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이 언니 누구야…”
알고리즘에 더 워닝이 처음 등장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릴스에서는 세 자매 중 막내, 알레한드라(Alejandra)가 멋있게 베이스를 치고 있었다. 올블랙 착장, 짙은 아이라인, 절제된 퍼포먼스. 베이시스트의 교과서 그 자체였다. 빼어난 비주얼과 소셜미디어를 장악한 숏폼 클립들을 보며, 철저히 기획된 아이돌 밴드일 거라 넘겨짚었다.

©EMI
예상과 달리, 이들은 대규모 마케팅 자본 없이 출발했다. 세 자매는 이미 10년 전, 방구석에서 찍은 메탈리카 커버 영상으로 2천만 뷰를 기록하며 자생적인 팬덤을 구축한 상태였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온라인 생태계를 다방면으로 활용한다. 단순한 SNS 노출을 넘어, 첫 정규 앨범 제작비 역시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직접 조달했다. 과거 인디 씬의 DIY(Do It Yourself) 기조를 소셜미디어 생태계 안에서 현대적이고 영리하게 구현해 낸 셈이다. 자신들이 직접 쓰고 부르는 음악마저 동세대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알고리즘 과 소셜미디어에 대한 염증을 노래하는 가사에는 이 세대만이 가질 수 있는 동시대성이 녹아 있다.

©El Club Del Rock
온라인 공간에서 공감을 먼저 얻어낸 이들의 서사는 모니터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화면 밖으로 나와 라이브 실력을 키웠고, 그 에너지는 결국 뮤즈(Muse)와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같은 세계적인 록 밴드들이 오프닝 무대로 이들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ualive
오는 8월 첫 내한을 앞둔 더 워닝. 유튜브에서 시작해 스타디움 무대에 서기까지 이들이 걸어온 10년 간의 서사와, 강렬한 하드 록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보자.
.
.
.
#게임하다 접한 록 음악
더 워닝의 시작은 모니터 앞이었다. 멕시코 몬테레이 출신의 세 자매, 첫째 다니엘라(Daniela)(기타/ 보컬), 둘째 파울리나(Paulina)(드럼/보컬), 막내 알레한드라(베이스)는 모두 2000년대생이다.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며 정형화된 음악을 접하던 이들이 록 음악에 눈을 뜬 건 둘째 파울리나의 여섯 번째 생일 선물로 들어온 비디오 게임 '록 밴드(Rock Band)' 덕분이었다. 당시 각각 8세, 6세, 3세였던 자매는 플라스틱 악기 장난감을 들고 에어로스미스(Aerosmith)나 AC/DC 같은 전설적인 밴드들의 명곡 리프를 놀이처럼 체득했다고.
#화제의 유튜브 메탈리카 커버 그 이후
2014년, 세 자매가 방에서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 커버 영상이 빠르게 주목받았다. 당시 14세, 12세, 9세였던 이들의 영상은 조회수 2,000만 회를 넘겼고,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 커크 해밋(Kirk Hammett)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드러머의 연주를 언급했다.
이후 이들은 2021년 메탈리카의 공식 헌정 앨범 [The Metallica Blacklist]에 참여하며 메탈리카와의 접점을 넓혔다.
또한 세계적인 영국 록 밴드 뮤즈(Muse)는 이들에게 단순한 음악적 멘토 이상의 지지와 기회를 제공했다. 다니엘라는 뮤즈의 프론트맨 매튜 벨러미(Matt Bellamy)의 정교한 기타 리프 설계와 무대 위에서의 압도적인 연극적 표현력에 큰 영감을 받았으며, 'Supermassive Black Hole'의 기타 리프를 가장 좋아하는 교본으로 꼽아왔다. 추후 더 워닝은 뮤즈의 월드 투어 공식 오프닝 액트로 전격 발탁되어 무대에 오르는 성과로 이어졌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앨범을 만드는 법
온라인에서 형성한 팬덤은 훗날 앨범 제작의 투자자가 됐다. 버클리 연수 중 “너희만의 곡을 써라”는 조언을 들은 자매는 본격적으로 자작곡 중심의 활동으로 전환했다.
영리한 지점은 그다음이다. 데뷔 EP를 거쳐 첫 정규 앨범 [XXI Century Blood]를 제작할 때, 이들은 대형 기획사의 투자 대신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starter)를 선택했다. 팬들은 단순한 콘텐츠 소비자를 넘어 앨범 제작을 직접 후원했고, 이들은 온라인에서 쌓은 팬덤을 창작 활동의 기반으로 삼았다.
#더 워닝만이 만들 수 있는 노래
그렇다면 더 워닝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었던 걸까?
비영미권 출신의 00년대생 여성 3인조 밴드. 독특한 더 워닝만의 정체성은 이들이 직접 쓰는 가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부추기는 도파민 중독, 미디어 중심 사회에서의 자아 상실, 인공지능에 대한 불안처럼 동시대성이 짙은 소재를 다룬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성장한 세대의 감각과 문제의식이 가사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멕시코인으로서의 뿌리도 음악 곳곳에 드러난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주로 영어로 노래하지만, 앨범마다 모국어인 스페인어 트랙을 꾸준히 수록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다. 이들의 디스코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더 워닝만의 시선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장되어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
1집 XXI Century Blood (2017)
세 자매가 10대인 시절, 크라우드 펀딩으로 완성한 데뷔작이다. 클래식한 록 리프를 기반으 로 00년대생인 멤버들이 록밴드로서 당차게 출사표를 던지는가 하면, 어린 시절부터 미디어에 노출되어 겪은 고충과 자전적인 경험을 노래한다.
‣ 'XXI Century Blood'
We're the new generation...
Twenty-first century blood
우리는 새로운 세대, 21세기의 피
Internet demands us to worship it like a god
인터넷은 우리를 신처럼 숭배하길 요구하지
Will we regret our addiction to the rush?
우리가 이 자극에 중독된 것을 후회하게 될까?
-
2집 Queen of the Murder Scene (2018)
자전적인 이야기로 꽉 찬 1집과 달리, 2집은 세 자매의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콘셉트 앨범이다.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이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 뒤 죄책감에 빠지는 과정을 13곡에 걸쳐 그린다. 날 선 헤비메탈 사운드와 변칙적 전개가 돋보이는 프로그레시브 하드 록 구성을 취해, 한 편의 어두운 스릴러 연극을 보는 듯한 웅장하고 극적인 몰입감이 매력적인 앨범이다.
‣ 'Queen of the Murder Scene'
I'm a machine, no emotion
난 감정 없는 기계야
A perfect scene for the murder queen
살인의 여왕을 위한 완벽한 무대지
You can't always kill what's immortal, but
불멸의 존재를 죽일 수는 없다고들 하지만
It just doesn't apply to me
내겐 해당되지 않는 소리야
It just doesn't apply to me
내겐 통하지 않는 이야기지
-
3집 ERROR (2022)
대형 레이블과 계약한 후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와 묵직한 하드 록 리프를 더해 한층 사운드가 헤비해진 앨범이다.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자란 세대답게,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인공지능(AI)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을 다룬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을 통제하고 좀먹는 섬뜩한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했으며, 이는 앨범명과 동명의 곡 'ERROR'의 가사에서 드러난다.
‣ 'ERROR'
You're my maker, but you're not my master
넌 나를 만든 창조주일 뿐, 나의 주인은 아니야
I'm the error you hide / But you will always want me so
내가 바로 네가 숨겨둔 오류야, 하지만 넌 언제나 나를 이토록 원하겠지
It's the freedom of choice that kills the mind
정신을 죽이는 건 바로 선택의 자유지
-
4집 Keep Me Fed (2024)
4집은 직관적인 앨범명처럼, 현대인에게 공급되는 과잉 자극과 그럼에도 지속되는 갈증을 주제로 한다. 지난 앨범들에 이어, 세 멤버가 미디어와 밀접하기에 쓸 수 있는 자전적인 앨범이다. 멤버 파울리나는 4집 [Keep Me Fed] 발매 인터뷰에서, 이 앨범을 통해 현대인이 소셜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공급받고 폭식하는 악순환을 꼬집고 싶었다고 한다. 댄서블한 그루브가 매력적인 수록곡 'MORE'에서 4집의 주제 의식이 또렷히 드러난다.
‣ 'MORE'
You know I love it, I love it when you feed me
너도 알잖아, 난 네가 날 채워줄 때가 제일 좋아
Yet you leave me begging for more
하지만 넌 늘 내가 더 갈구하게 만들지
Standing still, go in for the kill
가만히 서서, 숨통을 끊으러 가
Just kill the noise, won't you fill my void?
그저 소음을 죽이고, 내 공허함을 채워줄래?
Give it all up, won't you feed my senses?
다 포기하고, 내 감각들을 만족시켜 줄래?
오는 8월, 더 워닝은 5집 [Everything’s Falling]의 발매를 앞두고 있다. 선공개된 싱글 중 단연 눈에 띄는 곡은 스페인어로 쓰인 ‘Ego’다. 이 곡은 자신들을 그저 ‘온라인 바이럴 밴드’로 치부하거나, 성공을 쉽게 얻은 것처럼 깎아내리는 시선에 정면으로 맞서는 곡이다. 영어가 아닌 모국어 스페인어로 날 선 감정을 쏟아내며, 그 분노는 훨씬 직접적이고 거칠게 전달 된다. 헤이터들의 얄팍한 자존심, 말 그대로 ‘Ego’를 짓누르는 듯한 통쾌함이 곡 전체를 관통한다. 이는 가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 'Ego'
Ya te leí, te dejo ahí
네 댓글 다 읽었고, 넌 그냥 거기 둘게
Diles cómo compro todo
내가 어떻게 다 사들였는지 그들에게 말해봐
Mientras hablas, tú me pagas
네가 나불대는 동안, 결국 넌 내게 돈을 벌어다 주는 거야
No me digan que es regalado
내게 거저 얻은 거라고 말하지 마
-
알고리즘이 이들을 세상에 소개했다면, 지금의 더 워닝을 지탱하는 건 결국 직접 써 내려간 음악이다.
오는 8월 12일, 더 워닝은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다. 유튜브 커버 영상으로 시작해, 이제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관객을 모으는 밴드가 된 이들을 직접 만나보자!
| Photo. The Warning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