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침없는 무대 매너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유명한 미국의 펑크 록 밴드 그린 데이(Green Day). 특유의 반항적인 태도와 장난기 넘치는 퍼포먼스로 수많은 팬들을 사로잡아 온 이들은, 오랜 활동 기간만큼이나 다양한 사건과 일화를 남긴 밴드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무대 위에서 돌발 행동을 벌이거나 관객들과 짓궂은 장난을 주고받으며, 일반적인 록 콘서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요.

©Green Day IG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그린 데이의 역사에서 가장 황당하면서도 전설적인 순간으로 손꼽히는 1994년 우드스톡 페스티벌(Woodstock ’94) 공연입니다. 당시 그린 데이는 관객들과 서로 진흙을 던지며 공연장을 거대한 진흙 싸움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렸는데요. 급기야 일부 관객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가 하면, 밴드 멤버 한 명이 경비원에게 제압당해 부상을 입는 사고까지 발생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날은 1994년 8월 14일. 미국 뉴욕주 소거티스에서 열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는 행사 기간 약 30만 명의 관객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그린 데이는 세 번째 정규 앨범이자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인 [Dookie]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는데요. ‘Longview’와 ‘Basket Case’ 등의 곡이 주목받으면서 언더그라운드 펑크 신을 넘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아직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록스타의 위치에 오른 것은 아니었죠. 그리고 이들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결과적으로 그린 데이의 존재감을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AP
당시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현장 분위기는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상징하던 평화와 사랑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행사 기간 내린 비로 공연장 곳곳이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했고, 관객들은 온몸에 진흙을 바르거나 서로에게 던지며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는데요. 그렇게 진흙투성이가 된 관객들 앞에 그린 데이가 등장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Welcome to Paradise’로 무대를 연 그린 데이는 ‘One of My Lies’, ‘Chump’, ‘Longview’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객석에서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관객들이 서로에게 던지던 진흙을 무대 위로 날려 보내기 시작한 것이죠. 처음에는 축제 현장에서 벌어진 장난처럼 보였지만, 점차 무대를 향해 날아드는 진흙이 늘어나면서 공연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린 데이 역시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보다 관객들의 장난에 맞섰습니다. 프론트맨 빌리 조 암스트롱(Billie Joe Armstrong, 이하 빌리 조)은 무대 위로 날아드는 진흙을 관객들에게 되던졌는데요. 이에 객석에서도 진흙이 계속 날아들면서, 밴드와 관객이 서로 진흙을 주고받는 광경이 펼쳐졌죠. 그렇게 시작된 진흙 싸움은 공연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격렬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멤버들은 온몸이 진흙으로 뒤덮였고, 악기를 제대로 연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연에 지장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음악을 연주해야 할 무대가 어느새 관객들과 진흙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공연을 이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러한 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특히 공연의 마지막 곡인 ‘Paper Lanterns’가 이어질 무렵에는 진흙 싸움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진흙이 오갔고,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일부 관객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기까지 했는데요. 수많은 관객이 한꺼번에 무대로 몰려드는 상황 속에서 현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린 데이의 공연은 어느새 일반적인 록 콘서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온몸이 진흙으로 뒤덮여 있던 베이시스트 마이크 던트(Mike Dirnt)가 경비원에게 무대에 난입한 관객으로 오인받은 것인데요. 그는 경비원에게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앞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결국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사고로 그린 데이는 다음 날 마이애미에서 예정되어 있던 롤라팔루자(Lollapalooza) 공연까지 취소하게 되었죠.

©John Lynn Kirk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작 사고를 당한 마이크 던트가 이 공연을 단순히 끔찍한 기억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상은 불행한 사고였지만, 공연 자체는 훌륭했다고 회상했는데요. 빌리 조 역시 처음에는 우드스톡 페스티벌 공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막상 무대에서 경험한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만큼 이날의 공연은 멤버들에게도 쉽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공연은 결과적으로 그린 데이의 역사에 중요한 장면으로 남게 됩니다. 사실 그린 데이는 우드스톡 페스티벌 이전부터 이미 [Dookie]의 성공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흙투성이가 된 채 관객들과 뒤엉킨 공연은 당시 언론에서도 주목받았는데요.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그린 데이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친 무대였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greendayitalianrageandlove
이후 마이크 던트 역시 한 인터뷰에서 1994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그린 데이에게 변화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이미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밴드였지만, 이 공연을 기점으로 자신들의 인기가 더욱 커졌다는 것이었죠. 결국 예상치 못한 진흙 싸움으로 끝난 공연이 그린 데이의 대중적 성공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장면이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공연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당시 그린 데이가 보여준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에너지 때문일 것입니다. 1969년의 우드스톡이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축제로 기억된다면, 1994년 그린 데이의 무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펑크 록 특유의 즉흥성과 혼란을 드러냈죠.
이후 그린 데이는 [American Idiot]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록밴드로 성장했지만, 1994년 우드스톡은 여전히 이들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고, 누구도 통제하지 못했던 그날의 공연. 어쩌면 이 무대가 오랜 시간 기억되는 이유는 세계적인 록스타로 성장하던 그린 데이의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l Photo. Danny Cli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