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들어가며
2000년대 얼터너티브 록과 뉴 메탈을 대표하는 미국의 록 밴드 린킨 파크(LINKIN PARK)는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힙합을 자유롭게 결합한 독창적인 음악으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매김했다. 데뷔 앨범 [Hybrid Theory]부터 [Meteora], [Minutes to Midnight]까지 이어지는 음악적 여정은 수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았고, 지금까지도 린킨 파크는 세계적인 록 밴드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LINKIN PARK / CJ
<언섀터(UNSHATTER)>는 7년의 공백을 지나 다시 음악과 무대로 돌아온 린킨 파크의 새로운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22년 진행된 내밀한 스튜디오 세션부터 2024년 11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공연까지, 희귀 아카이브 영상과 라이브 퍼포먼스, 멤버와 팬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음악을 만들고 무대에 서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간다.
특히 밴드의 멤버 조 한(Joe Hahn)이 연출에 참여했으며, 스튜디오 작업과 리허설 등 무대 뒤의 순간부터 실제 공연의 뜨거운 현장까지 담아내며 린킨 파크가 새로운 음악적 여정을 시작하는 순간들을 스크린에 펼쳐낸다.

©ualive
아래는 오는 9월 30일과 10월 3일, 국내 상영을 앞둔 <언섀터>를 미리 관람한 에디터의 솔직 리뷰이다.
[1] 결과물이 없는 것에 레시피를 적어 내려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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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킨 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 이하 체스터)이 세상을 떠난 뒤 5년인 2022년, 멤버들은 다시 작업실에 모인다. 새로운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린킨 파크’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시작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들이 마주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앨범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린킨 파크를 상징하던 너무나 큰 목소리를 잃은 뒤, 이전과 같은 결과물을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언섀터>는 그 답을 정해두지 않은 채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완성될 요리를 알지 못한 채 레시피부터 적어 내려가는 것처럼.

©Mike Shinoda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멤버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까지의 시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밴드 활동에 매진해온 이들에게 체스터의 죽음은 단순히 한 명의 멤버를 잃은 사건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멈춰 서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다시 린킨 파크를 시작한다는 결정 역시 어느 한순간 하나의 의견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랜 고민과 대화 끝에 린킨 파크는 새로운 멤버 콜린 브리튼(Collin Britain)과 보컬 에밀리 암스트롱(Emily Armstrong)을 맞이한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이 새로운 시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2] 에밀리 암스트롱의 존재를 설득하는 일

©Emily Armstrong
영화 밖에서도 밴드를 둘러싸고 여전히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이야기 중 하나다. 체스터 베닝턴이라는 거대한 존재 이후, 린킨 파크가 새로운 보컬을 맞이한다는 것. 그것도 이전과 전혀 다른 여성 보컬 에밀리 암스트롱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밴드의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다.
<언섀터>는 이 선택을 단순히 ‘새로운 멤버가 합류했다’는 사실로 넘기지 않는다. 새로운 멤버를 찾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보고, 서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왜 에밀리 암스트롱이었어야만 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린킨 파크가 새로운 보컬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체스터의 목소리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가가 아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LINKIN PARK / CJ
오히려 영화는 그동안 체스터를 제외한 멤버들이 린킨 파크 안에서 만들어온 역할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마이크 시노다(Mike Shinoda)의 음악적 방향부터 브래드 델슨(Brad Delson), 피닉스 파렐(Phoenix Farrell), 조 한, 그리고 지금은 밴드를 나간 롭 버든(Rob Bourdon)이 오랜 시간 함께 만들어온 사운드와 이미지까지. 린킨 파크라는 이름이 한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로운 멤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언섀터>는 체스터 베닝턴을 기억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체스터 이후의 린킨 파크를 이해하기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린킨 파크를 체스터의 목소리로 처음 만났던 사람과, 오랜 시간 밴드의 음악을 지켜본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린킨 파크는 무엇으로 린킨 파크일 수 있는가?’
[3] 콘서트 필름 그 이상의 경험

©LINKIN PARK / CJ
이제 콘서트 필름을 영화관에서 만나는 일은 그리 낯선 경험이 아니다. 개인이 갖추기는 어려운 거대한 스크린과 사운드 시스템을 통한 경험은 내한 공연이 아닌 대륙 너머에서 열린 공연이라 할지라도 그 분위기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콘서트 필름만이 가진 매력은 분명하다.
하지만 <언섀터>는 단순히 린킨 파크의 공연을 스크린으로 옮겨놓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린킨 파크의 멤버이자 그동안 수많은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온 조 한이 직접 연출에 참여한 만큼, 공연을 담아내는 방식에서도 밴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시각적 언어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영화가 다큐멘터리로 분류된다는 점이 특별하다. 공연 장면은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되지 않고, 앞서 이어진 멤버들의 서사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작업실에서의 순간과 리허설, 멤버들의 대화가 공연 장면으로 이어지고, 그 공연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에는 우리가 앞서 보았던 이야기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래서 <언섀터>에서 공연은 단순히 보기 좋게 빚어 놓은 ‘결과물’이 아니다. 오랜 시간 멈춰 있던 사람들이 다시 음악을 만들고, 서로를 다시 이해하고, 마침내 무대 위에 서기까지의 모든 시간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하나의 금자탑과 같다. 그렇기에 영화 속 공연을 바라보는 일은 단순히 린킨 파크의 음악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4] Xero에서 From Zero로

©LINKIN PARK
린킨 파크는 정말 0에서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그 0은 과거를 지워버린 빈칸이 아니었다. 처음 밴드의 이름이었던 제로(Xero)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밴드가 되기까지 쌓아온 시간, 그리고 다시 [From Zero]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과거와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것들을 다시 붙잡았기에 여전히 린킨 파크일 수 있었던 것이다.
린킨 파크는 다시 0에서 시작했지만, 결코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시 쌓아 올린 끝에 마침내 완성된 새로운 시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영화, <언섀터>. 린킨 파크의 음악을 사랑해왔다면,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다면, 이 순간만큼은 절대 극장에서 놓치지 말길 바란다.
l Photo. LINKIN PARK / CJ / Jimmy Fontaine / Paul Har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