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덧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가을,
뜨거웠던 여름이 물러나고 나니 길어진 그림자가 발끝에 머무는
9월입니다.
유독 높고 맑아진 하늘을 괜히 고개를 들어 오래 바라보게 되듯,
이번 달에도 에디터들의 귀와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아둔
앨범들이 있었는데요.
잠시 멈춰 선 시간 속에서 우릴 다른 풍경으로 이끌고,
때로는 익숙한 일상마저도 새로운 경험으로 비추는 9월의 음악들을
함께 살펴볼까요?
소멸을 직시하는 이들의 언어
Geese - [Getting Killed]

©Mark Sommerfeld / Kyle Berger / Phil Gibson
I’m getting killed by a prеtty good life
나는 꽤 괜찮은 삶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네
인간은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사실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행하며 살아간다. 이는 때로 통제할 수 없는 불안과 스트레스로부터 비롯된 일탈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편안하고 평화로운 삶에 안주하려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를 아티스트의 관점에 대입해 보자.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아티스트가 이미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르의 질서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것은 일종의 반사회적 행위이자 삶의 규범을 거스르는 선택일 수 있다. 그렇기에 과거 ‘포스트 펑크’라는 이름 아래 잠시 주목받던 밴드들이 결국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자신들의 색을 잃고 상업적인 길을 택하는 것이 필자에게는 아쉬움의 대상일지언정, 결코 비난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경계 위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밴드가 기스(Geese)다. 고등학생 시절 결성되어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성장한 이 밴드의 매력은 역시나 ‘낯섦’에 있었다. 전작 [3D Country]는 환각제를 삼킨 카우보이가 사막을 헤매는 이야기를 얼터너티브 컨트리로 풀어냈고, 프론트맨 캐머런 윈터(Cameron Winter)의 솔로 앨범은 [Heavy Metal]이라는 이름 아래 절제된 흐름이라는 신선함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밴드의 다음 스텝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스는 결국 많은 포스트 펑크 밴드가 맞닥뜨리는 숙제를 보기 좋게 넘어섰다. 삶을 초월한 초인적 모습을 보여줬다는 뜻이 아니라, 앨범의 제목 [Getting Killed]에서 드러나듯 ‘죽음’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사실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자기 인식으로 끌어올렸다는 의미다.
이번 앨범에서 기스가 보여주는 힘은 운명에서 비롯된 혼돈을 음악적으로 재현하면서도 그것을 쉽게 봉합하거나 해소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곡들은 뚜렷한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고 파편화된 채 충돌하며, 순간적인 폭발과 불협 속에서 오히려 음악의 정체성을 세운다. 뉴욕 포스트 펑크의 날 선 에너지, 2000년대 초반 개러지 록의 거친 리프, 그리고 실험적 사이키델릭 요소가 교차하는 가운데, 10일 만에 녹음된 이 앨범은 고도로 짜인 프로덕션보다 스튜디오의 호흡과 즉흥적 충동을 그대로 담아낸다.
그리고 바로 그 불안정한 지점에서 밴드는 자신들만의 언어를 획득한 것이다.

©Lewis Evans
죽음은 절대 피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기스는 끝없이 소리를 쌓고 무너뜨리는 반복 속에서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포스트 펑크라는 이름 아래 단순한 장르 실험도, 신인 밴드의 객기도 아닌, 현재 록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치열한 자기 인식의 기록인 것이다.
🎧 추천곡: ‘Trinidad’, ‘Getting Killed’, ‘Bow Down’
✒️ Editor Meddlee
소멸을 관찰하는 이들의 언어
Wednesday - [Bleeds]

©Kamila Mlynarczyk Woodedwoods
You said, "I never seen you in my God given life"
당신은 하나님이 주신 당신의 삶에서 날 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밴드는 기스뿐만이 아니었다. 웬즈데이(Wednesday)의 새 앨범 [Bleeds] 역시 그 흐름에 나란히 서 있다. 이들은 이미 전작 [Rat Saw God]에서 노스캐롤라이나라는 지역적 맥락과 날카로운 서사를 자신들의 언어로 엮어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Bleeds]는 단순한 연장선이 아니다. 밴드는 이번 작품에서 인물들을 보다 세밀하게 불러내고, 곡마다 각자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며, 하나의 파편화된 서사가 아니라 다층적인 정서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
앨범을 관통하는 핵심 감정은 ‘상실’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상실은 추상적인 비애에 머물지 않는다. 각 트랙은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 목소리를 지닌 캐릭터들을 불러내며 그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호흡하게 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보컬 칼리 하츠먼(Karly Hartzman)의 가사가 빛을 발한다.
그의 가사는 문학 작품의 인용구처럼 날카롭지만, 동시에 일상의 대화처럼 친근하다. 친구에게서 들은 강둑에 떠밀려온 시체의 소문을 노래하거나, 아들을 살해한 전직 변호사의 가정을 관찰하며 공포와 체념을 그려내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서사는 곧 장르적 실험으로 확장된다. 포크의 잔잔한 선율, 개러지 록의 거친 리프, 노이즈 팝의 불안함과 서던 록의 느슨한 그루브가 서로 교차하며 청자를 끊임없이 다른 장면으로 끌어들인다. 덕분에 청자는 긴장과 해소, 공포와 평온이 교차하는 이야기 속을 오가며 몰입하게 된다.
결국 각 트랙이 개별 인물들의 진실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앨범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유기적으로 수렴하는 이유가 이와 같다. 마치 공포 영화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긴장감이 서사를 지탱하는 것처럼, 불안정함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름이 완성된다.
그리고 앨범은 반복되는 고통과 감정의 소용돌이 끝에서 ‘Gary’s II’로 막을 내린다. 과거 밴드와 가까웠지만 현재는 유명을 달리한 인물을 다시 불러내며, 웬즈데이는 상실을 단순한 종결이 아닌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일부로 만들어버린다.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듯, 상실 또한 삶의 불가피한 일부라는 자각이다.

©James Potter
따라서 [Bleeds]는 “존재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웬즈데이의 응답처럼 들린다. 그것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해답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의 흔들리고 상처 난 목소리로 채워진 기록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 속, 웬즈데이는 타인의 이야기로부터 가장 자기다운 목소리를 발견했다.
🎧 추천곡: ‘Wound Up Here(By Holdin On)’, ‘Elderberry Wine, ‘Gary’s II’
✒️ Editor Meddlee
Blood Orange - [Essex Honey]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Johny Pitts
‘슬픔은 매우 복잡하며, 그 안에는 백만 가지 감정과 음영이 있다.’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라는 강렬한 예명으로 활동하는 데브 하인즈(Dev Hynes)는 2023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오랜 공백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약 2년 만에 발매한 복귀작 [Essex Honey], 그의 내면에는 어떠한 다짐이 들어선걸까? 블러드 오렌지는 무엇보다 사색적이고 고요한 성찰이 담긴 앨범으로 우리의 곁을 찾았다.
첫 트랙을 재생해 마지막 트랙에 다다르기까지 [Essex Honey]는 유난히 튀는 곡이랄게 없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부드럽게 연결되는 음악들. 그 속에는 블러드 오렌지가 겪은 슬픔의 다양한 음영이 그려져있다. 불협 화음처럼 얽혀있는 사운드 위에 얹어진 진솔한 가삿말을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안개 속처럼 흐릿하다.
첫 선공개 싱글로 발매한 ‘The Field’는 앨범의 핵심 주제인 ‘죽음’, ‘자연’, ‘휴식’을 관통한다. 두루티 칼럼(Durutti Column)의 ‘Sing to Me’를 샘플링한 이 트랙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느껴진다.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자연에 그저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법. 블러드 오렌지는 푸른 들판을 누비며, 세상의 떠난 이의 안녕을 빌어준다.
시골은 블러드 오렌지에게 본능적인 휴식의 공간이다. 에식스(Essex)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푸른 들판은 익숙한 풍경이자 돌아가고 싶은 회귀의 공간일 터. ‘나를 시골로 데려가줘’라는 ‘Countryside’의 가삿말에서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평화를 찾고자하는 그의 소망이 담겨있다.
결국 [Essex Honey]는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상실감 그것을 딛고 다시 살아가는 한 인간의 기록. 블러드 오렌지는 애써 감정을 극대화하지도,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고요한 들판같은 음악으로 청자를 감싸 안을 뿐.
🎧 추천곡 : ‘The Field’, ‘Vivid Light’, ‘The Last of England’
✒️ Editor Ally
l Photo. Edouard Plongeon / OK McCausland / Brandon McC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