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여러분, 에디터 meddlee입니다. 🙇♂️
오늘은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어딘가 마음까지 적적해지는 요즘, 조금은 낯설고도 묘한 매력을 지닌 신보 한 장을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바로 덴마크 출신 싱어송라이터 파인(Fine)이 지난 10월 23일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Jazz Dreams]입니다. 재즈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앨범에 담긴 음악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재즈와는 조금 다른데요. 쟁글 팝부터 포크 록, 트립합, 라운지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최근 미국 음악 매체 피치포크(Pitchfork)로부터 8.7점과 'Best New Music' 평가를 받으며 빠른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 라운지 음악(Lounge Music): 특정한 음악 장르를 지칭하기보다는 호텔이나 바 등의 휴게 공간인 ‘라운지(Lounge)’에서 주로 재생되던 음악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음악적 특징보다 음악이 소비되는 공간과 분위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장르다.
그렇다면 파인은 왜 이토록 기묘한 팝 앨범에 '재즈의 꿈'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총 13곡이 수록된 [Jazz Dreams]는 서로 다른 장면과 감정, 음악적 아이디어를 꿈처럼 엮어낸 작품입니다. 익숙한 멜로디가 흐르다가도 예상치 못한 리듬과 악기들이 등장하고, 서로 다른 시대의 음악적 요소들이 하나의 곡 안에서 자연스럽게 뒤섞이죠. 파인은 앨범 제작 과정에 대해 음악을 만드는 일이 반드시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꿈속에서는 기묘한 일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앨범이 재즈라는 장르 자체보다 재즈가 지닌 즉흥성과 자유로운 태도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사실입니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순간의 직관과 우연에 몸을 맡기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음악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죠. 앨범 소개에서도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본능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가는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다시 말해 [Jazz Dreams]에서 재즈는 특정한 소리나 연주 방식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태도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수록곡에서도 드러납니다. 'Million Years'에서는 5/4박자와 11/4박자가 교차하는 실험적인 구성을 선보이지만, 복잡한 리듬이 곡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Sometimes I Rush'에서는 서두르지만 목적지에는 도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결과보다 과정에 머무르는 앨범의 정서를 드러내죠. 또한 'I Could'에서는 부드러운 보컬과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가 대비를 이루며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피치포크 역시 이러한 음악적 태도에 주목했습니다. 매체는 파인이 쟁글 팝과 포크 록, 오래된 라운지 음악처럼 익숙한 형식에 묘한 불확실성을 더한다고 평가했는데요. 특히 오랜 연습과 치밀한 작곡을 바탕으로 완성된 음악이 마치 숙련된 연주자들의 즉흥연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여기에 전작에서 두드러졌던 겹겹의 보컬 대신 보다 여백이 살아 있는 사운드를 선택하면서, 음악은 한층 친밀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갖추게 됐습니다.

©Fine / Jared Nangle
흥미롭게도 이러한 우연의 미학은 앨범의 아트워크에도 담겨 있습니다. 어딘가 엉뚱하고 기묘한 그림이 담긴 커버는 사실 지난해 파리 공연에서 한 팬이 파인에게 건넨 작품인데요. 당시 재러드 낸글(Jared Nangle)이라는 팬이 공연 입장권을 받는 대가로 건넨 그림이 이번 앨범의 얼굴이 된 것입니다. 우연히 주고받은 작은 선물이 하나의 작품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게 된 셈이죠. 이처럼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순간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는 점에서도 [Jazz Dreams]가 추구하는 음악적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낸 파인은 어떤 아티스트일까요?
본명은 파인 글린드바드 옌센(Fine Glindvad Jensen)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입니다. 코펜하겐의 리드미컬 뮤직 콘서바토리(RMC)*에서 음악을 공부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음악계는 노르웨이 출신 듀오 스머즈(Smerz)를 비롯해 에리카 드 카시에(Erika de Casier), ML 부흐(ML Buch), 아스트리드 손(Astrid Sonne) 등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아티스트들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 리드미컬 뮤직 콘서바토리(Rhythmic Music Conservatory): 1986년 덴마크 문화부 산하에 설립된 음악 교육기관으로, 유럽 최초로 록, 팝, 재즈, 일렉트로닉 등 현대음악을 전문 교육 분야로 삼은 음악원이다.
그리고 파인의 음악을 처음 접하더라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요. 파인이 보컬로 활동했던 덴마크의 밴드 차이나(CHINAH)의 'Away From Me'가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 투 셸(Two Shell)의 2022년 곡 'home'에 샘플링되었으며, 심지어 뉴진스(NewJeans)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파인은 2023년 뉴진스 측으로부터 코펜하겐에서 진행되는 송라이팅 세션에 초대받았고, 평소 친분이 있던 에리카 드 카시에와 스머즈의 멤버들 역시 같은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함께 작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뉴진스의 미니 2집(EP) [Get Up]에 수록된 'New Jeans', 'Cool With You', 'ASAP' 등의 곡을 함께 작업했는데요. 당시 에리카 드 카시에는 미국 매체 GQ와의 인터뷰에서 파인과 휴대전화로 멜로디를 녹음하며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Cool With You'는 즉흥적인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곡이었으며, 'New Jeans' 역시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즐겨 듣던 팝 음악의 영향을 바탕으로 완성됐다고 설명했죠. 이처럼 놀이에 가까웠던 창작 방식은 이번 [Jazz Dreams]에서 파인이 보여주는 음악적 태도와도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이후 파인은 2024년 첫 정규 앨범 [Rocky Top Ballads]를 발표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본격적으로 선보였고, 이번 [Jazz Dreams]에서는 프로듀싱부터 녹음과 믹싱까지 직접 담당하며 그 세계를 더욱 확장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파인은 학창 시절 한 선생님으로부터 '어쩌면'이라는 가능성에 기꺼이 마음을 열어보라는 조언을 들었고, 이를 노트에 커다랗게 적어두었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Jazz Dreams]는 그때의 태도가 음악으로 구현된 결과물인지도 모릅니다. 정답을 찾거나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재즈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이 기묘한 팝 앨범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자유로움이 아닐까요?
l Photo. Fine / Jared Nan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