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록 음악의 정수는 기타리스트들의 활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 더 후(The Who)의 피트 타운젠드(Pete Townshend), 딥 퍼플(Deep Purple)의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처럼 기타를 중심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남성 뮤지션들이 록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Heart
그리고 그런 시대에 등장한 독특한 밴드가 바로 하트(Heart)입니다. ‘윌슨 시스터즈’로도 잘 알려진 앤 윌슨(Ann Wilson)과 낸시 윌슨(Nancy Wilson)을 중심으로 한 하트는 강렬한 하드 록과 어쿠스틱 기타, 두 자매의 보컬 하모니를 결합하며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만들어갔는데요.
특히 앤 윌슨이 합류한 이후 강한 록 사운드를 구축하고 있던 밴드에 이후 합류한 낸시 윌슨의 어쿠스틱 기타가 더해지면서, 하트는 거친 일렉트릭 기타와 섬세한 어쿠스틱 기타가 한 곡 안에서 공존하는 독특한 사운드를 선보이게 됩니다.

©Heart
그 결과, 로저 피셔(Roger Fisher)와 스티브 포센(Steve Fossen)을 중심으로 시작했던 하트는 초기에는 레드 제플린 등을 커버하던 커버 밴드에 가까웠으나 두 자매가 합류하면서 인기를 얻었고, 메이저 데뷔와 함께 1976년 첫 정규 앨범 [Dreamboat Annie] 이후 80년도까지 발표한 다섯 장의 앨범 모두를 빌보드 앨범 차트 200(Billboard 200) 17위 이내에 올려놓는 전성기를 누리게 되죠.
그리고 이러한 하트의 음악적 색깔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곡이 바로 [Dreamboat Annie]에 수록된 ‘Crazy on You’입니다.
낸시 윌슨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이 곡은 빠르고 정교한 핑거스타일 연주에 이어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리프와 앤 윌슨의 보컬이 차례로 등장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특히 ‘Crazy on You’에 앞서 연주되는 이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는 ‘Silver Wheels’라는 별도의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당시 낸시 윌슨은 ‘Crazy on You’가 완성된 뒤, 거대한 록 곡의 시작을 장식할 수 있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구상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당시 예스(Yes)가 서사적인 곡에 어쿠스틱 기타 인트로를 사용하던 방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폴 사이먼(Paul Simon)의 핑거스타일 연주에 영향을 받아 ‘Silver Wheels’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Silver Wheels’에는 단순한 음악적 시도 이상의 의미도 있었는데요.

©Andrew Chin / Getty Images
낸시 윌슨은 훗날 당시 여성 기타리스트가 마주했던 편견을 회상하며, 자신이 남성이 아니기 때문에 연주자로 인정받으려면 더 많이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에는 여성 뮤지션에게 무대에서 ‘보여지는 존재’가 되라는 식의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하트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당시에는 존재가 드물었던 미모의 자매가 이끄는 록 밴드라는 인식도 강했기에, 그는 이러한 시선 속에서 자신이 단순히 무대의 장식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는 기타리스트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기에 ‘Silver Wheels’는 낸시 윌슨에게 자신의 연주력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는데요. 그리고 이 연주가 단순한 음원을 넘어 하나의 퍼포먼스로 기억되게 만든 것이 바로 하트의 1970년대 라이브 무대입니다. 특히 1978년 공연에서 낸시 윌슨의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시작한 연주가 곧 일렉트릭 기타와 리듬 섹션의 강렬한 사운드로 확장되고, 이어 앤 윌슨의 보컬이 더해지면서 전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되는 장면은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죠.
특히 낸시 윌슨이 기타를 단순히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을 함께 움직이며 무대를 채우는 모습은 당시 록 기타리스트에게 기대되던 무대 위의 에너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남성 기타 히어로가 아니라 낸시 윌슨이라는 점에서 이 무대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죠.

©Nancy Wilson
그렇게 ‘Silver Wheels’는 이후에도 낸시 윌슨을 대표하는 기타 연주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오늘날까지 기타리스트들이 이 곡을 직접 연주하고 분석하는 이유 역시 단순히 난도가 높은 연주이기 때문만은 아니라 짧은 어쿠스틱 기타 연주만으로 곡의 분위기를 만들고, 곧이어 거대한 록 사운드로 연결하는 하트의 음악적 특징이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죠. 하트는 이러한 음악적 성과를 바탕으로 2013년에는 그 음악적 영향력을 인정받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액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Crazy on You’의 라이브를 보면, 단순히 ‘70년대의 멋진 록 공연’을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감상이 남습니다.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한 기타리스트의 처절한 연주가 결국 시대를 대표하는 록 사운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지금부터, 낸시 윌슨의 ‘Silver Wheels’로 시작해 ‘Crazy on You’의 강렬한 사운드로 이어지는 전설적인 무대를 바로 감상해 보시죠!
···
[록을 사랑하게 된 순간들] 이전 글 보러가기
EP. 01 밴드를 끝낸 소음은 곧 미래가 되었다
EP. 02 X까, 네가 하라는 대로 안 해!
EP. 03 끝내 듣지 못한 성공, 그리고 30년 뒤 아들에게 이어진 이야기
Special. 01 그린 데이: 그래서 얘네가 펑크야?
EP. 04 4일 만에 녹음한 앨범이 시대를 정의한다면
Special. 02 에이브릴 라빈: 오! 나의 팝 펑크 여신님
Special. 03 2001년에는 대체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