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이 가득한 오후에는 한없이 따뜻하게, 모든 것이 고요해진 밤에는 조금 더 아득하게 들리는 음악이 있습니다.

©Sophia Poole
영국 싱어송라이터 리아나 플로레스(Liana Flores)의 음악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손끝으로 가볍게 튕기는 기타와 나른한 리듬, 그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목소리까지.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은 채, 낮과 밤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그녀의 이름은 몰라도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2019년 발표된 ‘rises the moon’은 시간이 흐른 뒤 틱톡과 유튜브 등 각종 SNS를 통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잔잔한 기타 연주와 부드러운 보컬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분위기는 짧은 영상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죠. 그렇게 한 곡의 예상치 못한 바이럴은 오랫동안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오던 한 아티스트를 더 넓은 세상에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리아나 플로레스를 ‘rises the moon’을 부른 아티스트로만 기억하기에는 그녀의 음악 세계는 훨씬 넓은데요.
그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영국 포크와 브라질 보사노바라는 서로 다른 두 음악적 뿌리입니다. 영국에서 성장한 리아나 플로레스는 브라질계 어머니를 통해 자연스럽게 브라질 음악을 접했고, 특히 보사노바의 섬세한 기타 연주와 풍부한 화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바로 여기에 포크 음악의 감성이 더해지며 지금의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어느 한 장르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데요. 소박하고 목가적인 포크의 질감 위에 보사노바 특유의 느긋한 리듬과 재즈적인 화성이 흐르고, 그 위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얹힙니다. 덕분에 음악은 포근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하고, 편안하면서도 묘하게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내죠. 이러한 음악적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진 작품이 2024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Flower of the Soul]입니다.

©Liana Flores
앨범의 제목처럼 이 작품은 자연과 생명, 사랑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는데요. ‘Hello Again’, ‘Orange-Coloured Day’, ‘Nightvisions’ 등 곡을 따라가다 보면 꽃과 나비, 비와 밤, 그리고 계절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리아나 플로레스는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주변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순간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을 노래하죠.
특히 ‘Butterflies’에는 브라질 싱어송라이터 팀 베르나르데스(Tim Bernardes)가 참여해 그녀의 음악적 뿌리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영국에서 자라난 포크의 감성과 브라질 음악에서 이어진 보사노바의 언어가 한 곡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죠.
리아나 플로레스의 음악을 듣는 순간은 특정한 시간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오후에도, 하루가 저물고 조용한 밤이 찾아온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죠. ‘rises the moon’이 밤의 고요함을 떠올리게 했다면, [Flower of the Soul]은 그보다 더 넓은 하루의 풍경을 보여주는 앨범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리아나 플로레스의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평소에는 지나쳤던 작은 풍경을 바라보게 하는 것. 꽃이 피는 순간이나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처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주는 것.

©Liana Flores/Sophia Poole
그리고 이제 그는 새로운 EP [And so it goes…]를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데요. 새로운 음악에서도 리아나 플로레스 특유의 섬세한 보컬과 포크, 보사노바를 오가는 음악적 색채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햇살과 달빛 사이, 하루가 가장 느리게 흘러가는 그 어딘가에 머물고 싶다면 이제 막 새로운 음악으로 돌아온 리아나 플로레스에 주목해보세요. 어쩌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하루의 풍경이, 그의 노래를 통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르니까요.
l Photo. Maggie Z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