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 어떤 분들에겐 추억 속 소리일 테고, 어떤 분들에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속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유물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소리는 윈도우즈(Windows)의 운영체제 ‘윈도우 95(Windows 95)’가 켜질 때마다 들리던 소리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듣고 있지만 그저 지나칠 뿐인 이 짧은 소리들에도 음악가의 손길은 깃듭니다. 그리고 그 음악가의 이름은 여러분이 꽤나 잘 알고 있는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윈도우 95의 소리 역시 음악팬들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의 손길이 깃들어 있습니다. 바로 ‘가구 같은 음악’ 앰비언트 장르의 거장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이하 브라이언)가 이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Wikipedia, Logo Histories
PC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90년대, 당시 PC 시장은 애플(Apple)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대결이었습니다. 시장 점유율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던 두 회사에겐 쐐기를 박을 한 방이 필요했죠. 한편, 당시 사람들의 인식 속에 PC란 차갑고 기계적이라는 인식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두 회사는 이 인식을 깨는 것이 시장의 선두를 차지하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애플의 맥(Mac)은 다채롭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려 합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겐 이렇다 할 무기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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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마이크로소프트의 광고 대행사였던 '와이든+케네디(Wieden + Kennedy)'의 전략 기획자 피터 라일리 (Peter Riley, 이하 피터)는 생각합니다. 윈도우즈를 켤 땐 아무런 개성도 흥분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는 이내 답을 찾습니다. 바로 ‘소리’였습니다. 애플이 시각을 공략할 때 윈도우즈는 청각을 공략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피터는 곧장 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를 낙점해 연락을 취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브라이언 이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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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가 브라이언에게 협업을 제안할 당시 그는 슬럼프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디어는 고갈되었고 스스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 그에게 찾아든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은 그를 꽤나 흥미롭게 만듭니다. 브라이언 이노는 당시에 대해 “나는 그게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작은 음악 한 조각을 만들어 보겠다는 발상이 놀라웠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크로소프트가 그에게 제시한 조건이 이랬기 때문이죠.
“사운드는
보편적이어야 하고
낙관적이어야 하고
미래적이어야 하고
감상적이어야 하고 …”
이 밖에도 수많은 형용사가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쐐기를 박는 조건 하나가 붙습니다.
“3¼초를 넘지 않을 것.”
추상적이고 복잡한 조건이었지만 자신의 음악에 대한 불확실성에 갈피를 못잡던 브라이언에게 이처럼 확실한 문제는 오히려 엄청난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작업에 착수합니다.
사실 브라이언 이노에게 이러한 작업은 마냥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보다 훨씬 앞선 1978년. 이미 한 차례 그는 공항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Music For Airport]를 제작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터 라일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브라이언을 적임자로 확신했고 그가 컴퓨터를 경험하는 문화 자체를 뒤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됩니다.
브라이언은 3초가 아주 약간 넘는 시간 안에 자신과 윈도우즈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전부 표현해야 했습니다. 보통 곡 하나에 10분을 넘어 무려 한 시간까지도 밀어붙이던 그였기에 3초 남짓이라는 시간은 정말 짧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이 3¼초라는 시간에 서서히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대해 아주 짧은 음악 조각들로 이루어진 세계에 완전히 빠져 들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브라이언은 짧은 시간 안에서 최대한의 완성도를 뽑아내기 위해 마이크로초 단위까지 매만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슬럼프의 끝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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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은 무려 84개의 사운드를 완성시킵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자신 안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 3¼초라는 짧디짧은 시간이 그를 긴 시간 동안 괴롭혔던 슬럼프를 이겨내게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등장합니다. 84개의 쟁쟁한 후보 중 선정된 결과물은 3¼초가 아닌 약 6초, 조건보다 배로 긴 사운드였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사운드가 가진 따뜻함과 인간성을 믿었고 그렇게 우리의 추억과 기록에 남은 윈도우 95의 사운드가 완성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BMW가 자사 전기차의 사운드 디자인을 작곡가 한스 짐머 (Hans Zimmer)에게 맡기는 등 기계적 대상에 예술적 정서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윈도우 95와 브라이언 이노가 남긴 6초 남짓의 소리는 컴퓨터의 시대가 다가오던 시기,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모색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이며 그 수단으로 음악이 활용된 가치 있는 사건 중 하나일 것입니다. 결국 이 사운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발표 30년이 되던 2025년, 미국 의회도서관의 ‘국립 녹음 등록부’에 등재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사운드는 AI가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오늘날, 예술과 기계의 역할에 대해 브라이언이 던진 질문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l Photo. HipFonts, 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