2018년 빌보드(Billboard) 기사 中

©Alejandro Pedrosa, Rimas Entertainment
배드 버니의 질주는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8년 발매한 첫 번째 스튜디오 앨범 [X 100pre]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가 선정한 역대 최고 앨범 500선에 포함되었고, 2020년 발매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YHLQMDLG]는 전 세계 스포티파이(Spotify)의 연간 최다 스트리밍 앨범으로 기록되었죠. 배드 버니는 앨범에 수록된 11곡을 동시에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시키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Bad Bunny IG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El Último Tour Del Mundo]는 라틴 음악계에도 의미있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3집은 빌보드 200 차트(Billboard 200) 역사상 최초로 1위를 차지한 스페인어 앨범이 된 것인데요. 배드 버니의 가장 개인적이고 창의적으로 야심찬 작업으로 평가받았던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상업적, 음악적으로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배드 버니는 점차 ‘라틴 팝 황제’의 명성의 기초를 다져갔죠.
🐰 : 코로나 19 격리 기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 시간은 제 안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었고, 그 감정들이 그대로 음악에 담겼습니다. 제목은 말 그대로 ‘세상의 마지막 투어’라는 뜻이지만, 진짜 은퇴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일종의 상상 속 콘셉트죠.

©Eric Rojas
대망의 2025년, 배드 버니 음악 인생에 중요한 작품이 될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DtMF]가 발매됐습니다. ‘DeBÍ TiRAR MáS FOToS’, 사진을 더 많이 찍어둬야 했는데라는 제목의 앨범은 자신의 고향,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배드 버니의 그리움과 사랑을 느낄 수 있죠. [DtMF]의 가사 대부분은 사랑, 실연, 파티, 가족에 대한 내용이지만,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주권 하에 겪는 정치적 문제, 특히 젠트리피케이션과 문화적 정체성 상실과 같은 복잡한 문제들을 용기있게 얘기합니다.
En el verde monte adentro aún se puede respirar
깊은 푸른 산속에서, 아직 숨을 쉴 수 있어
Las nubes están más cerca, con Dios se puede hablar
구름이 더 가까워지고, 신과 이야기할 수 있어
Se oye al jíbaro llorando, otro más que se marchó
떠나간 또 다른 동포의 울음소리가 들려
No quería irse pa' Orlando, pero el corrupto lo echó
그는 올랜도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부패한 자가 그를 쫓아냈어
- Bad Bunny ‘LO QUE LE PASÓ A HAWAii’ 中
이 앨범을 통해 배드 버니가 세운 이정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아티스트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영예,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과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헤드라이너까지. 배드 버니는 2026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습니다. 미국 내 이민자 문제가 화두로 오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스페인어로 채워진, 자국을 노래하는 배드 버니의 앨범이 최고의 음반으로 선정된 것은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 : 저는 이 앨범을 몇 년 동안 꿈꿔왔어요. 꿈에 그리던 여러 곡들이 마침내 현실로 구현되는 것을 보니 정말 큰 기쁨을 느낍니다. 이 앨범은 제가 저 자신을 더 잘 알게 해주고, 제가 가장 즐겨 부르고 창작하는 리듬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해준 경험들의 결과물이예요. 저는 푸에르토리코 사람이고, 카리브해 사람입니다. 플레나부터 레게톤까지, 제 음악, 문화, 역사, 그리고 제 고향의 역사가 제 혈관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제 커리어의 정점이자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이 순간, 저는 세상에 제가 누구인지, 베니토 안토니오가 누구인지, 푸에르토리코가 어떤 곳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Eric Rojas, Bad Bunny
The Only Thing More Powerful Than Hate Is Love
증오보다 더 강력한 것은 오직 사랑 뿐이다
배드 버니의 슈퍼볼 하프타임쇼 공연장을 가득채운 전광판 문구입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도 굳건히 사랑을 외치는 푸에르토리코의 나쁜 토끼. 세계의 중심에서 외치는 그의 강력한 메시지는 더욱 선명하게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 Photo. Eric Rojas, Rimas Entertai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