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을 사랑하게 된 순간들] 이전 글 보러가기
EP. 01 밴드를 끝낸 소음은 곧 미래가 되었다
EP. 02 X까, 네가 하라는 대로 안 해!
EP. 03 끝내 듣지 못한 성공, 그리고 30년 뒤 아들에게 이어진 이야기
[같이 보면 좋은 이야기]
여러분, 눈치채셨나요?!
©MBC <무한도전>
드디어 코너명이 정해졌습니다. (하하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묘하게 후련한 기분이군요.)
아무튼! 원래 준비해두었던 다음 주제를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이 아티스트를 먼저 소개해 보려 합니다.

©Alexa Viscius / Courtesy of Polyvinyl Records
바로 아메리칸 풋볼(American Football).
미드웨스트 이모를 대표하는 이 밴드가 오는 7월 28일, 커리어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데요!! (여담으로 이들의 영향을 받은 중국 밴드 차이니즈 풋볼(Chinese Football) 역시 약 8년 만에 내한 공연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모(Emo)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모가 가장 대중적으로 유행했던 2000년대의 이미지를 떠올리실 텐데요.
이 음악은 어떠신가요? 흔히 떠올리던 이미지와는 꽤 다른 느낌 아닌가요?
사실 이모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전 글들에서 소개 드렸던 하드코어 펑크 씬 속에서 이모라는 장르 역시 태동하였는데요. (이날을 위해 아껴두었다.(비장))
그래서 오늘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모’를 중심으로요.

©VWMusic
또 하지만! 들어가기 앞서 이모는 ‘장르’로 분류되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음악적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감정의 방향성, 태도, 그리고 문화적 성격을 반영하는 흐름에 가깝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앞서 들려드린 곡, 그리고 앞으로 소개할 곡들을 들어보시면 이걸 정말 하나의 장르로 묶을 수 있을까 싶으실 겁니다.)
1. 이모(Emo)? 그게 뭔데 이놈아
앞선 글에서 하드코어 펑크의 주요 근원지로 언급했던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D.C.

©Minor Threat
그리고 이번에는 줄곧 설명하던 캘리포니아를 잠시 떠나, 드디어 워싱턴 D.C.로 향해보겠습니다.
1980년대, 워싱턴 D.C.에도 수많은 하드코어 펑크와 포스트 하드코어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이 시기, 보컬 이안 맥케이(Ian MacKaye)가 이끌던 마이너 스레트(Minor Threat)라는 밴드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약 3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후 초기 이모 씬에 지대한 영향을 남기게 되는데요. 제가 리퓨즈드(Refused)를 소개하며 언급했던 *스트레이트 엣지(Straight Edge) 운동이 바로 이들의 데뷔 EP [Minor Threat] 수록곡 ‘Straight Edge’에서 이름을 따오며 하나의 운동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이트 엣지(Straight Edge): 하드코어 펑크의 하위 문화. 펑크 문화의 과도함에 반발하며 담배, 알코올, 약물 사용을 지양하는 라이프스타일이자 문화를 뜻한다.

©Bert Queiroz
그리고 1983년, 마이너 스레트가 해체된 바로 그 해. 라이츠 오프 스프링(Rites of Spring)이라는 새로운 밴드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기존 하드코어 밴드들과는 어딘가 다른 결을 보여주었는데요. 펑크 특유의 에너지는 유지하면서도, 정치적 메시지 대신 개인적인 감정과 관계의 균열, 내면의 불안,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우울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를 쏟아내듯 표현하는 보컬이 특징이었죠.
그들의 공연을 본 관객들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감정적으로 정화되는 경험을 했다고 전해지며, 이전까지의 하드코어 씬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반응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점점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던 당시 하드코어 펑크 씬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움직임을 ‘혁명의 여름’, 레볼루션 썸머(Revolution Summer)라고 불렀는데요. 마이너 스레트의 이안 맥케이 역시 이 흐름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밴드 엠브레이스(Embrace)를 결성하고 자기 탐색과 감정의 해방을 노래하기도 했죠.
그렇게 이 시기의 음악은 이전보다 템포가 느려지고, 멜로디와 감정 표현이 더욱 강조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일부 스킨헤드들이 공연장에서 폭력을 일으키는 등 긴장은 계속되었고, 이 움직임은 점차 사그라들게 되죠.

©Thrasher Magazine
결국 이 시기 활동했던 밴드들은 대부분 1986년을 전후로 해체하게 되지만, 당해 1월 쓰레셔 매거진(Thrasher Magazine)이 이 흐름을 이모코어(Emocore)라고 처음 명명하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모’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단순히 이모(Emo)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죠.
물론 당시 밴드들은 아무도 이 명칭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Ian MacKaye
“이모코어는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멍청한 표현이야. 감정적인 하드코어라고? 하드코어가 원래 감정적인 거 아니야?”
- 이안 맥케이
2. 중서부에서 새로운 이모의 바람이 불어오다

©Gauge
1990년대 미국 중서부, 시카고 일리노이 주에서 새로운 이모 음악씬이 형성되었습니다.
셰이크포크 레코드(Shakefork Records)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씬은 게이지(Gauge)와 같은 밴드를 필두로, 기존과는 다른 결의 이모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요.
특히 게이지는 하드 록과 더불어 곡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스록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주목을 받았고, 이러한 시도는 1990년대 초반 중서부 이모 씬의 방향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모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장르 실험들이 이어졌고..
1999년, 오늘날 당시의 흐름을 가장 잘 정의했다고 평가받는 한 장의 앨범이 등장합니다.

©Amercian Football
이모를 기반으로 재즈, 팝, 매스록, *슬로코어를 결합한 독특한 사운드. 특히 고음 *아르페지오로 쪼개진 맑은 기타 톤(사운드가 반짝이는 느낌이라 ‘Twinkly Guitar’라 불리기도 합니다)가 인상적인 이 작품.
*슬로코어(Slowcore): 느린 템포와 음울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록의 한 갈래. 개러지 등의 공격적인 락 음악에 대항하여 형성되었다.
*아르페지오(Arpeggio): 화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음을 순차적으로 풀어 연주하는 주법.
바로 아메리칸 풋볼의 정규 데뷔 앨범 [American Football]입니다.

©RYM
그렇게 아르페지오를 중심으로 한 부드러운 기타 질감과 매스록에서 영향을 받은 복잡한 박자 구조를 특징으로 한 사운드와 흐름이 중서부에서 유행했다고 하여 이를 미드웨스트 이모(Midwest Emo)라고 부르게 되죠.
3. 어차피 해체할 건데?

©Spotify
아메리칸 풋볼의 보컬, 마이크 킨셀라(Mike Kinsella, 이하 킨셀라)는 어린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이어온 인물입니다.
불과 12살의 나이에 형 팀 킨셀라(Tim Kinsella)와 함께 결성한 캡틴 재즈(Cap'n Jazz)의 드러머로 첫 밴드를 시작하는데요. (놀랍게도 이 밴드 역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운드로 초기 미드웨스트 이모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캡틴 재즈는 1995년 단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남기고 해체되었고, 이후 킨셀라는 1997년 더 원 업 다운스테어스(The One Up Downstairs)에서 보컬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밴드에서, 일리노이 대학교 동기이자 훗날 아메리칸 풋볼의 드러머가 되는 스티브 라모스(Steve Lamos, 이하 라모스)를 만나게 되죠. 하지만 이 밴드 역시 앨범 발매를 앞두고 해체되고 맙니다.
이후, 그들은 큰 계획 없이 그~저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킨셀라는 라모스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대학 룸메이트였던 스티브 홈즈(Steve Holmes, 이하 홈즈)가 즉흥적으로 잼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여기에 내가 더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Janice Minn
그렇게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아메리칸 풋볼이라는 하나의 밴드가 됩니다. 밴드의 이름 역시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라모스의 여자친구가 보았던 포스터 속 단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전부였죠.
큰 의도를 가지고 결성했던 밴드는 아니라 아메리칸 풋볼은 역시나 대학 밴드처럼 흘러갔습니다. 라모스의 집에서 함께 노래를 만들었으며, 소파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죠. (킨셀라는 밴드의 아이디어가 즉흥적이며 두서가 없었다고 했고, 홈즈는 밴드가 항상 대충대충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전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고 하죠..)

©American Football
큰 의도를 가지고 결성된 밴드는 아니었기에, 아메리칸 풋볼 역시 자연스럽게 ‘대학 밴드’처럼 흘러갑니다. 라모스의 집에 모여 함께 곡을 만들고, 소파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죠. (킨셀라는 당시 밴드의 아이디어가 “즉흥적이고 두서없었다”고 회상했고, 홈즈 역시 “항상 대충대충 작업했기 때문에 전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EP는 냈습니다! 1998년 밴드는 데뷔 EP [American Football]을 발매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대학 졸업이 다가오며 멤버 둘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밴드는 또다시 흐지부지 해체를 앞두게 됩니다.
그래도 정규 앨범은 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밴드는 마지막 앨범 작업에 돌입하게 되는데요.
아메리칸 풋볼로 가장 처음 작곡한 곡 ‘Five Silent Miles’. 데뷔 EP에 수록되었다.
그렇게 1999년 발매된 정규 데뷔 앨범 [American Football] (참고로, 이들의 모든 정규 앨범 제목은 전부 [*American Football]*입니다.)은 지금의 평가와는 달리 당시에는 그다지 ‘대단한 작품’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4일 만에 녹음 완료, 곡 제목은 아트워크 완성 몇 시간 전에 급하게 결정, 연습 때는 보컬 없이 연주만 해서 녹음 이후 라이브 전까지 라모스와 홈즈는 가사를 몰랐고,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녹음한 베이스가 아닌 이전 버전이 실린 앨범..

©Mike Kinsella / IMPOSE Magazine
“글쎄, 어차피 우리 헤어지는 거잖아, 누가 신경 쓰겠어?”
- 마이크 킨셀라
그렇게 발매된 앨범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몇 차례의 공연만을 남겼고, 결국 밴드는 2000년 조용히 해체를 맞이하게 됩니다.
4. 대학 밴드, 미드웨스트의 별을 그리다
물론 아메리칸 풋볼과 더불어 이모의 두 번째 물결이라 불리는 미드웨스트 이모는 메인스트림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2000년도에 접어들며 한차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Nirvana
그 이유는 사실 1990년대를 돌아보면 1991년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 발매와 함께 록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이어 1994년에는 펑크 밴드인 그린 데이(Green Day)와 오프스프링(The Offspring)이 각각 앨범 [Dookie]와 [Smash]로 메인스트림을 뚫어버리면서, 이모는 자연스럽게 서브 컬쳐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인디 록, 팝 펑크의 요소를 결합한 이모 밴드인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같은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2002년 다시 한번 지미 잇 월드의 주류 성공이 나머지 시기에 등장할 이모 팝 음악의 길을 열으며, (좋든 싫든..) 이모의 아이콘이 된 에디터의 사랑,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까지 이어지는 이모의 3차 흐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앞머리가 이마를 덮는 검은 머리와 두꺼운 안경 등의 이미지가 바로 이 시기에 등장을 합니다.)
미드웨스트 이모도 2000년대 중후반 다시 부활을 하게 되는데요. 2010년대 초반까지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고, 지금까지도 하나의 확고한 흐름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RYM
그리고 [American Football]은 이렇듯 발매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데요.
늘어나는 인터넷 보급량과 맞물리며 이 앨범은 ‘/mu/’나 ‘Rate Your Music’과 같은 사이트에서 감수성 짙은 사운드로 재발굴되기 시작하며 지금의 위상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더 흥미로운 건, 정작 밴드 멤버들은 이 사실을 한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인데요. 유일하게 뮤지션 활동을 이어갔던 킨셀라와 달리 홈즈는 IT 분야로 진출했고, 라모스는 대학교 영문학과 준교수로 재직 중이었죠. (라모스는 2009년, 한 학생을 통해서야 자신들의 앨범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4년. 이 예상치 못한 인기 속에서, 밴드는 다시 모이게 됩니다. 큰 성공을 거두고 해체했던 밴드도 아니었지만, 재결합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고 뉴욕에서는 추가 공연까지 이어지게 되죠. (이때 킨셀라의 사촌 네이트 킨셀라(Nate Kinsella)가 들어와 현재는 4인조로 활동 중입니다.)
이후에도 밴드는 호평을 얻은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더 발매했고, 다가오는 5월 1일에는 새로운 정규 앨범 발매까지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내한 공연… 기대해봐도 되겠죠?)

©American Football
그래서 오늘 가져온 영상은 무려 아메리칸 풋볼의 1999년 당시의 라이브 영상입니다. 이 영상을 촬영하던 사람은 훗날 이 밴드가 미드웨스트 이모를 정의하는 이름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4일 만에 녹음한 앨범이 시대를 정의한 아메리칸 풋볼의 ‘Never Meant’ 라이브를 지금 바로 위에서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