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영국 머큐리상. 그해 올해의 앨범상엔 ‘최초’라는 수식이 따라붙습니다. 머큐리상 최초로 ‘재즈 밴드’가 이 상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 ‘최초’의 주인공들은 머큐리상 뿐 아니라 재즈 밴드 최초로 브릿 어워드의 본상인 최우수 그룹상을 수상했고 런던에서 두 번째로 큰 실내 공연장인 웸블리 아레나 무대에 선 ‘최초’의 재즈 밴드가 되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최초’에 자신들의 이름을 적으려는 것 같은 이들. 바로 영국 재즈 씬의 최전선이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에즈라 콜렉티브(Ezra Collective)입니다!

©Ezra Collective Bandcamp
해외의 재즈 씬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아무래도 미국입니다. 장르의 발상지이자 그에 걸맞은 규모를 떠올리면 그 존재감은 가히 압도적이죠. 한편, 거기서 좀 멀리 떨어진 영국 런던. 모두가 기타나 베이스를 메고 밴드를 결성할 것만 같은 이곳에서도 재즈의 싹은 틔워집니다. 일명 ‘런던 재즈’. 이곳이 에즈라 콜렉티브의 장르적 터전이 되는 곳입니다.
런던이라는 공간과 에즈라 콜렉티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이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름 하나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 Tomorrow’s Warriors
바로 ‘투모로우스 워리어스(Tomorrow’s Warriors)’라는 이름입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대체 이게 뭔가 싶으시겠지만… 이 ‘내일의 전사들’은 영국의 재즈 그룹 재즈 워리어스(Jazz Warriors)의 멤버인 개리 그로스비(Gary Crosby)와 배우자인 재닌 아이언스(Janine Irons)가 1991년에 설립한 ‘재즈 교육 기관’입니다.
그런데 이 투모로우스 워리어스의 운영. 매우 파격적입니다. 이들의 핵심 이념은 다양성과 포용인데요. 이를 실천하고자 투모로우스 워리어스는 학비를 받지 않습니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죠.

©Jazzwise
이 프로젝트는 열악한 영국 재즈 씬을 경험한 창립자 게리 그로스비가 인종과 계층, 성별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미래의 재즈 뮤지션들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시작한 일이며 현재까지도 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에즈라 콜렉티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투모로우스 워리어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싶으실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에즈라 콜렉티브가 이곳에서 탄생했기 때문이고, 또 에즈라 콜렉티브의 가치관에 투모로우 워리어스의 설립 이념이 깊게 뿌리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에즈라 콜렉티브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봅시다.

©Live Nation
에즈라 콜렉티브는 팀의 리더이자 드럼의 페미 콜레오소(Femi Koleoso)와 베이스의 TJ 콜레오소(TJ Koleoso) 형제, 테너 색소폰의 제임스 몰리슨(James Mollison), 피아노의 조 아몬-존스(Joe Armon-Jones), 트럼펫의 딜런 존스(Dylan Jones)가 결성한 팀이에요. 모두 투모로우스 워리어스에서 만났지만 출신과 인종은 모두 제각각이었어요. 이들이 자라온 문화도, 취향도 모두 달랐던 거죠. 이 다섯 명의 모습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한 데 뒤섞인 런던의 모습 그 자체였어요. 하지만 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같았습니다. 바로 음악을 다루는 태도였습니다. 이들은 정통 재즈는 물론 앨리스 콜트레인(Alice Coltrane)이나 선 라(Sun Ra) 같은 아방가르드 재즈에도 열려있었어요. 이들 모두는 자신들이 보고 자란 문화만큼이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자랐지만 이 모든 장르를 수용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성경 속 등장하는 제사장인 ‘에즈라(Ezra)’ 와 자신들의 모태이자 모토인 ‘콜렉티브(공동체)’를 합쳐 ‘에즈라 콜렉티브’라는 밴드를 탄생시켜요.
이 이름에서 ‘콜렉티브’라는 단어는 이들에게 꽤나 큰 의미를 지닙니다. 먼저 이들이 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했다는 점. 또 이들이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공동체 의식과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에즈라 콜렉티브는 단순히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을 넘어 그 음악으로 무얼 추구할 것이며 또 어떤 것을 바꿀 것인지를 모색하려 합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영국의 재즈는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어 고착화되고 있다고. 에즈라 콜렉티브는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재즈를 모두의 것으로 되돌려놓고자 합니다. 모두가 함께 즐기고 춤출 수 있는 재즈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재즈를 즐기게 하는 것. 이를 통해 런던의 재즈 씬이, 나아가 영국의 재즈 씬이 그 저변을 넓혀 씬의 유산을 후대까지 이어 나가게 만드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이는 에즈라 콜렉티브의 시작이었던 투모로우스 워리어스의 이념과도 일부분 일치합니다. 결국 이들에게 재즈는 음악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였던 것이죠.
밴드의 음악은 재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즈가 아니기도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들은 다양한 취향을 수용하고 이를 한 데 섞어버리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아프로비츠도 들리고, 힙합도 들리며, 아방가르드나 레게가 들리기도 합니다. 재즈와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도, 평소에 재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을 다루고 있던 거죠.
결국 세상이 반응합니다. 2016년 데뷔 EP [Chapter 7]을 시작으로 서서히 주목받던 이들은 첫 정규 [You Can’t Steal My Joy]로 UK 차트에 진입했고 한 차례 멤버 교체(딜런 존스가 떠나고 이페 오군조비가 합류)를 거쳐 [Where I’m Meant To Be]로 마침내 머큐리상 올해의 앨범 부문을 수상하며 런던 재즈 씬의 족적을 남깁니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가르친다. (Each one, teach one)”
이 말은 투모로우스 워리어스의 슬로건입니다. 에즈라 콜렉티브는 머큐리상 수상소감을 통해 투모로우 워리어스를 언급하며 이 기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이들 역시 공연을 위해 방문한 지역에서 청소년들과 교류하거나 나아가선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하며 투모로우 워리어스가 추구하던 방향에 동참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자신들이 배운 것으로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재즈 라이브의 가장 큰 묘미는 잼(Jam)입니다. 사전에 합의된 것 없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며,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음악을 함께 만들어내는데요. 어쩌면 이것이 에즈라 콜렉티브가 추구하는 공동체와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즈라는 언어를 빌려 사회의 협동과 공존을 말하는 에즈라 콜렉티브의 음악을 오늘 한 번 ‘함께’ 즐겨보면 어떨까요?
l Photo. Ezra Collective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