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데뷔 앨범 하나로 단숨에 세계적인 록스타가 된 밴드가 있습니다.
‘Undone – The Sweater Song’, ‘Buddy Holly’, ‘Say It Ain’t So’가 연이어 사랑받으며 위저(Weezer)는 순식간에 미국 록 신의 중심으로 떠올랐는데요. 하지만 이 성공이 프론트맨 리버스 쿼모(Rivers Cuomo)에게 가져다준 것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음반 계약을 따내고 MTV에 출연하며 라디오에서 자신의 음악이 흘러나오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모든 것을 이루고 나니 여전히 외롭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감정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결국 리버스 쿼모는 뜻밖의 선택을 합니다. 1995년, 이미 성공한 록스타였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해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하는데요. 한창 커리어를 쌓아야 할 시기에 무대가 아닌 강의실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로 위저의 두 번째 앨범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죠.

©Weezer
리버스 쿼모가 처음 구상했던 두 번째 앨범은 [Songs from the Black Hole]이라는 SF 록 오페라 프로젝트였습니다. 여러 캐릭터와 이야기를 하나의 앨범으로 엮으려 했지만, 하버드 생활과 밴드 활동 사이에서 프로젝트는 점차 방향을 잃었고 결국 완성되지 못했죠.
대신 그가 실제로 겪고 있던 감정들이 새로운 음악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버드에서 느낀 고립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사랑과 성적 욕망, 성공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외로움이 그대로 곡이 되기 시작한 것인데요. 리버스 쿼모는 당시 인터뷰에서 하버드 생활이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다시 음악을 쓰게 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Weezer / 歌川広重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Pinkerton]인데요.
1994년의 [Weezer], 이른바 [Blue Album]이 밝고 유쾌한 멜로디와 장난기 가득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다면 [Pinkerton]은 정반대였습니다. ‘Tired of Sex’에서는 반복되는 관계 뒤에 남은 공허함을, ‘The Good Life’에서는 평범한 삶과 방탕한 삶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Pink Triangle’에서는 사랑과 오해를, ‘Across the Sea’에서는 일본에 살던 한 팬에게 받은 편지에서 시작된 강렬한 욕망을 노래했죠.
문제는 그 솔직함의 수위였습니다. 성공한 록스타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외로움과 욕망, 집착과 자기혐오처럼 감추고 싶은 감정까지 그대로 꺼내놓았기 때문인데요. 지금 들어도 불편하게 느껴질 만한 가사와 시선도 분명 존재하고, 실제로 이 앨범은 이후 재평가 과정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둘러싼 논쟁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사운드 역시 [Blue Album]과 완전히 달라졌는데요. 데뷔 앨범에서 프로듀서 릭 오케이식(Ric Ocasek)과 함께했던 위저는 이번에는 직접 프로듀싱에 나섰고, 그 결과 훨씬 거칠고 날것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리버스 쿼모가 하버드에 재학 중이었던 만큼 녹음은 한 번에 진행되지 않았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졌죠.
그렇게 완성된 [Pinkerton]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팝 앨범이라기보다 당시 리버스 쿼모의 불안정한 상태를 그대로 녹음해놓은 듯한 작품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1996년의 음악 시장은 이 앨범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죠.
1996년 9월 24일, 위저의 두 번째 정규 앨범 [Pinkerton]이 발매됩니다.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200(Billboard 200)에서 19위까지 올랐지만, 전작 [Blue Album]의 엄청난 성공 이후 나온 후속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죠. 평단의 반응 역시 냉담했습니다.

©Rivers Cuomo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앨범이 리버스 쿼모에게 굉장히 개인적인 작품이었다는 것.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음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돌아온 것은 혹평이었고, 그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후 한동안 아파트의 창문을 가리고 방 안에 머무는 등 외부와 거리를 둔 생활을 이어갔으며, 위저의 활동 역시 중단되고 말았죠.
하지만 공교롭게도 음악 씬은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팝펑크와 이모 음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외로움과 불안, 사랑과 실패, 자기혐오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음악의 중심에 놓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인데요.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의 ‘The Middle’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고, 이후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파라모어(Paramore) 등이 등장하며 이러한 정서는 하나의 거대한 음악 문화로 확장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터넷을 중심으로 [Pinkerton]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앨범은 여전히 너무나 개인적이고, 너무나 어둡고, 너무나 찌질했지만 달라진 것은 이 앨범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Pinkerton]에 대한 재평가 역시 본격화되었는데요. 피치포크(Pitchfork)는 이후 리뷰에서 발매 초기의 혹평과 시간이 지나 형성된 컬트적인 팬층을 짚으며, 2000년대 이모 음악의 성장과 함께 [Pinkerton]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됐다고 평가하며 10점 만점을 부여하기도 했죠.
결국 처음에는 단점처럼 보였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 됐습니다. 거칠고 날것 같은 사운드, 지나치게 솔직한 가사, 그리고 성공한 록스타조차 숨기고 싶었을 법한 미성숙하고 불안한 감정까지.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Pinkerton]은 실패작에서 컬트 클래식으로, 다시 위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명반’이라고 부르는 것은 처음부터 완벽했던 앨범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30년 동안 [Pinkerton]은 그대로였지만, 달라진 것은 이 앨범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었죠. 한 시대가 이해하지 못했던 음악이 시간이 흐른 뒤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만난 것입니다.
1996년의 실패작은 어떻게 30년 뒤 명반이 되었을까요? 위저와 리버스 쿼모, 그리고 [Pinkerton]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통해 그 시간을 직접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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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Photo. Weezer / 歌川広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