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들어가며

©Manhattan Records
도쿄의 디스크 유니온(Disk Union)과 맨하탄 레코즈(Manhattan Records), 뉴욕의 아더 뮤직(Other Music)과 더불어 서울에도 각자의 취향으로 음악을 큐레이션하는 수많은 레코드숍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런던을 대표하는 레코드숍을 하나 꼽아보라고 하면 저는 자연스럽게 이곳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바로 러프 트레이드(Rough Trade)입니다.

저도 직접 방문해보지는 못했지만 꽤 자주 애용하는 곳으로, 새로운 음반을 찾아보거나 평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독점 바이닐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게 되는 곳 중 하나인데요. 그런데 얼마 전 러프 트레이드가 한국에서도 특별한 50주년 행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곳이 한국에서 새로운 음악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니, 이참에 러프 트레이드가 대체 어떤 곳인지 한 번 제대로 소개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에디터 meddlee 집에 있는 러프 트레이드 카본 파이버 브러쉬
그래서 오늘은 레코드숍 특집입니다. 러프 트레이드가 그간 걸어온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음악 팬들에게 사랑받아왔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하는데요. 글 마지막에는 이번에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정리해두었으니, 꼭 끝까지 확인해보세요!
1. 레코드숍에서 시작된 하나의 음악 문화
러프 트레이드는 1976년 런던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펑크가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기존 음악 산업의 방식에 반기를 든 DIY 문화가 곳곳에서 생겨나던 시기였죠.

©Rough Trade
러프 트레이드의 창립자 제프 트레비스(Geoff Travis)는 캐나다 출신의 동명 아트 펑크 밴드에서 이름을 가져와 첫 번째 매장을 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당시의 러프 트레이드는 단순히 음반을 사고파는 가게라기보다 음악가와 팬, 독립 레이블이 서로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에 가까웠습니다. 새로운 밴드의 음악을 들고 오는 음악가가 있었고, 아직 유명하지 않은 해외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기존 유통망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음반들도 이곳을 통해 팬들에게 소개됐죠.
그리고 러프 트레이드는 프랑스의 펑크 밴드 메탈 어반(Métal Urbain)의 홍보를 돕기 위해 자체적으로 음반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Rough Trade Records)를 설립하게 되고, 이때부터 러프 트레이드는 음악을 판매하는 곳에서 음악을 만들고, 유통하고, 발견하는 곳으로 영역을 넓혀갔죠.

©Rough Trade Records
특히 더 스미스(The Smiths), 리버틴즈(The Libertines)를 비롯해 영국 음악사에서 중요한 이름들이 러프 트레이드를 거쳐갔고, 펑크와 포스트펑크를 중심으로 시작했던 음악적 취향 역시 레게, 스카, 일렉트로닉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습니다.
2. 좁은 공간에서 시작된 전설들
러프 트레이드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는 바로 인스토어 공연입니다.

©Rough Trade
1988년 런던 코벤트 가든의 닐스 야드(Neal’s Yard)에 문을 연 러프 트레이드의 두 번째 공간에는 50명도 채 수용하기 어려운 작은 공연 공간이 있었는데요. 그리고 이 작은 공간에서 훗날 음악사를 대표하게 될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이어졌죠.
대표적으로 PJ 하비(PJ Harvey)와 페이브먼트(Pavement)가 1992년, 홀(Hole)이 1993년,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와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가 1994년 이곳에서 공연했습니다.

©Rough Trade
그리고 훗날 수많은 관객 앞에 서게 될 아티스트들을 당시에는 50명도 안 되는 관객과 함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러프 트레이드의 인스토어 공연은 단순히 “유명한 아티스트가 작은 곳에서 공연했다”는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닌데요.
음반을 사러 온 사람이 우연히 공연을 보고, 공연을 본 사람이 그 아티스트의 음반을 찾아 듣게 되는 것. 러프 트레이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음반과 공연, 아티스트와 팬을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만들어 온 것이죠.
3. 러프 트레이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반들?!
러프 트레이드를 둘러보다 보면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러프 트레이드 익스클루시브(Rough Trade Exclusive)인데요.

러프 트레이드는 단순히 이미 발매된 음반을 가져와 판매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의 음반을 러프 트레이드만의 특별한 에디션으로 선보이기도 합니다. 독점 컬러 바이닐이나 특별 패키지 등 일반적인 음반과는 다른 형태로 팬들이 소장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죠.
스트리밍이 음악을 듣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 된 지금, 이런 독점 음반은 조금 재미있기도 합니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러프 트레이드가 함께 만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경험으로 이어지는 거니까요.

에디터 meddlee 집에 있는
비아그라 보이즈(Viagra Boys)의 ‘Shrimp Sessions IV’ 라이브 LP
(작~살납니다~..)
특히 러프 트레이드가 선보이는 독점 에디션을 살펴보면 이미 유명한 아티스트의 음반뿐만 아니라 새롭게 주목받는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례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으면 러프 트레이드를 단순히 “영국의 유명한 레코드숍”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조금 아쉬운데요.
©Rough Trade
새로운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직접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음반을 큐레이션하고, 때로는 러프 트레이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음반까지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레코드숍이 지닌 본질을 가장 극대화한 모습이라고도 생각이 드는데요. 언젠가 직접 방문하게 되는 날에는 또다시 후기를 남겨드리겠다고 약속드리며…
4. 러프 트레이드가 서울로!
그리고 이런 러프 트레이드의 50년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행사가 서울을 찾아옵니다!

러프 트레이드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첫 한국 단독 이벤트 ‘RT50 Seoul’이 오는 9월 28일부터 29일까지 양일간 서보 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최되는데요. 전시와 팝업 스토어부터 한정 머천다이즈, 청음 공간, 라이브 공연까지 러프 트레이드가 지난 50년간 만들어온 다양한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먼저 낮에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와 팝업 스토어가 운영되는데요. 러프 트레이드가 처음 시작된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주요 기록을 돌아보는 아카이브를 비롯해, 창립자 제프 트레비스가 직접 고른 음반과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행사에서 공연을 펼칠 블랙 미디(black midi) 출신의 카메론 픽튼(Cameron Picton)의 밴드, 마이 뉴 밴드 빌리브(My New Band Believe)와 캐롤라인(caroline)을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될 예정이죠.
여기에 러프 트레이드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포토 부스를 RT50 Seoul에 맞게 재구성하고, 서보 아트 스페이스의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활용한 청음 공간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러프 트레이드의 역사를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개해온 음악을 직접 듣고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죠.

물론 RT50 Seoul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굿즈도 준비됐습니다. 러프 트레이드의 로고와 50주년을 기념하는 RT50 Seoul 그래픽을 활용한 티셔츠, 키링, 슬립매트와 함께 영국 Rough Trade Shop의 스카프가 판매될 예정인데요. 해당 상품은 현재 온라인을 통해 9월 7일까지 프리세일이 진행되며, 일부 수량은 행사 현장에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행사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RT50 Seoul 토트백과 그립톡도 양일간 한정 판매된다고 하니, 이번 행사를 기념할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눈여겨봐도 좋겠죠?

팝업 스토어에서는 굿즈뿐만 아니라 러프 트레이드의 주요 카탈로그 음반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공식 리테일 파트너인 김밥레코즈(Gimbab Records)가 음반 판매를 담당하며, 펄프(Pulp), 캐롤라인(caroline), 블랙 미디(black midi), 마이 뉴 밴드 빌리브(My New Band Believe) 등을 비롯해 러프 트레이드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준비될 예정이죠.

또한 러프 트레이드와 영국에서 다양한 협업을 이어온 마샬(Marshall)도 공식 파트너로 참여합니다. 현장에서는 마샬의 신규 컬러 헤드폰과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만나볼 수 있으며, 행사장 인근 카페 시츠프로브에서도 RT50 Seoul 기간 동안 러프 트레이드 스티커를 활용한 스페셜 컵에 음료를 제공한다고 하죠.
그리고 오후 7시 30분부터는 공연이 이어집니다. 전시와 팝업 스토어는 양일간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운영되며, 이후 공연은 티켓 소지자에 한해 입장할 수 있는데요. 음반과 머천다이즈는 공연 종료 예정 시간인 오후 10시까지 구매할 수 있다고 하네요.
아카이브 전시부터 음반과 머천다이즈, 청음 공간, 레코드숍 문화, 그리고 라이브 공연까지. RT50 Seoul은 러프 트레이드가 지난 50년 동안 만들어온 다양한 콘텐츠를 서울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평소 러프 트레이드를 좋아했던 분이라면 반가운 소식일 테고, 아직 러프 트레이드를 잘 몰랐던 분이라면 이번 기회에 그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떻게 음악을 소개해왔는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으니,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l Photo. Rough T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