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과 아일랜드 힙합 신에는 새로운 얼굴이 등장할 때마다 다음 이름을 기대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그 기대를 이어갈 신예 래퍼가 등장했는데요. 단 1분 남짓한 곡, 빈티지 루이비통의 주인공, 어프질라(earfzilla)입니다.
최근 해외 음악 팬들 사이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는 ‘vintage vuitton’은 불과 1분 26초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스포티파이(Spotify) 공식 플레이리스트 ’Lorem’에 이름을 올렸고, 롤링 스톤(Rolling Stone)의 ‘Songs You Need to Know’에도 소개되며 발매 직후부터 빠르게 주목받았는데요. 아직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단계의 아티스트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눈길을 끄는 행보입니다.

©Finn Harney
그렇다면 이 곡을 만든 어프질라는 어떤 아티스트일까요? 더블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어프질라는 올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발표하며, 화려한 경력을 앞세우기보다 짧은 싱글을 연이어 발표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음악에 전념하기 전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조금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어프질라는 한동안 더블린의 스니커즈 숍 ‘Saint Street Sneakers’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해당 매장 측에서도 그가 한동안 함께 일했으며, 현재는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응원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직접 언급하기도 했죠.
스니커즈와 스트리트웨어를 가까이에서 접하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어프질라. 그래서인지 그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으로 ‘vintage vuitton’을 바라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제목만 보면 빈티지 루이 비통(Louis Vuitton)을 내세운 패션과 성공에 관한 곡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음악을 시작하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가 담겨 있습니다. 공연을 위해 이동하는 일이 늘어나고,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 그 변화가 ‘vintage vuitton’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되어 있는 것이죠.
특히 흥미로운 건 그가 아직 18세라는 사실입니다. 음악 활동이 커지면서 겉으로는 점점 성공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이 앞으로 어디까지 나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데요. 그래서 이 곡의 빈티지 루이비통은 단순한 플렉스의 대상이라기보다,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자신의 이미지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스니커즈 숍에서 일하던 시간에서 벗어나 이제는 무대와 음악을 중심으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곡 속 패션 이미지는 그의 현재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 셈이죠. 짧은 러닝타임 안에 강렬한 인상과 스타일을 남기는 방식 역시 어프질라가 가진 음악적 색깔과 잘 맞아떨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vintage vuitton’이 어프질라의 첫 번째 인상은 아닙니다. 그는 지난 3월 ‘mitsubishi’를 시작으로 ‘hennyinmytea’, ‘round here’, ‘backroads’ 등을 차례로 공개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조금씩 쌓아왔는데요. 특히 지난 8월 공개한 ‘backroads’는 현지 매체로부터 “real earworm*”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귀에 오래 남는 곡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강한 비트 위에 자유롭게 흘러가는 멜로디와 부드러운 랩을 얹은 약 2분 길이의 트랙으로 소개되며, 어프질라가 가진 몽환적인 클라우드 랩의 색깔을 보여주기도 했죠.
* 귀벌레(Earworm): 중독성이나 임팩트가 강한 노래의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도는 현상
이렇게 보면 ‘vintage vuitton’은 단순히 새로운 싱글 하나가 추가된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스니커즈 숍에서 일하던 18세의 더블린 청년이 음악에 전념하기 시작하고, 짧은 곡들을 하나씩 발표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인데요. 패션과 음악, 그리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달라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의 이미지로 담아낸 방식 역시 지금의 어프질라를 더욱 흥미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Finn Harney
아직 어프질라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지금이 그의 음악을 찾아보기 좋은 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완성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아티스트라기보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아티스트에 가깝기 때문인데요. ‘vintage vuitton’으로 자신의 이름을 조금씩 알리기 시작한 어프질라가 앞으로 어떤 음악과 이미지로 자신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갈지, 이제부터 천천히 지켜봐도 좋겠습니다.
l Photo. Finn Ha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