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영국에서 한 밴드가 데뷔합니다. 밴드는 1년간 두 장의 EP를 내놓으며 단숨에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2000년 밴드의 첫 정규가 큰 성공을 거두며 이들은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합니다.
그래서 이 밴드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냐고요? 아뇨.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은 이 밴드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그저 멀리서 지켜보던 이들입니다. 심지어 이 밴드의 이름을 지은 장본인이 멤버 중 하나였는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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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학 시절, 밴드를 결성하려는 친구에게 자신이 지어둔 이름 하나를 들려주게 됩니다. 친구는 맘에 들어 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이었고 그가 양보한 이름은 바로 ‘콜드플레이(Coldplay)’였습니다.
이름을 양보한 이의 이름은 팀 라이스 옥슬리(Tim Rice-Oxley, 이하 팀). 당시 크리스 마틴은 팀에게 자신의 밴드 ‘콜드플레이’의 키보디스트로 합류를 제안했지만 그는 자신의 밴드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합니다. 그 밴드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밴드, 킨(Keane)입니다.
이제는 콜드플레이와 킨 모두 너무도 잘 알려진 이름입니다. 기막힌 인연으로 시작해 이제는 영국 음악계에, 나아가 세계 음악계에 굵직한 트랙들을 남긴 이들이지만, 두 팀의 시작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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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은 1995년 소꿉친구였던 팀 라이스 옥슬리와, 리처드 휴스(Richard Hughes, 이하 리처드)가 대학에서 만난 도미닉 스콧(Dominic Scott, 이하 도미닉)과 결성한 밴드입니다. 당시엔 킨이 아닌 ‘로터스 이터스(Lotus Eaters)’라는 이름의 밴드였죠. 로터스 이터스는 지금의 킨과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현재는 키보디스트인 팀이 베이스를 연주했고 주로 커버 곡을 연주하던 밴드였으며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기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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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인 1997년에 또 다른 소꿉친구인 보컬 톰 채플린(Tom Chaplin, 이하 톰)이 합류하며 로터스 이터스는 4인조가 됩니다. 바뀐 건 멤버 구성만이 아니었습니다. 톰이 합류하며 밴드의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인데요. 어릴 적 팀과 톰을 돌봐주곤 했던 체리 킨(Cherry Keane) 여사의 이름에서 따와 ‘킨’이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하게 됩니다. 그렇게 베이스의 팀, 드럼의 리처드, 기타의 도미닉, 보컬의 톰. 4인조 밴드 킨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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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시작은 결코 순탄치가 않습니다. 그들은 밴드 활동을 시작한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앨범 계약 하나 따내지 못했고 여전히 클럽과 펍 공연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결국 2000년. 자신들이 직접 프로모션 싱글 ‘Call Me What You Like’를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어느 곳에서도 킨을 찾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콜드플레이가 첫 정규 [Shiver]를 발표해 승승장구하던 것과 너무도 상반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밴드의 업력은 6년을 향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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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밴드의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기타리스트 도미닉이 학업을 이유로 팀을 탈퇴한 것입니다. 이는 생계를 위해 생업과 밴드 활동을 병행하며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던 멤버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밴드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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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은 도미닉의 공백을 채우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유년기부터 오랜 세월을 함께 자라 온 멤버들을 신뢰했고 남은 세 명의 유대와 호흡을 믿기로 합니다. 그렇게 킨은 3인조로 재정비됩니다.
한편 팀은 기타의 빈자리를 메꿀 사운드를 찾기 위한 실험에 돌입합니다. 갖은 악기들을 음악에 접목했고 전자 음악에 눈을 돌리기도 합니다. 반복된 실험 끝에 팀은 답을 찾습니다. 그 답은 정말 간단했습니다. 바로 ‘키보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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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은 야마하 사에서 출시한 ‘CP-70’ 키보드가 기타처럼 앰프에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밴드의 미래라는 것을 직감합니다. 결국 팀은 6년간 쥐고 있던 베이스를 내려놓고 맨 처음 크리스 마틴이 자신에게 제안한 자리인 키보드 앞에 앉기로 합니다. 결국 도미닉의 탈퇴는 킨의 위기가 아닌 오늘날 피아노 록의 시그니처가 된 킨의 결정적 순간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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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편성이 바뀌자 킨의 음악까지 극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키보드를 중심으로 짜이게 된 구성은 팀의 작곡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됐고 멤버들은 바뀐 환경에서 팀이 완성한 데모를 들으며 그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팀에게서 킨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곡이 탄생합니다. 바로…
킨의 커리어를 완전히 뒤바꾼 노래. ‘Everybody’s Changing’입니다. 떠나간 멤버 도미닉 스콧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이 노래는 사운드적으로도 킨 스러운 사운드의 기준이 되며 밴드의 중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2002년 연말. 드디어 세상이 반응합니다. ‘기타 없는 밴드’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업계에 퍼졌고 이는 피어스 판다 레코드(Fierce Panda Records)의 설립자 사이먼 윌리엄스(Simon Williams, 이하 사이먼)에게 닿게 됩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고요? 바로 무명의 콜드플레이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장본인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킨을 끌어올리려 나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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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의 노래에 매료된 사이먼은 그 즉시 그들에게 싱글 발매 계약서를 내밉니다. 킨이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2003년 ‘Everybody’s Changing’이, 또 ‘킨’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기세를 몰아 2003년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와 계약을 맺은 킨은 이듬해인 2004년 ‘Somewhere Only We Know’를 첫 정식 싱글로 내놓으며 영국 오피셜 차트 3위로 데뷔했고 마침내 그해 5월, 킨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첫 번째 정규 앨범 [Hopes and Fears]가 발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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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의 1집 [Hopes and Fears]는 발매된 한 해 동안 영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됐고 킨은 다가오는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인상과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시간은 2004년. 킨이 결성된 지 9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Keane IG
킨은 베이스 세션으로 밴드를 조력하던 제시 퀸(Jesse Quin)을 2011년 정식으로 영입하며 다시 초창기의 형태인 4인조로 되돌아왔습니다.
[Hopes and Fears]는 어느덧 발매 스무 해를 넘겼고 킨은 미래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유대는 여전히 끈끈합니다. ‘기타 없는 밴드’ 킨의 서사는 단순히 파격과 실험의 서사를 넘어 멤버들의 유대와 신뢰가 음악적 성취로 이어지고 밴드의 운명까지 바꾼 관계의 서사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계에선 지금도 많은 팀이 불화로 와해되고 해체 이후에도 서로를 비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킨의 이야기가 음악계에서 가지는 의미는 굉장히 특별할 것입니다. 음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l Photo. Bugs,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