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틴 음악의 파이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지며, 이제는 팝 시장의 중심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배드 버니(Bad Bunny)의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올해의 앨범 수상, 로살리아(Rosalía)의 브릿 어워드(BRIT Awards) 올해의 국제 아티스트(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수상, 푸에르자 레지다(Fuerza Regida)의 빌보드 앨범 차트 200(Billboard 200) 2위 돌파까지.

©Kevin Winter/Getty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에디터 Meddlee의 시선에는 지금 이 두 사람이야말로 라틴 음악을 넘어 전체 음악 시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존재로 보입니다. (물론 실제로도 가장 빠르게 하입을 얻고 있는 팀이기도 하고요. 🤭)
이미 한차례 소개 드린 적 있지만, 그 사이 또 한 번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CA7RIEL & Paco Amoroso
아르헨티나의 뮤지션 듀오 카트리엘(CA7RIEL)과 파코 아모로소(Paco Amoroso)입니다!
앞서 언급은 안 했지만, 물론 이 둘도 상을 받았습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최우수 라틴 록, 얼터너티브 앨범 부문을, 라틴 그래미 어워드(Latin Grammy Awards)에서는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5관왕을 기록했죠.

©CA7RIEL & Paco Amoroso
그리고 이 모든 성과가 단 한 장의 EP, [PAPOTA]에서 나왔다는 점이 더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EP는 무엇이냐?
이 작품은 2024년 그들의 폭발적인 상승세의 출발점이 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 미국의 공영방송 NPR이 제작하는 콘서트 영상 시리즈) 라이브 음원과 4곡의 신곡으로 구성된 EP인데요.
당시 공연에서 두 사람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에너지와 퍼포먼스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해당 영상은 그 해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18년간 이어진 타이니 데스크 전체 영상 기준으로도 8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NPR Music
조회수 상위권 영상들을 보면 두아 리파(Dua Lipa), 맥 밀러(Mac Miller), 앤더슨 팩(Anderson .Paak)처럼 이미 글로벌 인지도를 갖춘 아티스트들이 수년간 쌓아온 조회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이들이 1년 만에 약 5천만 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것을 보면 그 파급력을 더욱 실감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 거대한 주목에 대한 그들의 응답이 바로 [PAPOTA]였습니다.
‘Papota’는 아르헨티나 슬랭으로 스테로이드를 의미하는 단어인데요. 이들은 갑작스럽게 쏟아진 관심과 성공, 그리고 그에 따라붙는 과도한 기대를 ‘약을 맞고 근육을 키운다’는 이미지에 빗대어 풍자합니다. 동시에 당시 라틴 음악 씬에서 소비되던 과장된 남성성을 함께 비틀어냈죠.
실제로 EP 발매 당시에는 이러한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확장한 단편 영화까지 함께 공개하며, 단순한 음악을 넘어 하나의 서사로서 작품을 완성시키기도 했습니다.

©totopons
“우리 삶은 TV쇼 같고, 매 에피소드마다 바뀐다.”
카트리엘과 파코 아모로소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을 하나의 밴드나 특정 장르에 국한된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캐릭터’로 인식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라틴 음악이 팝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유와 동시에 에디터가 이들을 특히 주목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레게톤 장르의 라틴 음악 ‘Despacito’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현대의 라틴 음악, 그리고 현지에서도 여전히 지배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레게톤 중심의 흐름 속에서, 이 듀오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레게톤(Reggaeton): 레게에서 유래된 라틴 댄스음악. 힙합과 살사, 일레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있다.
이들의 음악은 앨범 단위는 물론, 하나의 앨범 안에서도 트랙마다 장르가 급격하게 전환되며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만들어내는데요. 하우스, 덥스텝, EDM까지, 어쩌면 하나의 일관된 앨범이라기보다 ‘아카이빙’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트랙이 넘어갈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제시하죠. (라틴 음악과의 직접적인 결합은 아니지만, 로살리아가 앨범 [LUX]에서 클래식을 끌어온 시도 역시 저에게는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CA7RIEL & Paco Amoroso
카트리엘과 파코 아모로소의 새 정규 앨범 [Free Spirits]가 발매되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선공개 트랙부터 스팅(Sting)과 잭 블랙(Jack Black)이 참여하며 이미 큰 화제를 모았었는데요. 발매 과정 역시 하나의 ‘연출’처럼 전개되었습니다. 번아웃을 겪었던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말, 당초 발매를 예고하며 트랙리스트까지 공개했던 정규 앨범 [Top of the Hills]의 무기한 연기와 폐기를 연달아 선언했다가, 불과 몇 달 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꺼내 들며 이번 앨범 공개에 이르게 되는데요.
[Top of the Hills]의 수록곡이었던 ‘Beto’s Horns’
특히 스팅과 함께한 선공개곡 ‘HASTA JESÚS TUVO UN MAL DÍA’의 가사 “예수님도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다”에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성공과 그 무게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대목이었습니다.
또한, 이번 앨범은 ‘Free Spirits Wellness Center’라는 가상의 힐링 센터(스팅이 해당 센터의 CEO로 나온다..)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며, 전작과 같이 단편 영화까지 함께 공개되었는데요.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지점은, 그들의 대응 방식은 같으나 같은 장르에 안주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보사노바, 재즈, *바차타 등 트랙이 진행될수록 이들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밀어붙이는 듯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바차타(Bachata): 카리브해에 위치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유래한 전통 음악의 이름이며, 동시에 남녀가 함께 추는 커플 춤 종류 중 하나이자 소셜 댄스이기도 하다.
이로써 앨범에 대한 창작 의도나 주제는 공개가 되는대로 더 살펴봐야하겠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힐링 센터’라는 설정적 서사는 점차 흐려지고, 대신 보다 본질적인 자기 자신과의 합의, 혹은 내면적인 정리에 가까워지는 흐름이 느껴졌는데요.
그리고 그 도달점이 바로 앨범 제목이 말하는 ‘자유로운 영혼(Free Spirits)’, 즉 하나의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감정과 장르를 통과한 끝에 얻은 정신적인 깨달음과 맞닿아 있는 듯 보였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DWCq6ufEXcw/?img_index=1
‘Free Spirits Wellness Center’ 힐링 센터의 프로그램들
지난해 이들의 음악을 흥미롭게 들으셨던 분들이라면 물론이고, 아직 라틴 음악을 본격적으로 접해보지 않은 분들에게도, [PAPOTA]부터 [Free Spirits]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흐름은 한 번쯤 꼭 경험해볼 가치가 있는 여정이 아닐까 싶은데요. 새 앨범으로 2026년을 시작한 그들이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한 번 지켜보시죠! (내한도 해줄래..?)

©CA7RIEL & Paco Amoroso
한편, 카트리엘과 파코 아모로소는 어릴 적부터 각자 음악 학교를 진학하거나 바이올린을 배우는 등 오랜 시간 실력을 길러왔는데요. 이 둘은 6살 무렵 처음 만나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다 2010년부터 함께 음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프로그레시브 록과 펑크를 기반으로 한 밴드 애스터(Astor)로 약 7년간 활동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죠. 이후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2018년 듀오를 결성하고, 당시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던 트랩 사운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CA7RIEL & Paco Amoroso
그렇게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던 이들은 결국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출연을 계기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이죠.
결국 지금의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이러한 시간의 축적과 이후 확장된 다양한 장르적 시도들이 결합되어 형성된 결과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l Photo. Bruno Gent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