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 ‘세련됨’이나 ‘새로움’, 혹은 ‘레트로’ 같은 말로 분류되는 유행의 가치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매력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키린지(KIRINJI)는 1996년 데뷔 이후 어느덧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리스너들의 감정을 흔들고 긴 여운을 남기는 음악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에일리언즈(Aliens)’는 세대를 건너 키린지의 시대를 직접 겪어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마치 그 시절을 함께 지나온 듯한 감각을 선물하죠. 어쩌면 이 곡은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언어가 다름에도 키린지의 음악이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디터는 그 답이 결국 ‘직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 음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감정.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라는 문장이 딱 들어맞는 느낌이죠.
키린지가 만들어낸 독보적인 분위기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우리를 또 다른 생각 속으로 이끕니다. 곡을 ‘해석’하기 위한 고민이 아니더라도, 흩어져 있던 내면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주거나, 아직 철없고 부족한 마음가짐을 잠시나마 ‘어른’이 된 듯한 상상으로 다듬어주는 힘이 있죠. 바로 그 특별함이 키린지 음악의 매력입니다.
키린지의 음악은 숫자와 기록보다 더 강한 ‘유대감’을 만들어냅니다. 숫자와 기록이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현실 속에서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죠.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곡들이 쏟아지는 범람의 시대 속에서, 키린지가 언제까지고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굳건한 바위처럼 존재해주길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키린지의 음악은 정말로 그 바위처럼 아니, 그보다 더 뚝심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조용히 그리고 이롭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몇 차례 내한 무대로 국내 팬들에게 추억을 선물해온 키린지를, 이제는 첫 단독 내한 공연을 앞두고 유얼라이브가 먼저 만나보았는데요. 부디 이번이 ‘키린지’라는 아티스트를 더 깊이 탐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KIRINJI IG
Q1. 한국 팬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 부탁드립니다.
1997년에 CD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활동한 지 거의 30년이 되어갑니다.
2013년에 함께 데뷔했던 동생 호리고메 야스유키(Yasuyuki Horigome)가 탈퇴했고, 밴드 편성 시기를 거쳐 현재는 호리고메 타카키(Takaki Horigome)에 의한 솔로 프로젝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지난 2023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Pentaport Rock Festival), 2025년 원더리벳(WONDERLIVET)에 이어, 2026 년에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단독 내한 콘서트를 진행하게 됐는데요. 앞선 공연들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와 이번 단독 공연을 앞둔 소감이 궁금합니다.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는 ‘KIRINJI’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어 주고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불러줘서 정말 놀랍고 기뻤습니다. 또 원더리벳에서는 관객들이 *서클핏(Circle pit)을 하며 함께 뛰어놀던 게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광경은 일본에서의 키린지 공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 더욱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거쳐 이번에는 단독 공연으로 찾아가는 만큼, 이번 공연 역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분위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연주자들은 지난 몇 년간 계속 호흡을 맞춰온 멤버들이라, 분명 좋은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클 핏 : 반경 1~2m 크기의 원 모양 핏을 말하며, 사람들이 뱅글뱅글 돌면서 뛰는 행태

©KIRINJI IG
Q3. 전작 [Steppin Out] 이후 2년 4개월 만에, 새 앨범 [TOWN BEAT]를 발매했습니다. 앨범 커버와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사운드적으로도 더욱 세련되고 도회적 느낌이 짙게 느껴지는 앨범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앨범의 제목과 전체적인 컨셉을 잡게 된 배경 혹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앨범을 만들 때, 처음부터 콘셉트를 정해두고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수록 예정 곡들이 모두 모이고 나서야, 그때의 제 기분이나 음악적인 경향을 비로소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전체적으로 평소 키린지의 곡들보다 더 밝고 템포가 빠른 곡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는 라이브 공연 사이사이에 곡을 작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에서 느낀 고조된 감정과 긴장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스튜디오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같습니다.
앨범 타이틀 ‘TOWN BEAT’는 1번 트랙 ‘ルームダンサー(unseen dancer)’(feat. 오다 토모미(Tomomi Oda) 작업 당시의 가제(임시 제목)였습니다. 이 곡의 리듬 패턴이 모타운 비트(Motown Beat)였는데, 여기서 ‘모(Mo)’를 빼고 ‘타운 비트(Town Beat)’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타운 비트’라는 말이 앨범 전체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느껴서, 그대로 앨범 제목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KIRINJI IG
Q4. 키린지의 음악을 예전부터 들어온 리스너라면 기억하고 있을 또 다른 아티스트, 토미타 케이이치(Keiichi Tomita) 씨가 이번 앨범에서는 2번 트랙 ‘気になる週末’와 8번 트랙 ‘ベランダから(The View from Our Balcony)’의 스트링스(현악기) 편곡을 담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두 분의 음악적 협업은 항상 이상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서로에게 음악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또한 목표로 하는 음악적 방향성에도 공통점이 많은 편인가요?
토미타 케이이치씨는 제가 데뷔해 음악 제작 현장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가장 먼저 만난 프로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입니다. 그래서 녹음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이나 스튜디오 작업 노하우 등을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음악적인 취향도 대체로 비슷했다고 생각합니다. 화성이나 리듬에 재미가 있는 것, 곡의 구성력이 돋보이는 음악 등을 좋아하는 점이요.
서로에게 음악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그의 프로젝트인 *Tomita-lab에 호리고메 타카키로서 몇 곡의 작사로, 때로는 보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사가로서 좋게 평가해 주는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Tomita-lab : 프로듀서 토미타 케이이치의 셀프 프로젝트 명
Q5. 그동안 키린지의 음악을 설명하자면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어딘가 몽환적이면서도, 세련되고, 때로는 아련한 감정까지 느껴지는데요. 이런 특성 때문인지 세대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키린지의 음악에 꾸준히 공감하고 응답하는 리스너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호리고메 타카키씨가 음악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이어오고 있음에도 그 독보적 감성과 분위기는 여전히 키린지의 음악 안에서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음악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키린지만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게 의도하고 제작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키린지답게’ 만들어야겠다고 의식하면 오히려 지루한 곡이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키린지스러움’에 대해서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항상 신경 쓰고 있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그로부터 멀어지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기도 합니다.
굳이 ‘다움’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결국 제 안에 있는 버릇이나 습관까지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키린지답게, 그리고 호리코메 타카키답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6. 새 앨범 [TOWN BEAT]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호리고메 타카키씨께서 가장 공을 많이 들이셨거나 큰 애정을 쏟으신 트랙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있다면 그 곡의 제목과 선정 이유가 궁금합니다.
‘ベランダから’(The View from Our Balcony)는 남반구적인 비트에 일본적인 멜로디, 그리고 재즈와 브라질 음악풍의 화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사운드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ルームダンサー(unseen dancer)’(feat. 오다 토모미(Tomomi Oda)도 마음에 드는 곡입니다. 슈프림스(The Supremes)의 ‘恋はあせらず’의 리듬 패턴을 사용한 곡인데, 독특한 화성과 멜로디가 오다 토모미 씨의 보컬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그녀가 맡은 코러스 편곡 역시 곡의 분위기를 한층 더 좋게 만들어주었습니다.
Q7. 키린지의 음악 세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가 있다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와 함께, 꼭 들어보면 좋을 추천곡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누가 가장 저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인지에 대해서는 제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곡 작업의 참고로 자주 들었던 음악은 버트 배커랙(Burt Bacharach),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 존 레논(John Lennon),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도널드 페이건 & 월터 베커 (Donald Fagen & Walter Becker),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애쉬포드 & 심슨(Ashford & Simpson), 캐롤 킹(Carole King) 등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들었던 1970년대 말 일본 가요들도 제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디 온그(Judy Ongg)의 ‘魅せられて’, 후세 아키라(Akira Fuse)의 ‘君は薔薇より美しい’, 야시로 아키(Aki Yashiro)의 ‘舟唄’같은 곡들입니다.

©KIRINJI IG
Q8. 아티스트 키린지로서, 그리고 호리고메 타카키 개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성과나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건강에 유의하면서 꾸준히 좋은 작품을 만들고, 더 좋은 라이브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저 같은 세대의 뮤지션에게는 그것이 의외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본인이 다치거나 병에 걸리기도 하고, 부모님이 입원하시기도 하고, 혹은 전혀 인기를 얻지 못하게 되기도 하니까요.
좋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매우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Q9.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편하게 부탁드립니다!
항상 뜨거운 응원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이 첫 단독 공연인 만큼, 최신곡부터 익숙한 곡까지 다양하게 준비했습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연주할 테니, 마음껏 자유롭게 즐겨주세요!
l Photo. KIRINJI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