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들어가며
최근 'Babydoll'의 역주행과 함께 도미닉 파이크(Dominic Fike, 이하 도미닉)의 인기가 다시 한번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는 10월 30일(현지 시각)에는 세 번째 정규 앨범 [How To Quit Smoking]의 발매까지 앞두고 있으니, 그야말로 또 한 번의 전성기가 찾아온 듯한데요.

©Jiro Konami
오랜 시간 그의 음악을 좋아해 온 에디터의 입장에서 도미닉은 참으로 신기한 아티스트입니다. 그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정말 하늘이 돕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 같은 일들이 연달아 벌졌기 때문이죠. 가택연금 중 만든 데모로 수백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고, 세계적인 팝스타로 성장했으며, 이제는 8년 전 발표한 노래가 다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단순히 운이 좋았다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음악적 재능은 물론, 기존 음악 산업의 관습을 비껴가는 특유의 고집과 태도, 때로는 무모해 보일 만큼 예측 불가능한 행보 역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유일 테니까요.

©Bethany Vargas
그래서 오늘은 세 번째 정규 앨범의 발매를 앞두고 도미닉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유얼라이브에서도 그동안 그의 음악과 작품들을 여러 차례 소개해 드렸지만, 이번에는 그가 걸어온 파란만장한 시간을 처음부터 되짚어 보려는 것인데요.
천재인지 문제아인지,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그의 재능 덕분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팝스타. 지금부터 도미닉 파이크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1. 감옥에서 시작된 수백만 달러의 성공 신화

©Joey Hadden/Business Insider
도미닉 파이크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Naples)로 돌아가야 합니다. 1995년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장했는데요. 부모 모두 헤로인 중독 문제를 겪었고, 아버지는 그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함께하지 않았으며, 어머니 역시 약물 문제로 여러 차례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도미닉과 형제들은 친척이나 지인의 집을 오가며 생활해야 했고, 때로는 어린 나이에 서로를 돌봐야 했죠.
그럼에도 음악만큼은 어린 도미닉에게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어린 시절 잠시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기타 코드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유튜브를 통해 기타 연주를 익혀나갔는데요. 이후 잭 존슨(Jack Johnson),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블링크-182(Blink-182) 등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역 힙합 크루와 어울리며 랩을 만들고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음악을 올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별개로 그의 생활은 여전히 불안정했습니다. 도미닉 역시 성장하면서 술과 약물에 깊이 빠져들었고, 이후 인터뷰에서는 무엇이든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는 자신의 성향에 관해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2016년,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동생 알렉스(Alex)를 위해 마련한 파티에 경찰이 출동했고, 도미닉은 경찰관이 동생을 향해 총을 꺼냈다고 생각해 해당 경찰관을 넘어뜨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 폭행 혐의를 받게 된 그는 유죄를 인정하고 가택연금에 처해졌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그의 음악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었던 도미닉은 친구의 집에 머무르며 음악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이전까지 만들던 힙합 음악과는 다른 사운드를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곡 중 하나가 바로 훗날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는 '3 Nights'였습니다.
하지만 가택연금 중에도 약물 사용을 이어갔던 그는 코카인 사용으로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고, 결국 보호관찰 조건을 위반해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훗날 그는 완성된 데모를 들으며 크게 들떠 있던 당시, 갑작스럽게 진행된 약물 검사에 적발돼 수감됐다고 회상하기도 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바로 그 시기에 음악 업계에서는 그의 이름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가택연금 중 만들어낸 데모들이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관심을 얻기 시작했고, 여러 대형 레이블이 아직 제대로 된 활동조차 시작하지 않은 이 청년을 영입하기 위해 경쟁에 뛰어든 것입니다. 심지어 도미닉은 수감 중 면회실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레이블 관계자들과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결국 2018년 출소한 도미닉은 치열한 경쟁 끝에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당시 언론에 알려진 계약 규모는 약 300만~400만 달러. 정식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도 발표하기 전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계약을 따낸 것입니다.

©Dominic Fike / Jessica Fike-McCann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이 계약을 통해 얻은 돈을 사용한 방식이었습니다. 도미닉은 계약금을 받은 뒤 약물 관련 혐의로 수감된 어머니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수감 생활을 지켜봐야 했던 청년이 이제는 자신의 음악으로 벌어들인 돈을 가족을 돕는 데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청년이 하루아침에 거액의 계약금을 손에 쥐고 스타가 될 기회를 얻었다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음악을 충분히 보여주기도 전에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기대까지 떠안게 됐다는 점에서, 이 성공은 새로운 부담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2. 너무 일찍 스타가 되어버린 남자

©Dominic Fike
아까 본 머그샷이 아트워크로 활용되었다.
2018년 10월 16일, 도미닉은 데뷔 EP [Don't Forget About Me, Demos]를 컬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정식 발매합니다. 총 여섯 곡, 약 14분이라는 짧은 분량의 작품이었지만, 특히 수록곡 '3 Nights'가 빠르게 인기를 얻으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도미닉의 음악이 처음부터 하나의 장르로 설명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입니다. 기타를 중심으로 한 경쾌한 사운드에 힙합 특유의 리듬감과 팝 음악의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결합했고, 래퍼와 싱어송라이터, 인디 록 뮤지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죠. 이러한 독특한 매력은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뉴요커(The New Yorker), 페이더(The FADER) 등 주요 매체의 관심까지 끌어냈습니다.
하지만 모든 관심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빠르고 극적이었던 그의 성공은 또 다른 논쟁을 불러왔죠.
바로 '인더스트리 플랜트(Industry Plant)' 논란이었습니다. 음악 산업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스타가 아니냐는 의혹이었는데요. 정식 데뷔작을 발표하기도 전에 수백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고, 대형 레이블의 지원 아래 빠르게 주목받았다는 사실이 이러한 시선의 배경이 됐습니다.

©mattyballz YouTube
실제로 롤링스톤(Rolling Stone)은 2020년 그의 첫 정규 앨범을 평가하면서 급격한 성공 과정과 '인더스트리 플랜트'라는 시선을 함께 다뤘습니다. 음악적 매력을 인정하면서도, 음악 산업이 그를 차세대 스타로 만들어내려는 듯한 분위기를 지적한 것이죠.
그리고 2020년 7월 31일, 마침내 첫 번째 정규 앨범 [What Could Possibly Go Wrong]이 발매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잘못될 수 있겠어?'라는 제목부터 어딘가 의미심장한 이 작품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이후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본격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앨범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도미닉은 이후 GQ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심각한 약물 문제와 가족 문제, 앨범 제작에 대한 압박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는데요. 2021년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앨범이 산만하고 단편적인 작품이 된 이유에 대해 당시 자신의 상태가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정규 앨범은 다양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재능은 여전히 주목받았지만, 대형 레이블이 거액을 투자한 신인의 첫 정규 앨범이라는 기대를 완전히 충족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뒤따랐죠. 누군가에게 그는 미래의 팝 음악을 이끌 천재였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음악 산업이 지나치게 큰 기대를 걸었던 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평가가 엇갈리던 도미닉의 음악을 높이 평가한 사람 중에는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3. 폴 매카트니가 선택한 문제적 신인

©Paul McCartney / Dominic Fike / Pandora
바로 비틀즈(The Beatles)의 전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였습니다.
2021년, 도미닉은 폴 매카트니의 앨범 [McCartney III]를 여러 아티스트가 재해석하는 프로젝트 [McCartney III Imagined]에 참여하게 됩니다. 폴 매카트니가 직접 참여 아티스트들을 선정한 프로젝트였는데요. 벡(Beck),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피비 브리저스(Phoebe Bridgers),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등 쟁쟁한 음악가들 사이에 도미닉 역시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미닉이 재해석한 'The Kiss of Venus'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선공개곡으로 발표됐다는 사실입니다. 원곡은 폴 매카트니의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잔잔한 발라드였지만, 도미닉은 이를 리듬감 넘치는 R&B 스타일로 바꿔놓았습니다. 심지어 원곡에 없던 가사까지 추가하며 자신만의 음악으로 재탄생시켰죠.
이러한 시도는 원곡자인 폴 매카트니마저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2021년 4월 인터뷰에서 여러 아티스트의 재해석 중 가장 예상 밖이었던 작업으로 도미닉의 버전을 꼽았는데요. 특히 새로운 가사를 추가할 정도로 자유롭게 곡을 변형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엄격한 지침이 있었다면 허용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시도였지만 자신은 그 결과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뮤직비디오 역시 훌륭했다고 평가했죠.
데뷔 당시부터 음악 산업이 만들어낸 스타라는 의심을 받았던 청년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송라이터 중 한 명에게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폴 매카트니가 높이 평가한 부분이 바로 도미닉 특유의 자유분방한 태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완성된 명곡을 정해진 방식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의 음악적 감각에 따라 과감하게 바꿔놓은 것이죠.

©Paul McCartney
물론 폴 매카트니의 칭찬이 그를 둘러싼 모든 논쟁의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도미닉의 음악이 단순한 화제성이나 레이블의 지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음악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4. 성공의 정점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삶

©HBO / A24
2022년, 도미닉은 HBO의 인기 드라마 <유포리아(Euphoria)> 시즌 2에 엘리엇(Elliot) 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커리어까지 시작합니다. 젠데이아(Zendaya)가 연기하는 루(Rue), 헌터 샤퍼(Hunter Schafer)가 연기하는 줄스(Jules)와 얽히는 주요 인물로 등장하면서, 음악 팬들에게만 익숙했던 그의 얼굴은 드라마 시청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졌죠.
극 중 엘리엇은 약물 문제를 겪는 등장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청년입니다. 도미닉은 실제 뮤지션이라는 자신의 특성을 살려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장면까지 선보였는데요. 그러나 카메라 밖에서 그가 마주하고 있던 현실은 드라마 못지않게 복잡했습니다.
그는 이후 인터뷰에서 <유포리아> 촬영 당시 실제로 약물 중독 문제를 겪고 있었으며, 촬영 중에도 약물의 영향을 받은 상태였던 적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작품의 제작자인 샘 레빈슨(Sam Levinson)은 그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했지만, 당시의 어려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죠. 중독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정작 자신 역시 같은 문제와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2023년 7월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Sunburn]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https://www.instagram.com/p/DN2S4AZwEqL/
앨범 제목인 'Sunburn'은 햇볕에 탄 피부를 의미합니다. 따뜻하고 밝은 플로리다의 풍경을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그 햇빛이 남긴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죠. 도미닉은 이번 작품에서 고향 플로리다와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과의 관계, 갑작스러운 성공이 가져온 변화 등을 음악으로 풀어냈습니다.
특히 'Dark'는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곡입니다. 가족과의 관계, 유명해진 이후의 삶, 자신이 경험한 어려움을 솔직하게 노래하며 이전까지 보여줬던 자유분방한 팝스타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드러냈죠.
누군가는 그를 천재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문제아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Sunburn]에서 도미닉이 들려준 것은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불완전한 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5. 음악 산업의 공식을 거부하기 시작하다

©Dominic Fike
그런 도미닉이 2024년 공개한 [14 Minutes]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작품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약 14분이라는 짧은 분량에 여덟 곡을 담은 프로젝트였는데요.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음악을 세상에 공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024년 4월 23일, 도미닉은 미국 웨스트할리우드의 한 창고에서 깜짝 감상회를 개최했습니다. 대대적인 사전 홍보 없이 팬들을 모았고, 현장에 세워진 대형 트럭에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음악을 처음 공개했죠. 영상에는 도미닉이 길을 따라 걷고 달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으며, 약 14분 동안 여덟 곡의 음악이 이어졌습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부터 일반적인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팬들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14분짜리 영상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10인치 바이닐의 사전 예약을 받았습니다. 이후에야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죠.
그런데 이처럼 독특한 공개 방식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당시 도미닉이 직접 밝힌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감상회에 모인 팬들에게 자신이 계속 듣고 싶고, 도저히 놓아둘 수 없었던 여덟 곡을 모았다고 설명했는데요. 이어 앨범을 발표한 뒤 다음 작품까지 3~5년씩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렇게 완성한 앨범은 반드시 대단한 걸작이어야 한다는 음악 산업의 관행과 압박에 지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결국 그는 완벽한 앨범을 만들기 위해 몇 년씩 기다리는 대신,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팬들에게 들려주기로 한 것입니다. 거창한 콘셉트나 긴 홍보 일정, 모든 곡을 하나의 완벽한 작품으로 묶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잠시 벗어난 것이죠.

©Dominic Fike
이러한 행보는 이듬해 발표한 [Rocket]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2025년 8월, 도미닉은 새로운 믹스테이프 [Rocket]의 발매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일반적인 정규 앨범의 홍보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는데요. 8월 22일 발매를 불과 일주일가량 앞두고 소식을 전했으며, 인스타그램에서는 직접 'Rocket is not an album'이라는 문구를 남겨 정규 앨범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Dominic Fike
홍보 방식도 독특했습니다. 공식 웹사이트를 [Rocket]의 분위기에 맞춰 새롭게 꾸미고, 'Dominic Fike Is Your Interactive Buddy'라는 이름의 인터랙티브 게임까지 공개했죠. 여기에 'All Hands on Deck', 'Aftermath', 'Smile' 등 세 곡을 한꺼번에 선공개하며 짧고 집중적인 발매 일정을 이어갔습니다.
그렇다면 도미닉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 답은 [Rocket] 발매 이후 진행한 쿠 드 맹(Coup de Main)과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20년, 40년 동안 팬들과 함께 성장하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음악을 발표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밝혔는데요. 모든 작품이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는 없으며, 어떤 음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음악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이는 도미닉이 단순히 특이한 마케팅을 시도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 번의 성공이나 실패에 자신의 커리어를 걸기보다, 오랜 시간 다양한 음악을 만들며 팬들과 함께 성장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던 것이죠.
물론 이러한 시도가 음악 산업과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Rocket] 역시 컬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발매됐으니까요. 다만 그는 대형 레이블의 시스템 안에서도 기존의 발매 주기와 작품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6. 천재에게도 평범한 삶이 필요할까?

©Dominic Fike YouTube
그런데 도미닉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음악을 대하는 태도만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던 그가, 정작 개인적인 삶에서는 이전과 다른 종류의 책임을 마주하게 됐기 때문인데요.
2025년 8월 3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롤라팔루자(Lollapalooza)>에서는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뜻밖이면서도 따뜻한 장면 중 하나가 펼쳐졌습니다.
공연 막바지, 도미닉은 자신의 어린 아들 로켓(Rocket)을 무대에 데리고 등장했습니다. 소음 차단용 헤드폰을 착용한 아들과 함께 관객들 앞에서 시간을 보냈고, 공연을 마친 뒤에는 아이를 품에 안고 무대 뒤로 걸어갔죠.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에서 자유분방한 퍼포먼스를 펼치던 뮤지션이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무대 위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2026년 4월, 도미닉은 음악 매체 피죤스 앤 플레인스(Pigeons & Planes)와의 인터뷰에서 아들 로켓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아들이 안정적이고 절제된 생활을 이어가려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고 밝혔는데요. 아들이 성장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위해 음악을 쓰고 싶다는 바람까지 털어놓았습니다.

©Dominic Fike
어린 시절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경험하기 어려웠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러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때 약물 문제로 교도소에 수감됐고, 성공 이후에도 중독 문제와 싸워야 했던 도미닉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변화죠.
물론 아버지가 됐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겪어온 모든 어려움이 해결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에 관해서는 이전보다 분명한 목표를 갖게 된 듯합니다.

©Dominic Fike
여기서 그의 이야기는 묘한 역설을 만들어냅니다.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려 했던 도미닉이 이제는 오히려 안정적인 생활과 평범한 가정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자유는 아무런 제약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지켜나가는 자유일지도 모릅니다.
7. 8년 전의 노래가 다시 세상을 뒤흔들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이어지는 동안, 그의 음악을 둘러싼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018년 데뷔 EP [Don't Forget About Me, Demos]에 수록됐던 'Babydoll'이 2026년 틱톡(TikTok)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입니다. 짧은 영상과 함께 사용되며 새로운 세대의 음악 팬들에게 발견된 이 곡은 스트리밍 플랫폼을 넘어 라디오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죠.
이러한 인기는 실제 차트 성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Babydoll'은 2026년 2월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에 처음 진입했고, 이후 꾸준히 순위를 끌어올리며 마침내 10월 24일 자 차트에서 10위를 기록했는데요. 도미닉에게 생애 첫 빌보드 핫 100 톱 10 히트곡을 안겨준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Babydoll'만 다시 주목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025년 발표한 'White Keys' 역시 2026년 들어 인기를 얻으며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Official Singles Chart)에서 톱 10에 진입하기도 했죠.
도미닉에게는 참으로 묘한 상황이 펼쳐진 셈입니다. 그는 이미 두 장의 정규 앨범과 여러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데뷔 초기와는 다른 음악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중은 바로 그 시점에 과거의 도미닉을 다시 발견한 것이죠.

©Daniel
어쩌면 이는 오늘날 음악 산업의 예측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마케팅 전략을 준비하고 수많은 자원을 투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히트곡이 탄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이미 발표된 지 수년이 지난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도 하죠.
데뷔 당시부터 음악 산업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도미닉이, 이제는 그 산업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음악 산업의 관념을 깨부수는 새로운 실험

©Dominic Fike
이처럼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도미닉은 또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는 10월 30일(현지 시각), 세 번째 정규 앨범 [How To Quit Smoking]을 발표할 예정인데요. 2023년 [Sunburn] 이후 약 3년 만에 선보이는 정규 앨범으로, 특히 주목할 점은 음악이 만들어지고 세상에 소개되는 방식입니다.

©Dominic Fike
도미닉은 북미에서 진행한 <Comedy Tragedy Parody> 투어를 돌면서 동시에 새로운 앨범을 제작했습니다. 공연과 이동으로 가득한 일정 속에서도 음악 작업을 이어갔고, 투어 중 방문한 도시에서 뮤직비디오까지 촬영했죠.
지난 8월 공개한 'Wallflower'를 시작으로, 9월에는 에마 오지어(Emma Ogier)와 가브리엘 자코비(Gabriel Jacoby)가 참여한 'Small Town'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10월에는 'Pangea'를 선보이며 새로운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는데요.
특히 'Pangea'의 뮤직비디오는 밴쿠버를 방문했을 당시 수상비행기를 타고 도시 상공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와 리드 베넷(Reed Bennett)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투어 중 경험한 장소 자체를 작품의 배경으로 활용한 것이죠.
여기에 자신만의 미디어 플랫폼까지 선보였습니다. 'Separate Street Network'라는 이름의 24시간 스트리밍 채널을 공식 웹사이트에 개설한 것인데요. 투어 중 촬영한 영상과 공연 관련 콘텐츠, 자체 제작 프로그램 등을 방송하며 음악뿐 아니라 공연과 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이야기들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Separate Street Network
이쯤 되면 이번 프로젝트 또한 단순한 앨범 발매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실험처럼 느껴지는데요.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모든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이러한 시도가 이러한 아티스트의 과거를 알고나면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음악 산업의 긴 발매 주기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던 [14 Minutes], 정규 앨범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던 [Rocket]을 거쳐, 이번에는 앨범이 완성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https://www.instagram.com/p/Devb82lRKhJ/
그는 처음부터 정해진 장르의 경계를 따르지 않았고, 이제는 음악을 발표하는 방식의 경계까지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9. 가장 자유롭고, 가장 불안정한 이 시대의 팝스타

©Jack Balaban
도미닉 파이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참으로 모순적인 장면들이 많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청년이 수백만 달러의 계약금을 손에 쥐었고, 음악 산업이 만들어낸 스타라는 의심을 받던 신인은 폴 매카트니에게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도 개인적인 삶에서는 여러 어려움과 마주해야 했지만, 이제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전과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죠.
어쩌면 도미닉이 흥미로운 아티스트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천재와 문제아, 성공과 실패, 자유와 책임이라는 단순한 구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거칠고 충동적이었으며, 때로는 놀라울 만큼 솔직하고 섬세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모습들은 그가 만들어온 음악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이제 그의 앞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How To Quit Smoking]. 우리말로 옮기면 '금연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입니다.
하지만 도미닉이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생각하면, 이 제목을 단순히 담배를 끊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어에서 'Smoking'은 담배뿐 아니라 대마초를 비롯한 약물을 피우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하니까요.
물론 아직 앨범 전체가 공개되지 않은 만큼, 이 제목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약물 문제를 경험했고, 자신 역시 오랫동안 중독과 싸워왔으며, 이제는 아버지가 되어 안정적인 삶을 꿈꾸고 있는 도미닉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그가 끊어내고 싶은 것은 단순히 담배일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중독과 습관, 혹은 과거의 삶 그 자체일까요?
누구보다 자유로운 음악을 만들어왔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그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던 아티스트. 어쩌면 이번 앨범은 도미닉 파이크가 지금껏 보여준 자유와는 또 다른 종류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천재인지 문제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팝스타. 하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보고 나니, 그 어떤 수식어보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과 음악을 이어가려는 한 사람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수많은 성공과 혼란을 지나 새로운 삶의 단계에 들어선 도미닉 파이크. 과연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l Photo. miranda mcdonald / Dominic F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