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안녕하세요. namyu입니다.
여러분은 음악 역사에 남은 공연이라고 하면 어떤 무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수많은 관객이 함께 노래를 부르던 순간일 수도 있고, 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무대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가끔은 음악만큼이나 그날 무대에서 벌어진 하나의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공연도 있습니다.

© Michael Lavine
오늘 소개할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요. 록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이름, 바로 너바나(Nirvana)입니다.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이들은 단 세 장의 정규 앨범만을 남겼음에도,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수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Cobain Estate
특히 프론트맨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은 록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죠. 거칠고 폭발적인 음악, 기존 록스타들과는 사뭇 달랐던 태도, 그리고 너무나 짧았던 생애까지. 그의 이름에는 지금도 수많은 이야기가 따라붙곤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커트 코베인의 수많은 무대 중에서도 유독 흥미롭게 느껴지는 공연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자신을 둘러싼 온갖 소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신, 오히려 그 소문을 무대 위에서 직접 연기해 버린 공연인데요. 그것도 수만 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무대에서 말이죠.
바로 1992년 8월 30일, 영국 레딩 페스티벌(Reading Festival)에서 펼쳐진 너바나의 전설적인 공연입니다. 당시 수만 명의 관객이 기다리던 그날의 헤드라이너는 바로 너바나였습니다. 그런데 무대 위에 등장한 커트 코베인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헝클어진 금발 가발에 환자복을 걸치고, 심지어 휠체어에 앉아 등장한 것이었죠.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베트 미들러(Bette Midler)의 ‘The Rose’를 몇 소절 부르더니, 그대로 무대 위에 쓰러져 버립니다.

© Spotify
사실 당시 커트 코베인은 수많은 소문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991년 발표한 너바나의 두 번째 앨범 [Nevermind]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불과 1년 전만 해도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활동하던 그는 순식간에 시대를 대표하는 록스타가 되었는데요. 하지만 갑작스러운 유명세와 함께 그의 건강, 약물 사용, 그리고 아내 코트니 러브(Courtney Love)를 둘러싼 자극적인 보도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레딩 페스티벌을 앞두고는 그가 병원에 입원했다거나 공연 자체가 취소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떠돌고 있었죠.
그런데 커트 코베인은 이 소문들에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답하기로 합니다. 자신이 정말로 공연조차 할 수 없는 환자인 것처럼 무대에 등장한 것이죠.

© Michael Lavine
당시 그를 휠체어에 태워 무대까지 데려간 인물은 음악 기자 에버렛 트루(Everett True)였는데요. 훗날 그의 회고에 따르면, 이 퍼포먼스는 자신을 둘러싼 자극적인 소문들을 비꼬기 위한 장난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쓰러져 있던 커트 코베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 기타를 집어 듭니다. 곧이어 울려 퍼진 첫 곡은 ‘Breed’. 그렇게 록 역사에 남을 전설적인 공연이 시작됩니다.
이날 너바나는 ‘Drain You’, ‘Lithium’, ‘Come As You Are’ 등 대표곡들을 쉴 새 없이 연주했습니다. 특히 ‘Smells Like Teen Spirit’을 시작하기 전에는 보스턴(Boston)의 ‘More Than a Feeling’을 장난스럽게 연주하며 자신들의 가장 유명한 노래마저 유쾌하게 소개했는데요. 이듬해 발표될 [In Utero]의 수록곡 ‘tourette's’를 처음 라이브로 선보이는가 하면, 아직 발매되지 않았던 ‘All Apologies’와 ‘Dumb’도 들려주었습니다. [Nevermind]로 세계를 뒤흔든 밴드가 이미 다음 음악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이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의외로 연주가 아닌, 커트 코베인의 짧은 부탁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며칠 전 태어난 딸과 아내 코트니 러브에게 ‘All Apologies’를 바치며, 자신을 둘러싼 비난으로 힘들어하던 아내를 위해 관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수많은 관객이 한목소리로 외쳤죠. “Courtney, we love you!”
공연의 시작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을 조롱했던 그가, 이번에는 그 소문 속에서 상처받은 가족을 위해 관객들의 목소리를 빌린 것입니다.
너바나는 마지막 정식 연주곡 ‘Territorial Pissings’와 이어진 짧은 미국 국가 연주를 끝으로 무대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이날 공연은 훗날 너바나의 마지막 영국 공연으로 남게 됩니다. 1993년 [In Utero]가 발표되고, 이듬해인 1994년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밴드의 역사도 막을 내렸기 때문인데요. 2009년에는 당시의 공연이 [Live at Reading]이라는 공식 라이브 음반과 영상으로 발매되며 다시 한번 세상에 소개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전성기의 너바나를 만날 수 있는 공연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커트 코베인의 기묘한 유머를 엿볼 수 있는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대 위에서 벌어진 하나의 장난이 30년이 넘도록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그 장난이 끝난 뒤 시작된 음악은 여전히 놀라울 만큼 생생합니다. 어쩌면 좋은 라이브 공연이 가진 매력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요.
l Photo. Boby Whitt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