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록 음악을 좋아하다 보면 꼭 유명한 밴드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거나 음악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밴드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속한 씬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이미 만들어진 장르의 가능성을 조금씩 넓혀간 밴드들이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익숙하게 듣는 장르의 모습 역시 그런 수많은 시도들이 쌓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Richard Davis
그래서 오늘 [록을 사랑하게 된 순간들]에서 다룰 밴드는 그간 소개해온 아티스트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당시 씬을 완전히 뒤흔들거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밴드는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속한 장르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했던 밴드인데요.
그럼에도 오늘날 이런 밴드가 있었기에 하나의 장르가 한 가지 모습으로 굳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확장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이 과소 평가된 밴드를 소개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포스트 하드코어 씬에서 다시 발견해야 할 그 이름.

©Nick Barnett / The Pizza Series
블러드 브라더스(The Blood Brothers)입니다.
[1] 블러드 브라더스
우선 오늘의 장르인 포스트 하드코어를 간단하게 소개드리자면요.

©Getty Images
하드코어 펑크에서 출발한 이 장르는 1980년대부터 기존의 속도와 공격성만을 그대로 이어가기보다 더욱 멜로디컬하고 감정적이며 실험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90년대를 거치면서 여러 밴드가 노이즈, 인디 록, 포스트 펑크, 메탈 등 다양한 요소를 자신들의 음악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포스트 하드코어라는 이름 역시 하나의 고정된 사운드라기보다는 계속해서 변하는 영역이 되어갔는데요.
그리고 포스트 하드코어 밴드라고 소개되는 블러드 브라더스의 음악은 그 이름만으로는 이들을 설명하기에 부족할 만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The Blood Brothers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보컬입니다. 조니 휘트니(Johnny Whitney)와 조던 블라일리(Jordan Blilie)가 함께 보컬을 맡은 이 밴드는 여느 밴드처럼 한 명이 노래하고 다른 한 명이 샤우팅을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톤의 목소리를 번갈아 내세우는 것은 물론, 때로는 동시에 겹쳐놓으며 두 사람의 목소리 자체를 하나의 악기처럼 활용했죠. 덕분에 한 명의 보컬이 곡 전체를 이끌어가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불안하고 날카로운 긴장감이 만들어졌습니다.
악기 구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친 기타와 빠르게 몰아붙이는 드럼이 중심에 있는 가운데 피아노와 글로켄슈필, 어쿠스틱 기타 같은 의외의 악기들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는데요. 당시 매체들 역시 이러한 요소를 블러드 브라더스의 독특한 특징으로 짚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04년 정규 4집 [Crimes]를 발표했을 당시, 조던 블라일리는 밴드가 하드코어라는 장르의 기존 규칙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해봤고, 이제는 다른 것을 시도할 때가 됐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실제로 [Crimes]는 이전 작품보다 한층 느슨하고 다양한 영향을 받아들인 사운드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블러드 브라더스에게 악기나 장르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기보다, 계속해서 가지고 놀고 변형할 수 있는 영역에 가까웠던 셈이죠.
[2] 씬을 안고 저 멀리!
그렇다고 블러드 브라더스가 자신들이 속한 씬과 거리를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활동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모습이 보이는데요. 음악적으로는 기존의 규칙에서 계속 벗어나려 하면서도, 공연과 투어에서는 자신들이 출발한 씬과의 연결을 꾸준히 이어갔다는 점입니다.
1997년 시애틀에서 결성된 블러드 브라더스는 이후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까지 투어를 이어갔지만, 작은 클럽에서 관객과 가까이 호흡하는 공연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당시 인터뷰에서도 이들은 대형 공연장보다 작은 공간이 밴드와 관객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을 만들어주고, 음악적 스타일이 바뀌더라도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관계를 만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블러드 브라더스만의 흥미로운 태도가 드러납니다.

©Justin Moulder
과거 펑크와 하드코어 펑크의 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강한 커뮤니티와 유대감은 때로 장르의 폐쇄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반면 블러드 브라더스는 씬 안에서 관계를 이어가는 것과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반드시 반대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와의 연결은 그대로 안고 가면서도, 음악만큼은 그 안에 가두지 않았던 것이죠.
실제로 이들의 음악적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당시 포스트 하드코어와 하드코어 씬을 대표하던 여러 인물들과의 연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3년 [Burn, Piano Island, Burn]에서는 너바나(Nirvana), 슬립낫(Slipknot),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등과 작업하며 이름을 알린 프로듀서 로스 로빈슨(Ross Robinson)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이후 2006년 마지막 앨범 [Young Machetes]에서는 푸가지(Fugazi)의 가이 피치오토(Guy Picciotto)가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시면 그렇게 씬과 연결된 사람들과 작업하면서도 자신들의 음악을 과거의 틀 안에 머물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3] Young Machetes

©The Blood Brothers
그렇게 자신들이 속한 씬과의 연결을 이어가면서도 음악적으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갔던 블러드 브라더스. 그리고 에디터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앨범이자, 블러드 브라더스라는 밴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들의 정규 5집이자 마지막 앨범인 [Young Machetes]입니다.
2006년 발매된 이 앨범은 지금까지 블러드 브라더스가 보여준 음악적 특징이 한데 모인, 말 그대로 밴드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인데요.
거친 하드코어와 두 보컬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긴장감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팝적인 멜로디부터 노이즈, 키보드, 예상하기 어려운 곡의 전개까지 더욱 다양한 요소를 한꺼번에 끌어안았습니다. 특히 반복해서 들을수록 여러 층의 사운드가 드러나는 앨범이라는 평가도 있었는데요. 한 곡 안에서도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전환되거나 예상하지 못한 악기와 멜로디가 튀어나오는 식으로, 블러드 브라더스 특유의 실험성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밴드는 앨범 발매 이듬해인 2007년 활동을 중단하며 약 10년에 걸친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는데요. 이후에는 2014년 한 차례 공연을 진행했고, 2024년 [Crimes] 발매 20주년을 기념하는 미국 투어를 위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르며 재결합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은 [Young Machetes]가 발매된 지 20년이 되는 해인데요. 밴드는 이를 기념해 오는 10월 30일(현지 시각), 앨범의 컬렉터스 에디션을 발매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이번 에디션은 게이트폴드 재킷에 담긴 더블 컬러 바이닐과 확장된 16페이지 북클릿을 비롯해 희귀 리믹스, 미공개 사진, 새로운 회고 콘텐츠까지 담아낼 예정이라고하죠.
마지막 앨범이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20년. 그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Young Machetes]를 다시 꺼내볼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앨범의 기념일이 찾아왔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The Blood Brothers / Kodak
씬 안에서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음악만큼은 계속해서 경계를 넓혀갔던 블러드 브라더스. 이들이 남긴 가장 흥미로운 흔적은 특정한 장르의 정답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기보다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의 이름 뒤에는 자신이 속한 씬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이미 만들어진 장르의 가능성을 조금씩 넓혀간 수많은 밴드들이 있었습니다. 블러드 브라더스 역시 그 수많은 이름 중 하나였죠.

©The Blood Brothers / Kodak
그래서 어쩌면 20년이 지난 지금 [Young Machetes]를 다시 듣는 일은 단순히 한 밴드의 마지막 앨범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을 겁니다. 익숙한 장르 안에서도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그들의 시도를 다시 발견하고,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록 음악 역시 수많은 밴드들의 서로 다른 시도들이 쌓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는 일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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