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어떤 아티스트의 무대를 볼 때 가장 가슴이 뛰시나요? 누군가는 뛰어난 가창력, 현란한 악기 연주를 꼽을 수 있지만, 비욘세(Beyoncé)의 슈퍼볼 하프타임쇼(Superbowl Halftime Show) 무대를 보고 팝 음악에 입덕한 저는 특히, 퍼포먼스를 잘하는 아티스트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저의 취향을 저격한 한 아티스트가 생겼습니다. 지난 4월 열린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Ve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을 챙겨보던 중 이 아티스트의 무대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시선을 뗄 수 없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전위적인 예술을 선보이는 이 아티스트. 현대무용과 강렬한 레이브 음악이 어우러진 무대는 그동안 본 적 없던 새로운 무언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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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A 트위그스(FKA twigs), 단순히 가수라는 수식어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팝’이라는 장르로 묶기 어려울 만큼 실험적인 전위 예술을 선보이는 그는 특히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데요. FKA 트위그스라는 그 이름 또한 어릴 적 관절이 꺾이는 소리 때문에 붙여진 별명에 ‘Formerly Known As(이전에 ~로 알려진)’를 붙여 탄생한 활동명이라고 합니다.

©FKA twigs IG
1988년, 전 살사 댄서이자 교사, 의류 디자이너인 어머니와 음악가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탈리아 데브렛 바넷(Tahliah Debrett Barnett, FKA 트위그스의 본명)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예술과 가까운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이 늘 따뜻하고 평온했던 것만은 아니었죠. 부모님의 이혼, 학교 안 유일한 유색인종 학생으로서 느껴야 했던 고립감, 그리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속에서 그는 조금 일찍 세상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FKA 트위그스는 남다른 영리함으로 마을 근처 사립학교의 장학금을 받으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제 삶은 정말 특이했어요.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사립학교에 다녔으니까요.
늘 가난한 아이였지만, 아닌 척하려고 애썼죠.
항상 단정하게 차려입고, 학교생활에도 적극적이었어요.
패션쇼도 하고, 연극도 하고,
학교의 모든 활동에 참여했죠.”
- 2014년 가디언(The Guardian)지 인터뷰 中
어릴 적부터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FKA 트위그스는 사립학교에서의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6살부터 청소년 클럽에서 음악을 만들곤 했던 그는 17살, 댄서로서 경력을 쌓기 위해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예술 중학교, 브릿 스쿨(The BRIT School)에서 무용가로서의 역량을 키워갔죠. 그러나 그는 곧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건 단순히 춤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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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지역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하며 자신만의 사운드를 찾아가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춤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죠. 백업 댄서 활동을 병행한 FKA 트위그스는 에드 시런(Ed Sheeran), 제시 제이(Jessie J)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습니다. 실제로, 제시 제이의 ‘Price Tag’ 뮤직비디오를 보면, 저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FKA 트위그스랍니다.
"제가 꼭두각시처럼 차려입고
손을 흔드는 걸 좋아할 것 같나요?
절대 아니죠.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제시 제이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그런 허드렛일을 많이 했을 거예요.
저는 그녀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 작은 부품이었죠.
제시 제이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
작은 부품이었을 거라고 확신해요.”
백댄서 활동, 카바레 가수, 나이트 클럽 알바를 병행하며 열심히 꿈을 키워가던 FKA 트위그스의 첫 번째 음반은 2012년 발매되었습니다. 데뷔작 [EP1]을 자체 발매한 그는 4개의 트랙과 함께 모든 곡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함께 공개했죠. 모든 뮤직비디오를 직접 감독한 FKA 트위그스는 음악 뿐만 아니라 시각예술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EP 발매를 이어가던 FKA 트위그스는 2014년, 자신의 첫 번째 앨범 [LP1]을 발매합니다. 팝의 경계를 넘어선 그의 실험적인 음악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는데요. 1집을 통해 2014년 머큐리상(Mercury Prize), 2015년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최우수 레코딩 패키지(Best Recording Package) 부문 후보에 오른 그는 점차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집은 욕망과 관계의 불안 등 FKA 트위그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음반이기도 합니다. 특히, ‘Video Girl’은 제시 제이의 ‘Price Tag’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뒤 느꼈던 감정을 담은 곡인데요. 백업 댄서로 활동하며 타인의 시선 속에서 소비되어야 했던 경험을 날카롭게 그려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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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이별이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집어삼킬 줄은 몰랐어요.
제 몸이 이렇게까지 말을 듣지 않아,
늘 사랑하고 위안을 얻었던 방식으로
신체적인 표현조차 할 수 없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늘 연습을 통해 최고의 모습을 만들어왔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진실된 방식으로,
제가 가장 서툴고 혼란스럽고 상처받은 순간에도
타인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었어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배우 로버트 패틴슨(Robert Pattinson)와의 열애, 약혼까지 맺은 FKA 트위그스는 2017년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이러한 경험을 녹여낸 2집 [MAGDALENE]을 발매하죠. 예술가에게 슬픔은 오히려 큰 영감일까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낸 섬세한 음악은 그의 음악성을 더욱 높은 곳으로 끌어냈는데요. 주요 언론의 찬사를 받은 [MAGDALENE]는 타임(TIME)지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가 선정한 2019년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집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FKA 트위그스의 3집 [EUSEXUA]. 전위적인 아트팝에 클럽 문화와 테크노 사운드를 불어넣은 음반은 무엇보다 감각적인 작품을 탄생시켰죠. ‘모든 것이 비워진 상태에서 찾아오는 완벽한 명료함’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켜 이를 ‘Eusexua’라는 단어로 정의한 FKA 트위그스는 현대미술과 같은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로 시선을 집중시켰는데요.
특히 타이틀곡 ‘Eusexua’는 몽환적인 신스와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비트 위로 몸과 감각이 하나로 녹아드는 순간을 그려냅니다. 차갑고 금속적인 사운드, 속삭이듯 이어지는 보컬은 마치 새벽의 레이브 클럽 한가운데 놓인 듯한 몰입감을 만들어내죠. 여기에 보깅(voguing), 현대무용, 사이버펑크적 스타일링을 결합한 비주얼은 FKA 트위그스만의 미래적인 세계관을 완성했습니다.
이 앨범은 단순한 클럽 음악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황홀감과 해방감, 고독과 불안 사이를 오가며 ‘몸을 통해 자신을 해방시키는 경험’을 음악으로 풀어냈는데요.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감각 그 자체를 전달하는 방식은 왜 FKA 트위그스가 여전히 가장 독창적인 아티스트 중 하나로 불리는지를 다시금 증명해냈습니다.
앞서 말했듯, FKA 트위그스의 진가는 무대 위 퍼포먼스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댄서 출신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그의 공연은 단순한 라이브 무대보다는 마치 현대무용, 퍼포먼스 아트가 결합된 하나의 종합 예술을 보는 듯 느껴집니다. 특히 지난 4월 선보인 코첼라 페스티벌에서의 퍼포먼스는 가히 압도적이었죠. 안무부터 카메라 연출까지 완벽하게 설계된 FKA 트위그스의 무대는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백업 댄서로 커리어를 시작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낸 FKA 트위그스.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이 아티스트에게 유얼라이브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봅니다.
| Photo. Jordan Heming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