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IBUYA BUNKA PROJECT
1990년대 일본, 도쿄 시부야 구 우다가와초는 음악 팬들의 성지였습니다. 이곳에 레코드 숍들이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이 지역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음악 팬들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창구와도 같았습니다. 전국에서 각기 다른 음악 취향을 가진 이들이 이 지역으로 모여들었고 레코드 숍들 역시 여기 맞춰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취급하게 됩니다.

스물한 살 청년 야마다 준(Yamada Jun, 이하 야마다) 역시 이곳 우다가와초에서 새로운 음악을 탐색하던 마니아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재즈와 소울, 특히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좋아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DJ 바에도 즐겨 방문 했는데 DJ들의 플레이를 듣다가 맘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이 노래가 무엇이냐 물을 정도로 꽤나 열성적인 팬이었습니다.
결국 이 열정은 그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는 듣는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레코드 숍을 열기로 마음먹습니다. 자신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던 그곳, 우다가와초에 말이죠.

기네스 레코즈 인터뷰 지면 ©Reddit
야마다는 빌딩의 4층, 사무실로 사용되던 공간을 개조했고 마침내 자신의 첫 레코드 숍, 봉고 퓨리 레코즈(Bongo Fury Records)를 오픈합니다. 후에 이 이름은 기네스 레코즈(Guiness Records, 이하 기네스)로 바뀌게 됩니다.

©Instagram ‘abeselassie’
야마다는 평소 자신의 관심사였던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중심으로 기네스를 꾸려나갑니다. 그는 이곳을 ‘레코드 셀렉트 숍(Record Select Shop)’이라 표현했는데요. 본인이 들었을 때 ‘좋다’고 생각된 앨범만 엄선하여 가게에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그의 관심사였던 재즈와 소울 앨범도 취급하였지만 기네스를 자주 찾던 한 래퍼에 따르면 대부분 비트의 샘플링 소스로 사용하기 좋은 앨범들 위주였다고 전해집니다. 즉 기네스는 힙합에 의한, 힙합을 위한 공간으로서 역할 하고 있던 것이죠.

야마다 준이 촬영한 하시모토 토루 사진 ©ele king
이 무렵 야마다는 새로운 일에 흥미를 갖게 됩니다. 평소처럼 DJ 바에서 좋은 노래를 묻고 다니던 야마다는 한 DJ와 친분을 쌓는데요. 하시모토 토루(이하 하시모토)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DJ 활동과 함께 에디터로도 활동하며 음악 가이드북 <서버비아 슈트(SUBURBIA SUITE)>를 연재 중이었습니다. 다음 호를 준비 중이었던 하시모토는 어느 날 야마다에게 연락 한 통을 받습니다. 야마다는 하시모토에게 자신도 글을 기고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ARBAN
평소 야마다를 눈여겨봤던 하시모토는 이를 수락하고 그와 함께 <서버비아 슈트>의 새로운 호를 완성합니다. 이때 야마다는 하시모토에게 부탁 하나를 남기는데요. ‘야마다’라는 본명이 아닌 필명을 쓰고 싶다는 부탁이었습니다. 그가 건넨 이름은 ‘세바 준(Seba Jun)’. 훗날 거꾸로 적히며 ‘누자베스(NUJABES)’가 되는 이름이었습니다.

왼쪽부터 DJ 덱스트림, 서브스탠셜, 세바 준 ©Insight Music
야마다 준, 아니 세바 준은 열정적인 리스너지만 한 때는 그도 음악을 만들던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음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몰입하지 못했고 결국 손을 떼게 되죠. 이후 그에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레코드 숍의 사장이 되었고, 그곳에서 수많은 뮤지션들을 만났으며 음악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순간들이 쌓이자 그의 몸은 다시 움직입니다. 세바 준은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와 소울을 샘플링한 음악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세바 준은 다시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Hydeout Productions Facebook
세바 준은 좋아하는 앨범을 듣다가 맘에 드는 구간을 발견하면 이를 따와 루프로 만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노래에서 모인 루프들을 모아 하나의 비트로 완성시켜 나갔죠. 그 무렵 세바 준의 플로피디스크엔 그렇게 만들어진 비트들이 하나 둘 씩 쌓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심합니다. 이 노래를 세상에 발표하겠다고 말이죠.
그는 자신의 필명 세바 준(SEBA JUN)의 알파벳 철자를 뒤집어 ‘NUJABES’라는 이름을 짓고 첫 번째 믹스테잎 [Sweet Sticky Thing]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하이드아웃 프로덕션(Hyedout Productions)’이라는 레이블을 설립해 프로듀서 누자베스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섭니다.
하이드아웃 프로덕션과 그의 작업물들이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누자베스는 언더그라운드의 잔뼈 있는 프로듀서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첫 정규앨범 [Metaphorical Music]으로 그 입지를 굳힙니다. 또 그는 샘플링에만 의존하지 않고 피아노와 플룻 등을 직접 연주하며 샘플링과 레코딩의 조화를 꾀한 끝에 2집 [Modal Soul]에서 그 균형을 완성시켜 뮤지션으로서의 외연을 확장합니다. 어느덧 재즈 힙합씬의 상징적인 인물로 떠오른 그는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 (Samurai Champloo)>의 OST에 참여하여 ‘Aruarian Dance’를 히트시켰고 세계적인 명성까지 거머쥡니다.

지난 2월 서울에서 진행된 누자베스 트리뷰트 쇼 ©mixmag asia
누자베스가 세상을 떠난지 16년. 세상은 변했고 음악을 듣는 방식도 변하였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우다가와초로 모이던 사람들은 인터넷 속으로 흩어졌고 앨범은 싱글로, 싱글들은 다시 몇 초의 클립으로 쪼개졌습니다. 그의 음악 ‘Aruarian Dance’ 역시 몇 초의 클립이 되었고 이는 많은 이들의 배경 음악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바뀐 세상에서도 그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누자베스의 음악을 듣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그를 추모하는 헌정 공연이 열리고 있고 한국에서 역시 그를 기리는 여러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ARBAN
야마다 준은 자신이 좋아하던 앨범을 엄선해 사람들에게 소개했고 세바 준은 음악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어냈으며 누자베스는 자신이 좋아하던 루프를 모아 비트로 엮어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어쩌면 거대한 샘플링과도 같았을지 모릅니다.
그가 떠난 뒤. 이젠 우리가 그의 흔적을 엮어 새로운 무언가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것으로 완성할 것들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요?
l Photo. Tid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