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리퓨즈드(Refused) 편에 이어,, 다시 한번 돌아온 록 역사 속 아이코닉한 순간을 되돌아보는 코너!!
(사실 저번 리퓨즈드 글 반응이 좋아서, 갑자기 시리즈화 시키고 코너 명도 없지만..)

©Shane Glackin
오늘의 주인공은 시대 저항의 아이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입니다.
매거진의 성격상 정치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절제하려고 하지만, 현대판 지미 헨드릭스라 불리는 톰 모렐로(Tom Morello)를 필두로 한 이 밴드의 음악성, 그리고 그들이 음악을 통해 던져온 메시지와 사회적 영향력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헌액과 수많은 매체의 평가가 증명하듯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대목인데요. 단순히 ‘정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두 번째 주인공으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우선 밴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1.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 / Woodstock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1991년 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되었습니다. 소꿉친구 사이였던 보컬 잭 데 라 로차(Zack de la Rocha)와 베이시스트 팀 커머퍼드(Tim Commerford)가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던 중, 이전 밴드 락 업(Lock Up) 해체 이후 새로운 자리를 찾고 있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에 더해 락 업 오디션에서 탈락했던 드러머 브래드 윌크(Brad Wilk)가 합류하며 현재의 라인업이 완성됩니다.
밴드명 ‘Rage Against The Machine’은 잭 데 라 로차가 과거 몸담았던 하드코어 펑크 밴드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시절의 곡 제목에서 차용한 것으로, 그 이름부터 이미 이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죠.
(캘리포니아와 하드코어 펑크.. 그 역사가 궁금하신 분들은 잠깐 여기를 한 번 보고 오셔도 좋습니다.😊)
©Rage Against The Machine
이들은 이후 정규 데뷔 앨범으로 이어지게 되는 동명의 데모 테이프 [Rage Against The Machine]를 제작해 활동하며 여러 레이블의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그중 밴드의 메시지와 방향성에 전폭적으로 동의한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와 계약하며 메이저 데뷔를 확정 짓게 됩니다.
그리고 1992년, 정규 1집 [Rage Against The Machine]이 세상에 공개되는데요.

©Rage Against The Machine
앨범의 초반 판매량은 비교적 저조했지만, 수록곡 ‘Killing In The Name’이 라디오를 통해 점차 퍼지기 시작하면서 앨범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합니다. 단 몇 줄의 반복적인 가사, 그리고 17번 포함되는 ‘Fxxk’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은 잭 데 라 로차의 분노에 찬 보컬과 결합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여기에 1993년 롤라팔루자(Lollapalooza) 무대가 결정타가 됩니다. 해당 무대 전 약 7만 5천 장 수준이던 판매량은 페스티벌 이후 연말까지 약 40만 장으로 급증합니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이후 발매한 정규 2집과 3집은 모두 빌보드 앨범 차트 200(Billboard 200) 1위에 오르며,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단숨에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됩니다.
2. Killing In The Name
자, 그러면 이제 이 곡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까요?
‘Killing In The Name’은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과 그 폭력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권력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한 곡입니다. 곡의 직접적인 영감은 1991년, 흑인 남성 로드니 킹(Rodney King)이 음주 운전 도주 체포 과정에서 4명의 경찰에게 과잉 폭행을 당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는데요.
1992년 진행된 재판에서 가해 경찰 3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 한 명이 재심 판결을 받은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 사건은 ‘LA 폭동’으로 이어졌습니다.

©Mark Downey / Corbis via Getty Images
(TMI를 덧붙이자면,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LA 한인 사회와도 깊게 연결되며 훗날 국내 힙합 씬의 레전드 타이거 JK가 탄생하는 계기 중 하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쯤 찾아보셔도 꽤 흥미로우실 겁니다.)
“Fxxk you, I won't do what you tell me!”
“X까, 네가 하라는 대로 안 해!”
공격 대상을 숨기지 않는 가사와 노골적인 표현은 이후 수많은 문화적 맥락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소비되기도 했는데요. 이와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힙합과 메탈을 결합한 랩 메탈 장르의 방향성을 결정지으며 수많은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Polyphonic YouTube
특히 그 강력한 저항의 메시지 때문에 이 곡은 2009년 크리스마스, 발매 17년 만에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Official Single Chart) 1위에 오르는 재밌는 해프닝을 만들기도 하였는데요.
당시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디 엑스 팩터> 우승자들이 매년 크리스마스 차트 1위를 독점하던 흐름에 반발한 밴드의 팬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와 정반대되는 ‘Killing In The Name’을 1위로 만들자는 움직임을 시작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Fox
처음엔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였지만, <디 엑스 팩터>의 프로듀서이자 심사위원인 사이먼 코웰(Simon Cowell)이 이를 두고 “쪼잔하다”고 발언하면서 그 불씨가 커지게 되는데요.
그렇게 해당 사건이 화제가 되자 BBC는 밴드를 초대해 생방송 인터뷰와 라이브를 요청했고, 공영방송인 만큼 문제 되는 가사는 생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뭐.. 결과는 예상가시죠?
곡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잭 데 라 로차는 카메라를 향해 중지 손가락을 들어 올린 채 가사를 그대로 외쳤고, 방송은 음악 송출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죠.
그렇게 엄청난 화제를 끌게 된 밴드는 이후 뮤즈(MUSE),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심지어 당해 <디 엑스 팩터> 우승자까지 지지를 보내며 결국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3. Pinkpop Festival

©Rage Against The Machine
그래서 오늘 최종적으로 소개드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아이코닉한 순간은 1993년 네덜란드 핑크팝 페스티벌(Pinkpop Festival) 무대인데요.
“They use force, to make you do, what the deciders, have decided you must do.”
“그놈들은 힘으로, 네가 움직이게 하지, 권력자들이 이미 정해둔, 네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을.”
무대 시작 전, 잭 데 라 로차가 던진 이 문장과 결의에 찬 눈빛은 아직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장면으로 회자되며, 이어지는 밴드의 분노와 에너지는 개인적으로 곡의 메세지를 가장 잘 담아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 긴 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그러면 이제 다시 위로 올라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을 확인해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