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아티스트의 삶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꼽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듯 합니다. 오는 5월 13일, 마이클 잭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마이클>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마이클>을 즐기기 앞서, 유얼라이브는 마이클 잭슨의 삶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결성한 잭슨 5(The Jackson 5)부터 ‘팝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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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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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가 될 운명을 가진 아이

©Michael Ochs Archives
유난히 노래를 잘하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는 이름이 되었죠. 마이클 조셉 잭슨(Michael Joseph Jackson, 이하 마이클), 1958년 여름 미국 인디애나 잭슨 가문에서 태어난 여덟 번째 아이 곁에는 늘 음악이 함께 했습니다.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다루며 연주자를 꿈꾸던 어머니, 기타를 연주하던 아버지는 현실에 벽에 부딪혀 그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홉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들은 각자 파트타임 잡과 크레인 운전사라는 직업을 택했죠.

©Volkan Yüksel
아버지의 꿈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자식들에게 음악의 재능을 발견한 그는 ‘잭슨 브라더스(The Jackson Brothers)’라는 가족 밴드를 결성했는데요. 당시, 어린 나이였던 마이클을 제외한 그의 형들은 아버지를 따라 음악 활동에 몰두했습니다.
마이클이 4살이 되던 해,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그의 어머니는 마이클에게 남다른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을 잭슨 브라더스의 멤버로서 추천했죠.
1964년, 잭슨 브라더스에 합류한 마이클은 콩가와 탬버린을 연주하는 백업 연주자였습니다. 마이클이 보컬로서 마이크를 잡은 건 그로부터 일 년 후, 1965년이었습니다. 당시, 잭슨 브라더스의 리드 보컬이었던 저메인 잭슨(Jermaine Jackson)과 함께 노래하기 시작한 그는 압도적인 음악적 재능으로 금세 그룹의 리드 싱어 자리로 꿰찼는데요. 이 무렵, 잭슨 브라더스는 밴드의 이름을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로 변경했습니다.
수많은 언론에 의해 음악 신동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마이클. 마이클의 유명세에 힘입어 잭슨 파이브는 흑인 음악계의 전설적인 레이블 모타운(Motown) 레코드와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1969년, 모타운 레코드에서의 첫 번째 싱글 ‘I Want You Back’을 발매한 잭슨 파이브는 그들의 첫 히트곡을 탄생시켰죠.

©Fred Colby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까지 연이은 히트 싱글을 만든 잭슨 파이브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잭슨 가족들은 캘리포니아 헤이븐허스트 애비뉴에 있는 대형 주택으로 이사를 갔는데요. 이 집에서 마이클은 역사적인 음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Episode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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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서막을 알리다
1972년, 솔로 데뷔 스튜디오 앨범 [Got to Be There]을 발매하며 본격적인 솔로 아티스트로의 행보를 시작한 마이클 잭슨은 [Ben](1972), [Music & Me](1973), [Forever, Michael](1975)까지 네 장의 솔로 앨범을 연속으로 발매했죠. 하지만, 그는 보다 원대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발매한 앨범으로 마이클은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Michael Jackson
"MJ는 내 새로운 이름이 될 것이고, 더 이상 나는 마이클 잭슨이 아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인격체, 완전히 새로운 모습,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나를 잭슨 파이브 시절 노래 부르던 꼬맹이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가수, 배우, 댄서가 될 것이다.”
1979년, 성인이 된 마이클은 그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Off the Wall]을 발매했습니다. 모타운을 떠나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와 손을 잡은 마이클은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함께 자신의 재능을 돋보일 수 있는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음반을 만들어냈죠. 그리고 곧 이 음반은 마이클을 스타덤에 올려줬습니다. 디스코, 팝, 펑크, R&B 장르를 결합한 [Off the Wall]은 다수의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 1위 곡을 탄생시켰고, ‘디스코 신화의 랜드 마크이자 가장 위대한 앨범’이라 평가되었습니다.
이후 발매한 후속작 [Thriller]는 ‘Thriller’, ‘Beat It’, ‘Billie Jean’과 같은 역사적인 트랙을 탄생시키며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약 7천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이 앨범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대중음악 산업에 존재하던 인종적 장벽을 허물며 전 세계 팬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냈죠.
이러한 성공은 단순히 음악적 성과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이클은 [Thriller]에 수록된 곡들을 바탕으로 뮤직비디오를 하나의 예술 영역으로 끌어올렸는데요. 각 트랙을 작품성 높은 영상으로 구현한 그는, 기존의 홍보 수단에 머물렀던 뮤직비디오를 서사와 연출이 결합된 하나의 이야기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특히 ‘Thriller’ 뮤직비디오는 공포 영화의 문법을 차용한 연출과 안무, 스토리라인을 결합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보여주었죠. 이러한 접근은 음악과 영상, 퍼포먼스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새로운 콘텐츠 형식을 탄생시켰고, 이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뮤직비디오를 또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6집은 마이클 특유의 문워크 댄스 무브를 탄생시킨 앨범이기도 합니다. 마이클은 1983년 TV 스페셜 <Motown 25: Yesterday, Today, Forever>에서 선보인 ‘Billie Jean’ 무대에서 문 워크를 선보이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죠. 뒤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이 혁신적인 동작으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마이클 잭슨은 단순한 가수를 넘어 퍼포머의 새로운 기준으로 끌어올리도 했습니다.
Episode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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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넘볼 수 없는
스타의 자리로

©Getty Images / CBS
마이클의 신기록은 끊임없이 갱신되었습니다. 1984년 열린 제26회 그래미 어워드(The 26th Annual Grammy Awards)에서 마이클은 [Thriller]로 단 하룻밤에 8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우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올해의 앨범상(Album of the Year)부터 올해의 레코드상(Record of the Year)까지 주요 부문을 석권했는데요. 어느새 마이클은 음악 산업에서 가장 높은 로열티를 기록한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1983년, 마이클과 그의 형제들이 함께 출연한 펩시 콜라 커머셜은 당시 가장 높은 금액의 광고료 계약을 체결시켰습니다. 그러나 1984년까지 이어진 펩시 캠페인은 마이클에게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는데요. 촬영 도중 머리 불이 옮겨 붙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는 마이클의 두피에 2~3도의 화상을 남겼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죠. 마이클이 앓고 있던 백반증은 화상을 기점으로 더욱 악화되었고, 옅어진 피부색에 대중은 마이클이 피부를 표백하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마이클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싱글을 탄생시킵니다. 평소 자선과 기부 활동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에티오피아의 기근 구호 활동을 위해 결성된 프로젝트에 참여해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작곡했는데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밥 딜런(Bob Dylan)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We Are the World’에 참여했고, 음악적 성과 뿐만 아니라 8천 만 달러 이상의 모금액을 적립했습니다.

©The National Enquirer
하지만 펩시 광고부터 이어지던 루머와 가십은 마이클의 곁을 떠나지 않았죠. 사고 이후, 화상 치료 센터에서 치료를 받을 무렵, 산소로 가득 차 있는 챔버를 발견한 마이클은 기념 사진을 한 장 찍게 되었는데요. 이 사진이 언론으로 유출되며 마이클이 노화를 늦추기 위해 매일 고압 산소 챔버에서 잠을 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죽인 사람의 시체를 샀다는 근거없는 소문부터 목소리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는다는 루머까지. 스타는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일까요? 소문은 소문을 낳았고, 마이클은 그 중심에서 위태롭게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마이클은 일곱 번째 정규 앨범 [Bad]를 발매했습니다. 퀸시 존스와 마지막 협업이 된 이 앨범은 발매 첫 주, 225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는데요. 마이클은 앨범에 수록된 ‘Man in the Mirror’는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죠. 마이클의 음악적 정체성과 철학을 강하게 반영한 ‘Man in the Mirror’의 뮤직비디오는 억압, 노숙, 기아, 경찰 폭력 등 세상의 여러 문제들을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주며, 20세기의 주요 인물들과 그들의 업적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내자’라는 목소리를 전달했습니다.
마이클의 메시지는 다음 앨범에서도 이어졌습니다. 1991년, 8집 [Dangerous]에 수록된 ‘Black or White’를 통해 인종차별에 맞서고, ‘Heal the World’를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음악은 시대를 지나도 울려 퍼졌습니다. 뮤직비디오의 예술을 창조하고, 팝 음악의 길을 개척한 마이클은 ‘팝의 황제’라 불렸고,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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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뮤지션에서 시대를 초월한 아이콘이 되기까지 마이클의 이야기를 한 눈에 돌아보니 어떠신가요? 그의 방대한 역사를 모두 담아내진 못했지만, 마이클 잭슨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음악과 문화 전반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무대 위 퍼포먼스, 뮤직비디오의 서사적 연출, 장르를 넘나든 사운드와 독보적인 스타일은 오늘날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는데요. 한 시대를 상징했던 ‘팝의 황제’라는 이름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세대의 플레이리스트와 무대 위에서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 Photo. Kevin Maz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