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바두비(beabadoobee)가 네 번째 정규 앨범 [Pylon]을 발매했습니다.

©Samuel Burgess-Johnson
2024년 [This Is How Tomorrow Moves] 이후 약 2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신보는 투어를 이어가며 느꼈던 고립감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지나간 관계에서 비롯된 분노와 향수 등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담았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이전보다 한층 거칠고 직접적인 기타 사운드를 앞세우며, 비바두비가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다시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앨범의 제목인 ‘Pylon’은 투어를 다니며 도로 위에서 자주 마주했던 송전탑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요. 가족과 친구들, 익숙한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송전탑을 바라보며 어딘가와 계속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보이지 않는 선으로 서로를 잇고 있는 송전탑의 모습은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연결’이라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죠.
앨범은 아티스트가 투어 사이사이 호텔 방에서 쓰기 시작한 곡들로 채워져있는데요. 낯선 도시에서 혼자 음악을 만들던 시간은 비바두비에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시작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영국으로 이주한 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음악을 찾았고, 아버지에게 받은 중고 기타 한 대로 독학하며 자신의 침실에서 곡을 쓰기 시작했던 시절 말이죠.
그렇게 수많은 공연과 투어를 거치며 자신의 음악을 세계에 들려주는 뮤지션으로 성장한 지금의 비바두비가 다시 혼자 방에 앉아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Pylon]은 단순히 과거의 사운드로 돌아가는 앨범이 아니라, 음악을 시작했던 시절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비바두비는 이번 앨범을 만들며 자신이 19살이던 시절의 모습과 다시 가까워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앨범 곳곳에는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충돌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Sun Has Set’에서는 미처 전하지 못했던 분노를 거칠게 쏟아내고, ‘Switchblade’에서는 자기방어와 용기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반면 ‘Memories’는 앨범에서 가장 행복한 곡 중 하나로 소개됐지만, 지나간 순간을 아름답게 떠올리는 동시에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씁쓸함을 담고 있기도 하죠.
이러한 변화는 사운드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Pylon]은 90년대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 미드웨스트 이모 등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끌어오며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공격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데요. 디스토션과 기타 리프를 앞세운 곡부터 보다 대중적인 얼터너티브 록의 감각을 품은 곡까지 폭넓게 담아냈으며, 헤일리 윌리엄스(Hayley Williams), 브랜든 예이츠(Brendan Yates) 등 자신이 좋아해 온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취향 역시 더욱 넓게 펼쳐놓았습니다.
결국 [Pylon]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성장했다’는 사실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도 과거의 자신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좋아했던 음악과 지금의 자신이 가진 경험을 한데 겹쳐놓았고, 감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분노와 미련, 과거에 대한 그리움까지 억지로 결론 내리지 않은 채 그대로 음악에 담아냈죠. 어쩌면 이 과정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그때의 내가 왜 그런 모습이었는지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침실에서 기타 한 대로 ‘Coffee’를 만들던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무대를 지나 다시 혼자 음악을 만들고 있는 현재까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송전탑의 전선처럼 이어져 있는 것처럼, 비바두비는 [Pylon]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다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l Photo. Matty Vog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