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록을 사랑하게 된 순간들] 이전 글 보러가기
EP. 01 밴드를 끝낸 소음은 곧 미래가 되었다
EP. 02 X까, 네가 하라는 대로 안 해!
EP. 03 끝내 듣지 못한 성공, 그리고 30년 뒤 아들에게 이어진 이야기
Special. 01 그린 데이: 그래서 얘네가 펑크야?
EP. 04 4일 만에 녹음한 앨범이 시대를 정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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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그 이름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등장 이후 팝 음악 씬의 여성 팝스타가 금발, 아름다움, 몸에 딱 맞는 의상을 입은 이미지로 정의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혜성처럼 등장한 17세 소녀가 던진 한마디는 또 다른 시대를 여는 새로운 여성 팝스타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I'm just saying I don't want to sell sex”
“전 그냥 성적인 걸 팔기 싫어요”
당시의 팝스타들과는 달리, 현실 속 10대들 사이에서나 볼 법한 스케이터 룩을 하고 나타난 이 친숙한 소녀의 이름은 바로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그의 데뷔 싱글 ‘Complicated’의 뮤직비디오는 미국의 음악 채널 MTV의 대표 프로그램 TRL*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oys’를 제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청소년들과 미디어는 하루 종일 그 이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 TRL(Total Request Live): 시청자들의 전화와 온라인 투표를 토대로 가장 많이 요청된 10개의 뮤직비디오를 재생하는 프로그램으로 청소년층을 주 타깃으로 했다.
“에이브릴 라빈..”
“에이브릴 라빈..”
“에이브릴 라빈..”
“She is The Anti-Britneys!”
“그녀는 안티-브리트니입니다!”

©Avril Lavigne
안녕하세요, 에디터 meddlee입니다. 👋
오랜만에 [록을 사랑하게 된 순간들] 시리즈가 에디토리얼 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하)
오늘의 이야기는 드디어 ‘팝 펑크’입니다. 지난 이야기들에서는 팝 펑크의 등장과 메인스트림 진입, 그리고 그린 데이(Green Day)를 살펴봤는데요. ([Special. 01 그린 데이: 그래서 얘네가 펑크야?]를 먼저 읽고 오시면 더욱 재밌습니다..!)

©Avril Lavigne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이어가며, 팝 펑크는 물론 이후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까지 영향을 남긴 에이브릴 라빈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그럼 바로 가보실까요?
1. 2002년
사실 팝 펑크의 유행은 그리 길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드코어 펑크와 스케이트 펑크를 거쳐, 1980년대 후반부터 인디 씬과 독립 레이블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팝 펑크는 그린 데이(팝 펑크라고 주장을 하든 말든..) 외에도 오프스프링(Offspring), 디센던츠(Descendents) 등 다양한 밴드들이 자신만의 기반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이후 1994년, 그린 데이의 [Dookie]가 메인스트림에 진입, 1999년에는 블링크-182(Blink-182)의 ‘All the Small Things’가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Official Single Chart) 모두 톱 10에 오르거나, 2001년에는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팝 펑크 명곡으로 언급되는 썸 41(Sum 41)의 ‘Fatlip’이나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의 ‘The Middle’이 등장하기도 했죠.
하지만, 정말 딱 그뿐이었습니다.

©Pierre Bouvier/MN25
"When we got signed, a lot of labels passed on us and [were] saying, 'Hey, this pop-punk thing, you're at the tail end of it. It's just about to go out. This is not gonna last.'”
“우리가 계약할 당시 많은 음반사들은 ‘팝 펑크는 이제 끝물이고 곧 사라질 유행이야. 오래가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어요.”
- 밴드 심플 플랜(Simple Plan)의 보컬 피에르 부비에(Pierre Bouvier)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대중음악 시장은 90년대 후반부터 대형 레이블들이 만들어낸 보이 밴드와 강한 프로듀싱 중심의 팝스타들이 이미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Frank Micelotta/ImageDirect/Tim Roney/Getty Images/Ebet Roberts/Redferns/Tim Roney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포인트였습니다.
당시의 팝 음악들이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감정과 고민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던 반면, 팝 펑크는 오랫동안 불안, 반항, 외로움, 혼란 같은 감정을 솔직하게 노래하며 그 근간을 쌓아오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과하게 정제된 팝 시장 속에서 팝 펑크 음악들은 오히려 10대들에게 더 현실적이고 신선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발표된 썸 41의 ‘Fat Lip’ 뮤직비디오. 당시 청소년들의 삶과 문화를 그대로 담아내며, 팝 펑크 부흥의 상징 같은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이 시점을 기점으로 팝 펑크는 마치 불이 붙은 듯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1999년 막 성인이 될 무렵 결성되었던 심플 플랜의 2002년 데뷔 앨범 [No Pads, No Helmets...Just Balls]의 수록곡 가사들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 충분했고, 앞서 언급한 지미 잇 월드의 ‘The Middle’은 같은 해 6월 빌보드 핫 100 5위까지 오르는 등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2. 오! 나의 팝 펑크 여신님
하지만 팝 펑크 씬에도 여전히 한 가지 한계는 존재했습니다. 바로 이 장르 역시 대부분이 남성 밴드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는데요.

©Avril Lavigne
그리고 2002년 6월, 에이브릴 라빈(이하 라빈)의 데뷔 앨범 [Let Go]가 등장합니다.
총 인구 5,000명 남짓한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현재는 그레이터 나파니로 편입)에서 부모님의 지원 아래 지역 콘테스트에 참가하거나 동네 서점에서 컨트리 음악을 커버하던 한 소녀가 들고나온 앨범.
당시 라빈을 스카우트한 매니저 클리프 파브리(Cliff Fabri)와 오디션 15분 만에 덜컥 계약을 체결한 아리스타 레코드(Arista Records)는 아직 어떤 아티스트인지조차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이 소녀의 데뷔 앨범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곡은 계속해서 뒤엎어졌고, 당시 팝 시장에 어울리는 여성 아티스트를 내보내고 싶어 했던 레이블의 방향성과 당시까지도 여전히 고향 고등학교의 스케이트보드 무리들과 어울리며 자신만의 음악을 원했던 라빈의 취향은 쉽게 맞아떨어지지 않았죠. (당시 라빈이 프로듀서에게 들려주기 위해 녹음해온 곡은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Avril Lavigne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대안이 바로 ‘Complicated’. 마침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라빈, 그리고 리드 싱글의 흥행은 당시 막 불붙기 시작한 팝 펑크의 흐름과 맞물리며, 여성 아티스트가 어떻게 주류 팝 시장에 돌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게 됩니다.
그렇게 완성된 데뷔 앨범 [Let Go]는 엄청난 기록들을 남기게 되는데요.
- 빌보드 앨범 차트 200(Billboard 200) 2위
- 수록곡 ‘Complicated’, ‘Sk8er Boi’ 빌보드 팝 에어플레이 차트(Billboard Pop Airplay) 1위
-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Official Album Chart) 1위 (당시 여성 솔로 아티스트 기준 최연소 기록)
-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8개 부문 후보
- 2002년 가장 많이 판매된 데뷔 앨범이자 여성 아티스트 앨범
- 21세기 가장 많이 팔린 캐나다 아티스트 앨범
등등…
팝 펑크 씬을 넘어 당시 대중음악 시장 전체를 크게 뒤흔들게 됩니다.
특히 라빈은 남성 밴드 중심이었던 팝 펑크 씬 안에서 여성 아티스트의 영역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최정상에 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식 팝스타 이미지에 반발하여, 자신이 원하는 음악으로도 충분히 주류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해낸 인물이 되기도 했죠.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아래에..)
실제로 오늘날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파라모어(Paramore)의 헤일리 윌리엄스(Hayley Williams) 등 수많은 메인스트림 아티스트들이 라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가 남긴 흔적이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할 수 있겠죠.
3. POP PUNK!
이후 에이브릴 라빈의 커리어를 모두 다루기 시작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번 글에서는 핵심적인 흐름만 간단히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한 번만 다루기엔 너무 아쉬운 아티스트라.. 이후 기회가 된다면 디스코그래피를 중심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ㅎㅎ)

©Avril Lavigne
아마 국내 팬들에게 가장 익숙한 라빈의 모습은 정규 1~3집 시절일 텐데요. 실제로도 이 시기가 라빈의 전성기로 평가받습니다.
팝 펑크를 중심으로 얼터너티브 록과 포스트 그런지 등 다양한 사운드를 녹여냈던 1집에서 시작해, 앨범이 거듭될수록 팝 펑크의 색채는 더욱 선명해졌고, 2010년대 들어 장르의 대중적 인기가 서서히 잦아들기 전까지 라빈은 꾸준히 정상의 자리를 지켜냈는데요.
실제로 2집 [Under My Skin]과 3집 [The Best Damn Thing]은 미국 빌보드 200과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모두에서 1위를 기록했고, 3집 수록곡 ‘Girlfriend’는 온라인 역사상 최초로 조회수 1억 회를 돌파한 뮤직비디오 중 하나라는 상징적인 기록까지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팝 시장의 흐름은 2010년대에 접어들며, EDM과 일렉트로 팝, 힙합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했고, 자연스럽게 팝 펑크 역시 메인스트림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는데요. 라빈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초기만큼의 폭발적인 화제성을 유지하긴 어려웠습니다. (”요즘 이 언니는 뭐해?”라는 말이 종종 보이긴 하는데,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Juan Flores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그녀의 존재감이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상징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인데요.
오늘날 디지코어와 하이퍼 팝의 유행 속에서 과거 일렉트로 팝 감성이 함께 다시금 젊은 세대에게 소비되고 있는 것처럼, 그보다 조금 앞선 2020년대 초반에는 머신 건 켈리(Machine Gun Kelly), 영블러드(Yungblud)등을 중심으로 팝 펑크 역시 이모 랩(Emo Rap)과 결합하며 새로운 리바이벌 흐름을 만들어낸 가운데, 에이브릴 라빈의 음악은 물론 패션까지도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라빈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기도 했는데요. 팝 펑크 리바이벌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이자, 프로듀서·드러머·레이블 운영자로 활동 중인 블링크-182의 트레비스 바커(Travis Baker)의 DTA 레코드(DTA Records)로 이적해 새로운 곡들을 선보이기도 했죠.
작년에는 빌리 아이돌(Billy Idol)의 곡 ‘77’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자신보다 더 이전 세대의 펑크 음악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는가 하면, 오랜 시간 씬의 동료로 함께 해온 심플 플랜과 협업한 싱글 ‘Young & Dumb’을 발표하며 오래된 팝 펑크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심플 플랜이 오프닝 공연으로 참여했던 라빈의 첫 투어 <Try To Shut Me Up>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곡이라는 점에서 당시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죠.)
현재 라빈의 마지막 정규 앨범은 2022년 발매작 [Love Sux]. 이후 새 앨범에 관한 언급은 없는 상태이지만,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심플 플랜과 그런 곡을 냈는데 한 번쯤은 향수를 자극하는 팝 펑크 앨범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내한도.. 한국에 무려 여섯 번이나 찾아와주었지만.. 마지막이 2014년이야..)
그럼 오늘은 여기서 에디터의 추천곡과 함께 글을 마쳐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P.S. 안티-브리트니
라빈은 데뷔 당시, 최고의 팝스타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대비되는 안티-브리트니 이미지로 자주 소비되곤 했습니다.
이는 당시 라빈이 브리트니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 스타일을 내세우고 있었고, 록과 펑크가 가진 반항적인 이미지 역시 그녀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처럼 여겨졌기 때문인데요.

©John Christopher Delos Santos
여기에 가십을 좋아하는 당시 매체들의 분위기까지 더해지며, ‘안티-브리트니’라는 수식어는 순식간에 라빈을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꼬리펴처럼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라빈도 나이를 먹고.. 이후에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직접적으로 밝히며, 서로의 음악을 홍보해 주거나 함께 어울리는 모습들도 공개되며 과거의 해프닝처럼 남게 되었죠.
여담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과거 라빈의 데뷔 앨범을 만든 프로듀서 팀 매트릭스(Matrix)를 찾아가 ‘I'm With You’와 같은 곡을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l Photo. Avril Lavig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