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중후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는 XXX텐타시온(XXXTENTACION), 릴 펌(Lil Pump), 그리고 당시의 포스트 말론(Post Malone) 등을 중심으로 힙합의 부흥과 메이저 시장으로의 확장을 이끈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이 플랫폼을 통해 등장한 뮤지션들을 ‘사운드클라우드 래퍼’라고 따로 지칭할 정도였죠.)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플랫폼은 힙합보다 전자음악이 먼저 강세를 보이던 공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당시 전자음악이 지금만큼 대중적이지 않았기에 힙합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지만, 사운드클라우드는 북유럽에서 출발한 서비스였고, 창업자 역시 사운드 디자이너 알렉산더 융(Alexander Ljung)과 전자음악 뮤지션 출신의 에릭 발포르스(Eric Wahlforss)였기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전자음악이 자연스럽게 주류를 이루고 있었죠.

요새는 사운드클라우드를 찾는 빈도가 다소 잦아들었지만, 저 역시 당시 사운드클라우드 디깅에 많은 시간을 쏟았던 사람 중 하나였고, 오늘 소개할 이 아티스트 역시 그 시절 꽤나 충격적인 등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인물입니다.
2021년, 츠비 클럽(tsubi club. tsunami bixxh club의 줄임말)이라는 이름의 신인 아티스트는 ‘burbank house’라는 곡과 함께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론 스포티파이에도 공개되었지만, 리믹스 버전인 ‘re:burbank.house’는 당시 사운드클라우드에서만 공개되었었죠.)
아무런 정보 없이 공개된 약 1분 40초 분량의 짧은 트랙. 이모 랩, 얼터너티브, 하이퍼팝이 뒤섞인 사운드 위로, 기타 리프와 함께 폭발하는 훅은 인터넷 음악 시대로 넘어가던 흐름 속에서 청자들을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는데요. (두 번째 싱글이 나오기 전까지 단 한 곡만으로 스포티파이 월별 리스너 10만 명을 넘었으니, 당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tsubi club
이후 밝혀진 정체는 비스퀵(Biskwiq)이라는 활동명으로 알려졌던 소렌(Soren)의 새로운 단체 프로젝트. 리믹스와 매시업 기반의 프로듀서로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입지를 다져온 그는 언더그라운드씬의 코어 팬층을 거느린 래퍼 에리즈(Aries)를 비롯해 카이 드림(Khai Dream), RYCE 등과 협업을 통해 언더그라운드 로파이 힙합 씬에 이미 이름을 알린 인물이었죠.
그렇게 팬들은 소렌이 츠비 클럽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인물들과 함께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뮤직비디오를 포함한 시청각적 방면까지 확장되는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려 한다는 기대에 들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습니다. ( ╥﹏╥ )

©tsubi club
하하, 물론 이게 진짜 마지막은 아니었고요. 소렌은 이후에도 다른 아티스트의 프로듀싱 작업을 이어가거나, 에리즈와 함께 츠비 클럽의 이름으로 투어를 돌며 스니펫을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만..
그 스니펫이 2024년 ‘laced up’이라는 앨범 단위의 작업물도 아닌 단 한 개의 싱글로 발매되기까지는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팬들 입장에서는 앨범이 아닌 단일 트랙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작업물이 공개되며 쓰비 클럽은 여론을 뒤집었는데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이 아티스트는 약 9분 25초 분량의 애니메이션 혼합 뮤직비디오 (물론 뮤직비디오 또한 티징 이후 1년의 공백 끝에 공개된 것이지만 ^^..)와 함께, ‘laced up’의 음원 버전은 물론 뮤직비디오를 위한 확장판 ‘laced up [director’s cut]’, 그리고 전작과 마찬가지로 리믹스 트랙 ‘re:laced up’까지 선보이며 그간의 공백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한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이어 같은 해 300명 이상의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한 대규모 팬 프로젝트, 애니메이션 <프리크리(FLCL)> 재탄생 프로젝트에서 원작 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을 맡았던 더 필로우즈(the pillows)의 ‘THE THIRD EYE’를 재해석한 버전까지 공개되며, ‘이제 정말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가는 건가?’ 하는 기대감을 다시금 끌어올렸는데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문장을 쓰면.. 다음 이야기는 당연히 아시겠죠.. ( ╥﹏╥ )?

©SBS <생활의 달인>
네, 그는 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026년, 팬들 사이에서는 이제 “츠비 클럽은 음원 발매 알레르기가 있다”는 농담이 반쯤 밈처럼 자리 잡으며, 기대를 내려놓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는데요. 그런던 와중 4월 1일, 츠비 클럽이 갑작스럽게 앨범을 예고합니다.
https://twitter.com/tsubiclub/status/2039417705527472406?ref_src=twsrc%5Etfw%7Ctwcamp%5Etweetembed%7Ctwterm%5E2039417705527472406%7Ctwgr%5E0e48002b5d6e19e61d0eabbd9285909f62f67098%7Ctwcon%5Es1_&ref_url=https%3A%2F%2Fwww.notion.so%2F34243137d5958026ad67ede3b6da25e5
하필 만우절이었고, 싱글도 아닌 ‘앨범’ 예고였던 만큼 팬들 역시 반은 농담으로 치부하고, 반은 혹시 모를 기대를 품은 채 지켜보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정말 츠비 클럽의 앨범 [trinket]이 발매되었습니다!!!!!
전작들과 달리 현재까지 별도의 뮤직비디오나 비주얼 콘텐츠는 공개되지 않아, 일부에서는 ‘그냥 포기하고 이전 작업물들을 모아서 앨범으로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어질 앨범 리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필요 없을 만큼 정말 흥미롭고 밀도 높은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이 아티스트의 앨범을 리뷰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감격)
그럼, 에디터 Meddlee의 개인적인 [trinket] 리뷰와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madebyabra
[trinket] (2026)
이 앨범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두 싱글을 짚고 넘어가는 일은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들은 창작자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훗날 이 앨범이 나아갈 방향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먼저 앞선 두 곡의 뮤직비디오를 간략히 살펴보면,
- ‘burbank house’ → 어딘가에 불시착한 소렌, 그리고 그를 쫓는 정체불명의 양복 차림 인물들.
- ‘laced up’ → 그들과의 대치 끝에 벌어지는 결투, 그리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와의 조우.
라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tsubi club YouTube
Runnin' laps, end up right where I started
계속 맴돌다 보니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왔네
Burnin' that wood bridge on the roof of my apartment
아파트 옥상의 나무 다리를 불태우고 있어
특히 ‘laced up’의 마지막 가사는 이러한 서사를 더욱 상징적으로 마무리 짓고 있는데요.

©tsubi club YouTube
이 문장은 어쩌면 소렌이 ‘츠비 클럽’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품었던 야망과 그에 따른 완벽주의, 나아가 ‘burbank house’ 이후 예상보다 훨씬 크게 쏟아진 관심과 기대에 이미 지쳐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처럼 느껴집니다.
이는 이후 꾸준히 타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하거나, 계속해서 무대에 오르는 등 창작에 대한 열망은 강한 것으로 보이나 츠비 클럽의 모습으로 메인에 나서지 않는 것이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야기된 회피가 공존했던 것으로 읽히기도 하죠.

©tsubi club IG
trinket : 값싼(자질구레한) 장신구, 하찮은 것
앨범의 제목처럼 이번 앨범은 그간의 행보와는 정반대의 방향을 택합니다. 즉흥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유롭고 거친 프로덕션 위에 라틴, 포크, 팝,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요소를 뒤섞으며, 트랙마다 장르가 유연하게 흩어지고 충돌하는데요.
이전까지 완성도 높은 팝과 전자음악을 치밀하게 결합해오던 완벽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오히려 최근 일렉트로 팝 유행 흐름에 가까운, 가볍고도 혼란스러운 구성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전과 유사한 결과물을 내놓았다면, 그 결과물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의 흐름 속에서 과연 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죠.)
그리고 에디터가 비슷한 장르의 다른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리뷰하며 항상 높게 평가했던 요소가 이러한 사운드적 혼란스러움을 어떻게 일관되게 유지하냐인데, 이 앨범은 글리치한 사운드 디자인을 앨범 전반에 녹여내며 각기 다른 트랙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내고 있습니다.
더하여 앨범의 아트워크 또한 기존에 보여주던 게임과 애니메이션에서 받은 영향을 확장하듯, 레트로 게임 이미지와 인터넷 사진들의 파편을 콜라주처럼 구성한 이미지를 글리치 사운드라는 청각적인 경험과 맞물리며 하나의 세계관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었죠.

©Disney <Hercules>
서사적인 측면에서도 앨범은 흥미로운 흐름을 이어갑니다. 마치 하나의 애니메이션처럼, 소렌을 성장 서사의 주인공으로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데요.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Hercules)>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의 스승, 필로크테테스(Philoctetes. 줄여서 Phil로 잘 알려져 있다)가 앨범 전반에 걸쳐 내레이션처럼 등장하며 트랙 간 서사를 자연스럽게 이어줍니다.
예를 들자면,
[3번 트랙] ‘lil qoo’
I don't want, I don't need this
난 이걸 원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아.
I can feel it in my bones, what you're feeling
네가 느끼는 감정을 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Look alive, kid) - (필 내레이션)
(정신 차려, 꼬마야) - (헤라클레스 등장 대사)
→
[8번 트랙] ‘all-time chump’
Hah, we won
하, 우리가 이겼어
→
[9번 트랙] ‘BUMPR’ (인터루드)
I thought you were gonna be the all-time champ
난 네가 역대 최고 챔피언이 될 줄 알았어.
→
[12번 트랙] ‘landslide’
Swing the bat harder, swi— (You did it, kid)
배트를 더 세게 휘둘러, 휙— (해냈어, 꼬마야!) - (애니메이션 <프리크리> 레퍼런스)
You did it, kid, you won by a landslide - (필 내레이션)
해냈어, 꼬마야, 압도적으로 이겼어! - (헤라클레스 등장 대사)
이처럼 트랙 간 대사와 가사가 이어지며, 아티스트가 쌓아온 취향과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서사를 완성시키고 있죠.
이외에도 일본의 아트 펑크 밴드 미도리(Midori)의 ‘ゆきこさん (Yukiko-san)’을 활용한 트랙 ‘BURNMATERIAL’, 아예 대놓고 솔직한 심정을 풀어내는 트랙 ‘Recap :’ (한국말로 ‘요약’) 등, 앨범 곳곳에는 놓치기 아까운 흥미로운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니 혹시 아직 이 아티스트나 앨범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시라면, 이 글과 함께 오랜 창작의 고민 끝에 자유의 몸이 된 츠비 클럽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해 주실 음악이 있다면 댓글로 함께 남겨주세요!
l Photo. tsubi 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