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들어가며
테임 임팔라(Tame Impala)는 음악을 ‘지나치게’ 잘 만드는 밴드입니다.
사실상 작곡부터 연주, 녹음, 프로듀싱, 믹싱까지 대부분의 음악 작업을 리더 케빈 파커(Kevin Parker) 혼자 도맡는 만큼, 테임 임팔라는 밴드라기보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구현하는 1인 프로젝트에 가깝고, 케빈 파커는 그 소리를 음반으로 완성하기 위해 누구보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인물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는데요.

©Robert Beatty / Matthew C. Saville
특히 명실상부 그의 대표작 [Currents]를 만들던 시기의 케빈 파커는 그 성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자신의 믹스를 반복해서 들으며 드럼이 정확히 박자에 맞는지, 보컬의 모든 음이 곡의 톤에 어울리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했던 그는, 대표적으로 ‘Cause I’m a Man’의 보컬을 녹음하는 과정에서 1,000개가 넘는 부분 보컬 테이크를 남기기도 했다고 하죠. 그의 기억에 따르면 그 숫자는 무려 1,056개에 달했으며, 완성된 보컬을 1,056번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한 곡의 보컬을 위해 그만큼 많은 테이크를 쌓았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그의 집요한 작업 방식을 보여줍니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는 더 극단적이었는데요. 퍼스에서 시드니, 로스앤젤레스, 뉴욕으로 이동하는 약 36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채 앨범 작업을 이어갔고,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새벽 1시부터 스튜디오에 들어가 보컬을 다시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몇 시간 뒤 목소리가 완전히 나가버렸고, 케빈 파커는 당시를 자신의 인생에서 ‘신경쇠약에 가장 가까웠던 순간’으로 회상하며, 앨범 발매 일정까지 미뤄지기도 했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소(?)하게는 앨범 아트워크를 위해 약 3만 달러를 썼다가 결국 사용하지 않은 일 등 피치포크(Pitchfork)가 당시의 케빈 파커를 ‘강박적인 완벽주의자’로 묘사한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셈이죠.

©Julian Klincewicz
그런데 그러던 케빈 파커가 [Deadbeat]에서는 갑자기 이상한 선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익숙하게 음악을 만들어오던 방식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그 변화는 테임 임팔라의 커리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앨범 [Deadbeat]로 이어졌습니다.
앨범에는 일부러 지우지 않은 실수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완벽하게 다듬어낸 녹음 대신 우연히 남겨진 데모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사운드 역시 이전보다 훨씬 단순하고 거칠게 만들어냈죠.
그렇다면 케빈 파커는 왜 그토록 집착해왔던 ‘완벽한 음악’을 스스로 내려놓기 시작한 걸까요?

©Tame Impala IG
[1] 도망친 완벽주의자
케빈 파커가 [Deadbeat]에서 가장 먼저 바꾸려고 했던 것은 사운드가 아니라 ‘자신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Chuff Media
수년 동안 혼자 음악을 만들며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소리를 최대한 정확하게 구현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방식 자체가 자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죠. 테임 임팔라의 음악이 점점 더 많은 레이어와 장비, 플러그인으로 채워지는 동안, 케빈 파커는 오히려 처음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처럼 단순하게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에는 음악 밖에서의 삶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The Slow Rush] 이후 케빈 파커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Deadbeat]는 그가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앨범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번 앨범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는 아버지가 된 자신의 삶과 달라진 자기 인식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했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예상 밖의 순간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Tame Impala IG
그는 그렇게 [Deadbeat]를 만들면서 자신이 가진 수많은 장비와 선택지를 오히려 제한하려 했습니다. ‘이 소리가 더 좋은가?’를 끝없이 고민하기보다,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를 빠르게 녹음하고 그것을 그대로 발전시키는 쪽을 택한 것이죠. 단순하고, 조금은 지저분하고,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들리는 순간까지도 음악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If it sounds shitty, then it’s right.”
“소리가 구리게 들린다면, 그게 맞는 거다.”
케빈 파커에게 [Deadbeat]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음악의 반대편으로 가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를 끌어내리고, 우연과 실수를 음악 안에 남겨두는 것. 그가 말하는 ‘단순함’을 되찾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가장 익숙했던 제작 습관부터 깨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실제로 무엇을 바꿨을까요?

©Tame Impala IG
[2] 루프를 버리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곡을 쌓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케빈 파커는 이전까지 컴퓨터나 8트랙에 드럼 머신을 깔아놓고 그 위에 악기를 하나씩 쌓아가는 방식으로 곡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먼저 안정적인 틀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 소리를 추가하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Deadbeat]에서는 이 과정을 거꾸로 뒤집었습니다.
그가 직접 표현한 방식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처럼 해보기’였는데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먼저 드럼을 연주하고, 녹음을 멈춘 뒤 그 위에 다음 악기를 연주하고, 다시 그 위에 또 다른 소리를 쌓는 방식이었죠. 중요한 건 이번에는 거의 루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곡의 한 부분을 잘라 반복해서 완벽한 리듬을 만드는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의 흐름으로 연주하는 것이죠. 이 방식은 단순히 음악을 더 자연스럽게 들리게 하기 위해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케빈 파커는 익숙한 작업 방식에서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 이런 방법을 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복해서 수정하고 복제할 수 있는 컴퓨터 환경에서 벗어나,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연주를 만들어낸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연주한다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인데요.
그래서 케빈 파커는 이번 앨범을 테이프에 녹음하면서 펀치인*을 거의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Deadbeat]에서는 드럼 연주를 중간부터 다시 끼워 넣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예를 들어 곡의 4분의 3 지점에서 실수를 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죠.
* 펀치인(punch-in): 녹음된 연주의 특정 부분만 다시 녹음해 실수를 교체하는 방식
그리고 케빈 파커는 이 과정에서 ‘레드 라이트 피버(red light fever)’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녹음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 순간, 평소라면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갑자기 긴장하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건 그 실수를 결국 지워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주 중 발생한 긴장감과 실수 자체가 이전과 다른 종류의 음악을 만들어준다고 판단했고, 결국 드럼 스틱이 부딪히는 소리 같은 작은 흔적까지 그대로 음반에 남았는데요. 즉, 실수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그 결과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Tame Impala IG
[3] 멜로디를 버리다
이런 태도는 작곡 과정에서도 이어졌는데요. 케빈 파커는 최근 자신의 작곡법을 설명하면서 꽤 과감한 말을 했습니다.

©Tame Impala IG
“I don’t write melodies.”
“나는 멜로디를 쓰지 않는다.”
물론 그가 말하는 의미는 멜로디를 실제로 만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멜로디를 만들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순간, 자신에게는 뻔하고 평범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멜로디를 억지로 만들어내기보다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좋은 곡들 대부분도 결국에는 일종의 ‘우연’이었다고 설명할 정도로 말이죠.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완벽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사라지기 전에 붙잡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케빈 파커는 악기를 들기 전에 먼저 휴대폰으로 아이디어를 녹음하는 방식도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악기를 실제로 연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순간, 처음 떠올랐던 아이디어 자체를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겨둔 거친 아이디어가 실제 앨범까지 살아남은 경우가 있는데요. 대표적인 곡이 ‘No Reply’입니다.
곡에 등장하는 피아노와 보컬은 원래 정식 녹음을 하기 전에 만들어둔 데모였는데요. 케빈 파커는 휴대폰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아이디어를 녹음했고, 당연히 나중에 제대로 된 마이크를 사용해 다시 녹음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훨씬 좋은 스테레오 마이크를 사용해 정식 녹음까지 했는데요. 그런데 그는 그 녹음 파일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과거의 케빈 파커였다면 어떻게든 다시 녹음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는데요. 그는 오히려 원래의 휴대폰 음성 메모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고, 이 일을 두고 마치 우주가 ‘진짜 데모를 사용하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잘 정리된 정식 녹음보다 방에서 혼자 아이디어를 떠올리던 순간의 가장 노출된 상태가 오히려 더 진짜처럼 느껴졌던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Deadbeat]의 첫 곡 ‘My Old Ways’ 역시 거친 아이폰 데모처럼 시작합니다. 곡의 전환 직전에 잠시 멈추는 듯한 순간이 남아 있고, 녹음 중 마이크 스탠드를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리죠. 과거라면 지워졌을 흔적들이 이번에는 오히려 곡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4] 실수투성이 케빈 파커
사운드 자체도 두말할 것 없습니다.
[Deadbeat]의 리듬을 만드는 데 사용된 핵심적인 장비 중 하나는 Roland TR-808과 Vermona DRM1이었는데요. 그런데 케빈 파커는 이 드럼 머신들의 소리를 그대로 받는 대신, 808을 기타 앰프에 연결하고 DRM1과 함께 실제 공간에서 크게 재생한 뒤 여러 방식으로 녹음했습니다.
즉, 드럼 머신을 깨끗한 라인 신호로 받아 완벽하게 정리하는 대신, 앰프와 공간을 거치면서 생기는 왜곡과 울림까지 사운드에 포함시킨 것이죠. 그래서 [Deadbeat]의 드럼은 이전 테임 임팔라 음악처럼 매끈하게 정리된 리듬과는 조금 다르게 들리실겁니다.
곡의 보컬 또한 이전에는 더블 트랙으로 겹쳐 녹음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지만, [Deadbeat]에서는 일부 보컬을 일부러 한 겹만 남겼는데요. 특히 속삭이듯 녹음한 보컬을 좌우로 강하게 패닝*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질감을 추가했습니다. 메인 보컬을 더욱 두껍고 완벽하게 만드는 대신, 양쪽 귀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숨소리와 속삭임을 일종의 질감처럼 사용한 것이죠.
* 패닝(Panning): 소리의 좌우 위치를 조절하여 스테레오 공간에 악기와 보컬을 배치하는 믹싱 작업
결국 [Deadbeat]에서 ‘불완전함’은 실수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깨끗하게 녹음할 수 있는 소리를 일부러 거칠게 만들고, 다시 녹음할 수 있는 데모를 그대로 사용하고, 지워도 될 작은 소리를 남겨두는 것. 케빈 파커는 불완전함마저 하나의 프로덕션 선택으로 만들었는데요.
그리고 그 결과, 앨범 곳곳에는 과거라면 쉽게 지나치지 않았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거친 데모 같은 피아노와 녹음 공간의 소리, 휴대폰으로 남긴 음성 메모, 심지어 ‘Loser’에서는 케빈 파커가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는 순간까지 최종 믹스에 남았죠.

©Sam Kristofski
[5] 그런데 말이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케빈 파커는 정말 완벽주의를 버린 걸까요?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Sam Kristofski
[Deadbeat]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는 여전히 곡의 작은 부분을 붙잡고 고민했고, 앨범이 완성된 뒤에도 계속해서 손을 대고 있었는데요. 그는 자신의 앨범이 결국 ‘마감 시간이 다 돼서’ 완성된다고 말할 정도로, 끝까지 음악을 놓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달라진 것은 그의 집요함 자체가 아니었는데요. 집요하게 완벽한 결과를 찾아 헤매던 사람이, 이번에는 우연히 생겨난 결과물 중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집요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변화는 [Deadbeat]의 성과에서도 묘하게 드러납니다.

©Billboard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단순해진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200(Billboard 200) 4위로 데뷔했고, 수록곡 ‘Dracula’는 이후 제니(JENNIE)가 참여한 리믹스를 통해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 5위까지 오르며 테임 임팔라의 빌보드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죠. 완벽하게 다듬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만든 음악이, 결과적으로는 또 다른 커리어의 기록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물론 이것이 ‘덜 완벽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 성공했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Deadbeat]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는 분명해집니다.

©Sam Kristofski
케빈 파커는 자신이 설정한 앨범의 제목 마냥 완벽주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완벽주의를 다루는 방법을 바꿨다는 것. 조금 틀려도 괜찮고, 조금 지저분해도 괜찮고,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가 생각보다 괜찮다면 굳이 다시 만들 필요도 없는 음악.
결국 예술이라는 건 완벽하게 통제하는 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통제할 수 없는 우연과 실수까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Deadbeat]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음악으로 증명해냈죠. 그렇다면 케빈 파커는 과연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게 될까요?
“[Currents]: 완벽주의자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는 다음 편에 공개됩니다.”
l Photo. Tame Impala / Robert Beatty / Matthew C. Saville / Julian Klincewic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