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은 온데간데없이 지나가고, 아직 영하의 추위를 마주하진 않았지만 겨울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은 하루하루 실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렇듯 겨울이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차가운 공기와 하얗게 내리는 눈, 그리고 문득 생각나는 누군가의 얼굴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겨울 러브송으로 자리 잡은 백 넘버(back number)의 ‘Heroine(ヒロイン)’ 역시 그런 노래 중 하나인데요.
국내에서도 가수 성시경이 일본 방송에서 이 곡을 부른 무대가 화제를 모으며, 한국 음악 팬들의 관심을 끌었었죠. 그런데 이토록 낭만적인 겨울 노래의 시작이 사실은 ‘전자레인지’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back number IG
이야기는 백 넘버의 보컬이자 작사·작곡을 담당하는 시미즈 이요리(清水依与吏, Iyori Shimizu, 이하 시미즈)가 차 안에서 흥얼거리던 하나의 멜로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훗날 ‘Heroine’의 후렴구가 되는 멜로디였지만, 당시에는 눈도, 겨울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곡의 초기 제목은 ‘전자레인지(電子レンジ)’였고, 가사에는 전자레인지가 고장 났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죠.
이 비화는 2026년 2월 일본 TBS 방송에 출연한 시미즈가 당시의 가사를 직접 불러 보이며 다시 알려졌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시미즈 본인조차 처음에는 이 곡을 꽤 수수한 노래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다른 멤버들은 멜로디의 가능성을 알아봤다고 하죠.

©JR SKISKI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 노래는 일본의 겨울 광고 캠페인 ‘JR SKISKI’를 만나 전혀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광고와의 협업을 계기로 시미즈는 기존의 가사를 눈을 주제로 다시 썼고, 전자레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겨울을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에 미스터 칠드런(Mr.Children) 등 수많은 일본 아티스트의 음악을 만들어 온 프로듀서 코바야시 타케시(小林武史, Takeshi Kobayashi)가 합류하면서 곡은 더욱 완성도를 높여 갔습니다. 시미즈가 오래전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어 했던 프로듀서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죠.
2014년 12월, 배우 히로세 스즈(広瀬すず, Suzu Hirose)가 등장하는 JR SKISKI 광고를 통해 노래가 소개됐고, 이듬해 1월 21일 ‘Heroine’은 백 넘버의 열한 번째 싱글로 정식 발매됩니다. 이후 곡은 밴드의 대표곡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많은 이들에게 겨울이면 떠오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도 재미있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눈이 흩날리는 산장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상이지만, 당시 현장에는 실제로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제작진은 인공 눈을 활용해 겨울 풍경을 완성했고, 시미즈 역시 창밖으로 눈이 흩날리는 장면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합니다.

©back number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고장 난 전자레인지에 관한 노래였지만, 결국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겨울의 사랑 노래가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Heroine’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요? 거창한 사랑의 약속보다, 눈이 내리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평범하고도 솔직한 감정이 이 노래를 특별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l Photo. back number, JR SKI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