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여러분, namyu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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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갤러거 형제들이 또 한 번 새로운 투어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했는데요. 아쉽게도 이번에 발표된 일정에는 아시아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저 namyu는 앞일은 생각하지 않은 채 호기롭게 넵워스와 맨체스터 공연 추첨에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는… 이번에는 형제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오아시스가 다시 한국 땅을 밟으면 해결될 일이거든요.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투어 공지가 뜬 순간 잠깐이나마 넵워스에 서 있는 제 모습을 상상했던 터라 생각보다 꽤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넵워스는 가보겠습니다.)
지난해 오아시스의 내한 공연을 코앞에서 경험했던 저에게 이번 투어 발표는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는데요. 동시에 아주 조금은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설마 또 싸워서 모든 게 무산되는 건 아니겠지?’ 아마 오아시스를 오랫동안 좋아해온 팬이라면 한 번쯤 비슷한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최근 오아시스의 재결합 이야기를 다시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돈룩백인앵거>를 본 이후에도 방심은 금물이라는 생각을…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세요!)
여튼 갤러거 형제 하면 이제는 ‘싸움’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을 정도로 두 사람의 갈등은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없이 싸우고도 다시 돌아왔던 두 사람이 딱 한 번, 정말 돌아오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NME
2009년 8월 28일. 오늘은 오아시스가 정말로 멈춰버린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이하 노엘)와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 이라 리암). 두 형제는 오아시스로 활동하는 동안 수없이 부딪혔습니다. 서로를 향해 거침없는 말을 쏟아내는 것은 물론, 때로는 그 갈등이 실제 공연과 투어에까지 영향을 미쳤죠. 그럼에도 두 사람은 결국 다시 같은 무대에 서곤 했습니다. 그래서 2009년 여름,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심각하게 틀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이것이 오아시스의 진짜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2009년 8월 28일, 프랑스 파리 인근 생클루에서 열린 <Rock en Seine>. 이날 오아시스는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습니다. 관객들은 기다리고 있었고, 무대도 준비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연을 불과 몇 분 앞두고 백스테이지에서 노엘과 리암 사이에 충돌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오아시스는 끝내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죠.

현장의 대형 스크린에는 밴드 내부의 충돌로 공연이 취소됐다는 안내가 등장했고, 너무 갑작스러운 발표에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관객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노엘은 오아시스 공식 홈페이지에 짧은 글 하나를 남깁니다. 슬픔과 동시에 큰 안도감을 느끼며 오늘 밤 오아시스를 그만둔다는 것. 이어 그는 더 이상 리암과 단 하루도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오아시스는 멈췄습니다.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조차 없었습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밴드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그날 밤 노엘은 밴드를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날 두 사람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이전에도 수없이 싸우고 다시 돌아왔던 두 사람은 왜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던 걸까요?

©BBC
1991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오아시스는 1994년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를 발표했고, 이듬해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가 크게 성공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중 하나로 올라섭니다. 하지만 밴드가 커지는 동안 노엘과 리암의 갈등 역시 계속됐고, 때로는 두 사람의 충돌이 실제 투어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00년에 있었는데요. 당시 리암과의 갈등 이후 노엘은 오아시스의 남은 해외 투어에서 빠졌고, 밴드는 맷 데이튼(Matt Deighton)을 대체 기타리스트로 투입해 투어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밴드의 매니지먼트는 노엘의 이탈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라고 설명했고, 실제로 노엘은 이후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예정된 공연에 다시 합류했습니다.

©Dave Hogan
이처럼 갈등으로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결국 다시 같은 무대에 서는 일은 오아시스에게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2009년 이전까지 노엘과 리암 가운데 누구도 오아시스를 공식적으로 탈퇴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여름의 상황은 이전보다 심각했습니다. <Rock en Seine>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리암은 자신과 노엘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정도였고, 오아시스를 둘러싼 해체설도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8월 23일,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오아시스는 영국 첼름스퍼드의 하이랜즈 파크(Hylands Park)에서 예정돼 있던 <V Festival> 공연을 취소합니다. 이유는 리암이 진단받은 바이러스성 후두염이었습니다. 당시 오아시스 측은 리암이 휴식을 취하면 다음 금요일 파리에서 투어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금요일’이 바로 <Rock en Seine>이었습니다.

©Marco Prosch
2009년 8월 28일. 오아시스는 예정대로 프랑스로 향했고, <Rock en Seine>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 직전 백스테이지에서 노엘과 리암 사이에 충돌이 벌어집니다. 이날 정확히 어떤 말이 오갔고, 누가 먼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후 여러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다른 뮤지션을 통해 기타가 파손됐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노엘 역시 시간이 흐른 뒤 이날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증언과 이후의 회고까지 섞여 있는 만큼, 그 모든 과정을 하나의 확정된 장면처럼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기록을 통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공연 직전 두 사람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오아시스가 결국 그날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노엘은 오아시스를 떠났습니다.

©NME
다음 날 노엘은 조금 더 긴 설명을 남겼는데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동료들을 향한 언어적·폭력적 위협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했고, 매니지먼트와 밴드 동료들에게 충분한 지원과 이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Rock en Seine>에서 벌어진 충돌 하나 때문에 갑작스럽게 오아시스가 해체됐다기보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두 사람의 갈등이 이날을 기점으로 결국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보는 편이 조금 더 정확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2009년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과거에는 노엘이 투어에서 빠지고 두 사람의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돼도 결국 다시 돌아왔지만, 2009년 8월 28일에는 노엘이 처음으로 직접 오아시스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에는 조금 아이러니한 부분도 있습니다. 흔히 오아시스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면 <Rock en Seine>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곳은 오아시스의 마지막 공연이 아닙니다. 공연 자체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노엘과 리암이 오아시스로서 마지막까지 함께 공연을 마친 것은 그보다 앞선 2009년 8월 22일, 영국 스태퍼드셔의 웨스턴 파크(Weston Park)에서 열린 <V Festival>이었습니다. 다음 날 첼름스퍼드 공연은 리암의 후두염으로 취소됐고, 그다음 예정됐던 Rock en Seine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8월 22일 그 공연을 보고 있던 관객들은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 노엘과 리암이 함께하는 마지막 오아시스 공연을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오아시스 공연까지는 무려 1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오아시스가 멈춘 뒤 노엘과 리암은 각자의 음악을 이어갔고, 그 사이 두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재결합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다시 같은 무대에 서는 일은 좀처럼 현실이 되지 않았죠. 그러다 2024년, 마침내 오아시스의 재결합과 새로운 투어가 발표됩니다. 그리고 2025년 7월 4일, 웨일스 카디프의 프린시펄리티 스타디움(Principality Stadium)에서 노엘과 리암은 수만 명의 관객 앞에 다시 함께 등장합니다. 두 사람이 오아시스로 같은 무대에 선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16년 만에 돌아온 오아시스가 공연의 시작을 알리며 선택한 첫 번째 노래는 공교롭게도 ‘Hello’였습니다. 16년 전 프랑스에서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 모든 것이 멈췄고, 16년 뒤 카디프에서는 두 사람이 다시 함께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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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모든게 비현실 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2009년 9월에는 달랐습니다. 무대는 준비돼 있었고, 관객들은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아시스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노엘이 남긴 몇 줄의 글을 끝으로, 늘 다시 돌아왔던 두 사람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듯 했죠. 오아시스의 마지막은 거대한 고별 공연도, 팬들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작되지 못한 하나의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시작되지 못했던 오아시스의 다음 공연까지는 1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오아시스로 뭉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오랫동안 재결합을 기다려온 팬들에게 노엘과 리암이 다시 같은 무대에 서는 모습은 그 자체로 특별한 순간이었을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공연이었을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 한번 오아시스의 음악을 들으며 살아갈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l Photo. N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